갱과 연관되어 수감된 한 청년을 방문하고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는 ‘형제’들에 대한 자랑과 그들을 향한 충성심을 내비쳤습니다.
“내가 왜 형들을 사랑하는지 알아요? 그들은 내가 외로울 때 함께 있어줬어요. 내가 왜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지 알아요? (실제로 그는 상대편에게 총맞은 상처를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대신해서 총을 맞아줬어요. 내가 왜 형들을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아요? 형들은 나에게 돈 버는 법을 가르쳐 줬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형님들,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허탈한 마음으로 장소를 떠나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부모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이 그의 빈 마음을 더 먼저 점령했더라면 이 아이가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더 이상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큰 집이 아닙니다. 고기 밥상이 아닙니다. 우리 세대까지는 그것이 인생의 목적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덩그라니 큰 집에서 싸늘한 밥을 혼자 먹고 있습니다. 부모님들과 따뜻하고 오붓한 시간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오늘은 좀 어땠니?”라는 관심을 원하고 있습니다.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세상이 먼저 점령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회복, 그 사랑을 향해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 이것이 우리 모든 사역의 제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에서 떨어지는 자가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계시록에서 주시는 경고가 무엇입니까? “네 첫 사랑을 회복하라”입니다.
그래서 부활 후 찾아오신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사랑의 섬김, 구운 떡과 생선은 큰 비밀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질문은 더할 수 없이 적절한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날 위해 죽어 주셨어요. 예수님이 내가 외로울 때 함께 해 줬어요. 예수님이 나에게 세상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저는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
이것이 우리 성도의 고백이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