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등장한다.
夫言非吹也(부언비취야) : 뚫린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 말이 아니다
言者有言(언자유언): 말에는 뜻이 있다
其所言者特未定也(기소언자특미정야) : 말의 뜻이 애매모호하고 뚜렷하지 않다면
果有言邪(과유언사) : 과연 말은 있는 것일까
其未嘗有言邪(기미상유언사) : 없는 것일까?
道惡乎隱而有眞僞(도악호은이유진위) : 도는 왜 가리어져 참과 거짓이 발생하고
言惡乎隱而有是非(언악호은이유시비) : 참된 말은 어디에 가려져 시비 다툼이 생기는 것인가
道惡乎往而不存(도악호왕이부존) : 도는 어디 가서 오지 않고
言惡乎存而不可(언악호존이불가) : 참된 말은 어디에 있기에 시비 논란이 있는가
道隱於小成(도은어소성) : 도는 얄팍한 지식에 가려지고
言隱於榮華(언은어영화) : 참된 말은 허황된 말에 가려진다
인터넷 상에 얼토당토않은 말을 남발하는 목사들이 많다고 아우성들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난다고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해도 받아주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찌 보면 소위 "강대상의 권위"는 목사들의 독단적 작품이 아니라 "아멘 부대"들과의 합작품일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행 17:11에 따르면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멘"으로 받지 않았다. 말씀을 받은 후에는 그 말씀이 정말 참인가 아닌가를 분별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그 후에 "아멘"으로 화답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홍수가 날 때 마실 물이 가장 귀해진단다. 범람하는 얄팍한 지식들은 참된 지식을 가리고, 넘실대는 허황된 말들은 참된 말을 가린다. 그러므로 SNS를 통해 비전문적인 말들이 전문적인 말들로 둔갑해 버리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목사라는 타이틀이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정언적(定言的) 참으로 만들지 않는다. 신학교 교수라는 타이틀이 교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정언적(定言的) 참으로 만들지 않는다. 기독교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타이틀이 출판사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정언적(定言的) 참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당치 않게 전한다면 그에 합당한 지적을 받아야 한다. 듣는 자들의 영혼이 귀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조언을 기억하자. 내가 분별해야 한다. 내가 검증해야 한다. 내가 참과 거짓을 가려야 한다. 내 생명은 내가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