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부활절을 맞아 뉴욕과 뉴저지 교회들이 일제히 27일 새벽6시 연합예배를 드리고 부활의 기쁨에 동참했다.
올해 부활절연합예배는 뉴욕지역 27개 교회와 뉴저지 지역 13개 교회에서 지역별로 교회들이 연합해 드리며 힘든 이민사회 환경 중에도 부활의 신앙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을 다짐했다.
최근 연합사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올해 부활절연합예배에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평소보다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예배를 드렸다. 지역마다 편차가 있지만 큰 예배당을 가득 메운 장소들이 예년보다 많았다.
또 설교자들의 메시지도 부활이 과거의 일회성 사건이 아닌 현재 진행형 사건임을 강조하면서 부활신앙의 의미를 깊이 새겼다. 다음은 뉴저지 제8지역(소망교회) 연합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김태수 목사의 설교전문이다.
부활절 제8지구 새벽연합예배(소망교회)
설교자-김태수 목사(뉴저지청암교회)
본문말씀 로마서 6:5
설교제목 "살아내는 부활의 기쁨"
오늘 부활의 아침에 뉴저지 교회협의회 제8지역 연합 부활 예배로 모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부활을 기뻐하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 믿습니다.
교회는 고독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이익공동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풍성한 나눔의 공동체이며 열린 공동체 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뿌리내린 공동체 입니다. 이와 같은 본래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가 되야 합니다. 이곳에 함께한 모든 교회와 교우들은 생명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에 열심인 분들이심에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형제의 연합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삼 겹줄이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니라" 우리의 이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귀한 아침입니다.
기독교인이 한 회교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인 것을 믿습니다" 회교도는 응답합니다. "우리도 그 같은 사실을 믿습니다" 기독교인이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성경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회교도는 역시 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한 책 곧 코란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신 것을 믿습니다" 기독교인이 다시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회교도 역시 " 우리는 모하메드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은 것을 믿습니다." 기독교인이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스스로 부활하셨기에 그 분이 하신 모든 일을 믿습니다. 이에 회교도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하며, "우리는 죽은 이후의 예언자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너무나 소중한 선물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사건은 2000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오늘날도 그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공동체는 기억공동체이기에 그렇습니다.
기억공동체는 하나님의 창조를 함께 공유합니다. 고대문명의 발원지중의 하나로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공동체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고통 속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의 수 많은 실패와 회복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을 기억하며 그 사랑에 감동하는 기억공동체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모든 것의 종말이 온 줄로 알았던 상황을 뒤집고 대 반전의 역사를 세우시는 부활의 크신 사랑 앞에 선 기억공동체입니다.
이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믿음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과 경륜을 따르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돌려세우신 하나님의 개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부활을 어떻게 받아드릴까요? 고대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을 잘 비교 연구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BC와 AD를 연결하는 시점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야스퍼스라는 역사학자는 이 시기를 제1차 차축시대라고 합니다. 세계가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는 시점입니다. 일찍이 알렉산더 대왕으로 시작된 고대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세계통일은 문화의 통합, 언어의 통합, 정치 경제의 통합이 급격히 진행되는 시기였습니다. 세계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의미의 시대인 동시에 세계종교탄생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은 이 땅에 자기를 부인하고 오셨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엄청난 충격을 던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제2의 차축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세계화가 전 세계로 펼쳐집니다. 인터넷은 즉석소통의 시대를 열었고 세계를 요동치게 합니다. 교통의 발달은 전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듭니다. 정치 경제 사회는 전 세계가 상호영향을 주소 받습니다. 어쩌면 예수님 이 땅에 오신 시대와 지금이 그렇게 같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날에 반드시 필요한 부활의 신앙을 회복함으로 새롭게 기독교 부흥의 때를 맞이하여야 합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승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언제나 완벽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더욱 복되게 해석하여야 합니다.
