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은 태양빛을 받아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며 열과 빛을 받아 생존한다. 사람은 피부로 느끼고 가슴에 와닿는 정을 그리워한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꽃들, 생색도 내지않고 신선한 공기를 공급해 주고 울긋불긋 산천을 수놓아 아름다움까지 더해주는 우거진 수풀의 고마움이여. 그외에 바다는?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어류들, 또한 그들과 공생하는 생물들의 별천지 세상, 이 모두 우리의 관심을 불러내는 매력들이다. 얼마나 다복한 세상에 사는지!!!
사람은 여기에 만족치 아니하고 피부로 느끼고 어루만져주는 온기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자연보다는 피부끼리 접촉해서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을 선호하여 언제나 반기는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운다. 사람은 한 발짝 더 나아가 같은 인간들끼리 따뜻한 온기와 정을 나누기를 원한다. 그 따뜻한 온정이란 흔히 말하는 사랑과도 차이가 있고 자비라는 말과도 다르다. 나 나름의 표현이라면 내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 무엇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 따뜻한 온기는 현대인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다르다. 한두 번 만나서 물 불 가리지 않고 사랑한다며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급하게 헤어진다. 태양을 숭배하는 서양 문명보다는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좋아하는 감정을 은근히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한국에서 말하는, 서둘지 않고 정도를 가는 정이다. 그래서 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진해지고 깊어진다. 마치 우리 전통의 맛인 된장맛 같은 50년 지기 70년 지기의 정을 그리워하며 찾는 것이리라. 정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지니는 분들은 상대방과 어떤 이해관계 없이 따뜻한 마음의 온기로 맺어지기 때문이다. 수수한 정과 정의 교통뿐이다. 있는 그대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사람은 정에 약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 말은 남에게 모질게 못한다는 것이다. 예, 아니요를 확실하게 못해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질게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심이 있고 나아가서는 서로가 다시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 더 좋은 기회가 되는 수도 많다. 그것은 결단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여유를 주어 좀더 좋은 생각을 할 기회라고 본다.
교포들은 많은 정들을 뒤로하고 잊고 산다. 그 아름다운 고향산천, 법 없이 살 수 있는 고향 마을 어르신들, 뭣인가 도와주고 싶어하던 이웃들, 저녁에는 사랑방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늦은 밤까지 정을 나누던 밤도 이제는 추억이다. 또 미국이라는 새 땅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의식주와 자녀교육으로 정을 주고 받을 기회가 적었다. 이제 그 고비를 넘기다 보니 이제는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이것이 이민 1세들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첫째는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자. 직접 만나기가 거리상 힘들면 전화로라도 대화하는 것은 서로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둘째는 만나는 그 분을 형님으로 대하는 태도다. 그 분을 통하여 뭣인가 배울려는 마음이다. 셋째는 나를 자랑하지 말자. 정이 많은 사람은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다. 또한 자기주장을 상대에게 주입시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존중한다. 그런 분은 만나면 내 마음이 편안하고 오래오래 이야기를 하고 싶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헤어진 후에도 진한 정이 가슴에 남아 또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