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의 긴장관계는 최고조이다. 이로 인해서 많은 갈등이 증폭되었고, 오히려 우리들끼리 감정이 상하고 대결하는 모습이 더 안타깝다. 힘을 합쳐도 세계 열강들의 힘과 손익계산을 대항하기가 버거운데 힘만 더 빠지는 상황이다. 여기엔 감동과 도전 그리고 사명과 희생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저마다의 이익과 손실, 분함과 역정의 표현이 무성하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 대해서 무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우리동족들과 통치자들에 대해서 어떤 길이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하나? 엄청난 복음의 감동 앞에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천하에 없는 죄인이라도 고백하고 눈물, 콧물 다 흘리고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얻었다고 기뻐하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확신을 갖지 않았는가? 그런데 통일에 대한 민심과 민족의 미래는 별 변한 것이 없고 계속 반복적인 일들만이 70년이 넘게 행해지고 있다면 이것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왜 그럴까? 왜 아직도 으르렁대며 같은 동족끼리 싸우나? 참된 하나님의 방법과 길을 보여준 사람이 적다는 거다. 통일의 사명자가 없고, 통일에 감동을 줄 사람과 통일을 위하여 죽겠다는 도전도 없고, 무엇보다 통일을 행하는 희생이 없기에 아니,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교회가 아직 그 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희생하고, 주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섬기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통일을 감당할 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270 만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다. 1954 년 수 많은 인파가 구름처럼 서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정 반대인 동쪽으로 동쪽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이 있었다. 서독 출신의 '호르스트 카스너' (Horst Kasner) 목사의 가족이었다. 수 많은 목회자가 동독에서 계속 넘어오기 때문에 서독에는 목회자가 넘쳐나고 있지만, 오히려 동독에는 목회자 기근이 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당시 그에게는 함부르크에서 낳은 겨우 6 주가 된 신생아가 있었다. 이 신생아를 데리고 머나 먼 동쪽 정한 거처도, 교회도 없는 곳을 향해 간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무리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결단을 내렸다.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도 없는 공산 치하로 들어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카스너' 목사는 청지기 인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고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낮은 곳, 더 낮은 곳을 향해 죽음까지 내려가는 그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그 다음에 펼쳐졌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공산 치하 동독으로 갔던 목회자의 딸이 아버지의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생활로 양육 받고 자라며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당대의 가치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노라고 시대를 역행했던 그 목사님의 딸이, 지금 통일 독일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이다. 2013 년 9 월 독일 총선에서 그녀가 이끄는 기독교 정당연합이 큰 승리를 거두면서 메르켈은 3 선에 성공했다.
이렇듯 한 시대의 사명은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에 의한 양육되고 하나님의 길과 방법을 따르는 사람들로 완성된다. 감히 우리의 통일도 하나님의 방법과 길을 보여줄 사람들의 수가 충족될 때 가능하리라 믿는다. 그래서 이 믿음에 근거하여 워싱턴주에서 일년에 네 번 우리들이 연합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뜻을 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찾으시고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통일의 뜻과 성취도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 8~9).
박상원 목사_기드온동족선교대표('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의 편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