기독교신앙은 그 뿌리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으로의 오심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심과 행하심과 죽으심 속에 담긴 구속의 은혜를 큰 기둥으로 의지하여 세워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이셨고, 자기 비하이셨고, 자기 제물로 삼아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모진 고통 속에서 이루어낸 위대한 살리심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살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자신을 전부 던지셨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신앙은 우리를 살게 하시는 원동력입니다. 신앙의 구심력입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 앞에 어떤 공로로도 갚을 길 없는 빚을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저 주셨습니다. 값없이 얻은 큰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셨던 일을 이루십니다.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이루십니다. 성전중심의 삶을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성전을 헐라 하셨으니 이것은 청천 벽력이었습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기어코 그 일을 이루어 내십니다. 왜 주님은 그 일을 굳이 하셔야 했을까요? 성전으로 충분하였을 텐데요!
그 질문은 오늘의 우리 신앙의 문제를 바로 보는 관전포인트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전중심의 예배공동체의 오류 때문이었습니다. 그 오류는 율법주의에 빠진 신앙이었습니다. 가식적 제사중심의 오류였습니다. 예언이 사라지고 은사가 사라져버린 제도중심의 죽어버린 신앙조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앙의 체계를 재조직하게 하셨습니다. 그 조직화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개인을 성전 삼으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경륜의 펼치심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지성소의 휘장의 찢어짐은 만인을 제사장으로 불러 세우시는 패러다임의 체인지였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2:9)
그리고 그들을 다시 불러 세우시고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그것은 예수님 승천 시에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증인의 삶을 가르치심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것은 제자들의 새롭게 태어남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의 일들은 언어의 풀림이었습니다. 완전한 소통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흩어짐이었습니다. 열방을 향하여 나아감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습니다.. (행2;4) 언어의 소통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42) 유무상통의 역사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3-47)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다 "기사와 표적..함께 있어...서로 통용하고...필요를 따라 나누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3:6) "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하고)
그렇게 교회는 새롭게 지어져 갔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의 화해와 일치였습니다. 교회공동체의 세상문화와의 철저한 변혁을 향한 투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부인과 자기죽임이었습니다. 처절함 속에서도 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부활은 절망가운데 다가왔습니다. 부활은 큰 확신으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은 큰 희망으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을 맞이한 초대교회는 떨치고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분연히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3천만, 오천명, ...유무상통,,, 흩어짐,,, 자기십자가 짐... 삶의 자리에서의 변화와 고백..."
부활의 증인들, 예수 그리스도 사실 때, 그들도 그리하였습니다.
초대교회와 지금은 내용면에서 매우 똑 같은 동질성 속에 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입니다. 교회는 절망으로 지쳐있습니다. 불가능의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일 만에 허무시고 새롭게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을 다시 믿어야 합니다. 부활을 기뻐하여야 합니다. 부활을 품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우 영적으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부활만을 믿으면 영광의 신앙의 위험에 빠지고 맙니다. 부활을 믿되 십자가 신앙을 든든히 세우고 부활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으며 부활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다시 한번 부흥의 기회를 잡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아직도 의심하고 절망가운데 쓰러진 제자들 가운데 오셔서 함께 하시고 위로 하시고 명령하십니다.
1. 마태복음 28:18-20 디베랴 호수가의 절망 가운데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 누가복음24:13 절망감에 엠마오 도상에 있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어...너희 주고 받는 말이 무엇이냐? 물으시고 그들이 들은 부활의 과정을 예수께 말함 그 때 예수께서 된 일을 믿으라 하시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함께 음식 잡수실 때 축사하고 떼어 주니 눈이 밝아져 뜨거워지고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 알렸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3. 요한 복음 21:15-23. 디베라 호숫가의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만선을 누리게 하시고 함께 잡수시고 시몬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 세 번 물으십니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양을 먹이라...
부활은 놀람이었습니다. 감격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갱신이었습니다.
결국 흔들리는 영성이었습니다. 이는 일상 속의 편안함으로부터 떠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점이 변곡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라"
하지만 너무 악해져서 개선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죽으면 영원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부활의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자기를 온전히 헌신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파송의 노래’를 부릅시다. 그리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