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 우리나라 중산층의 '삶의 기준'을 비교 분석한 내용의 글을 보다가, 정말 이래도 되는가 싶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적어 봅니다.
우리나라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을 보면, ①부채 없이 30평 이상의 아파트나 주택을 소유하고 ②월 급여가 500만 원 이상이며 ③2천cc급 자동차를 소유하고 ④예금 잔고가 1억 원 이상 있고 ⑤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중산층의 기준을 봅시다. ①자신의 주장을 떳떳하게 할 수 있으며 ②사회적 약자를 돕고 ③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며 ④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비평지가 항상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제시한 중산층 기준은 ①페어플레이를 할 것 ②자신만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③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④약자를 무작정 두둔하지 않을 것 ⑤불의와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등입니다.
프랑스는 ①외국어를 하나 정도 할 수 있고 ②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으며 ③하나 정도의 악기 연주도 할 수 있고 ④자신만의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입니다.
위 중산층 기준을 나라별로 분석해 보면, 미국과 영국은 사회성과 도덕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예 물질적 측면만 내세우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중산층 기준이야말로 가장 그럴듯하고 공감이 됩니다. 예술의 나라답게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아름답다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답게 정정당당함을 내세우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들 세 나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정과 불법을 멀리하고, 약자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약자'를 도와 준다는 점입니다. 소외되고 불행한 사람들, 그리고 장애인들과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예스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 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음을 알아야 하며, 비판 없이는 발전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나 문화, 교육,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 비판 없는 발전은 없습니다. 대신 부정과 불법에는 용서가 없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중산층 기준을 보면,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주의이면서도 낭만이 있는 삶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하지 않으며 놀고 먹는 사람 같기도 하고, 여유가 있어 늘 문화와 함께하고 욕심이 없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삶의 기준이 전부 물질에 존재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고, 썩 좋은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더더욱 그렇지 않나 반성해 봅니다. 믿음이 있으면 다 된다고 말하지만, 결혼 상대를 고를 때부터 33평 아파트와 좋은 자동차쯤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월 급여가 최소 400-500만 원은 되고, 시부모는 안 모셔야 한다는 조건 등을 내세웁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이 같은 결혼관을 보면 차마 그리스도인이라고 내세우기조차 민망합니다.
처음에는 '믿음 좋은 총각이면 오케이'라고 해 놓고선, 막상 선을 보면 하나둘씩 플러스되는가 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노처녀·노총각이 부지기수입니다. 인물을 보지 않는다지만, 결국에는 외모지상주의로 갑니다. 자신의 인물됨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리고, 상대방 인물만 봅니다. 학벌도 보지 않는다고서, 막상 선을 보면 예상 외로 변합니다. 나이도 불문이라 해 놓고선, 선을 보면 180도 달라집니다.
기독교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이슬람 인구는 기하급수적입니다. 한국 교계는 이 점을 위기로 느끼고, 각 교회마다 노처녀와 노총각들이 열매 맺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속히 결혼을 시켜야 합니다. 이러다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종적을 감추게 될 수 있음을 시급히 인식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이들을 위한 사역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선 그리스도인들부터 모범적으로 '삶의 질' 기준을 향상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질적인 면에서 탈피하여, 오직 믿음으로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제공하여야 합니다. '물질'이 삶에 있어 최고라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중산층 사고방식을 고치고,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약자들이 주님 주시는 믿음과 평안의 참 복을 누릴 수 있도록,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나보다 먼저 이웃을 돌아보며, 내게 있는 것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사회의 잘못된 불의에 저항하며, 겸손한 약자에게 함성으로 응원하고, 불행하고 소외된 이웃에게는 그들의 문제를 친절하게 도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그리스도인들과 지도자들은, 약자의 절규를 한낱 불평불만에 불과하다며 팽개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귀를 활짝 열고, 비겁하게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아부하면서 약자를 짓밟는 일은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올바른 진언을 들었을 때는 회개를 하고 방향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높이거나 자랑으로 드러내는 일을 삼가고, 오직 주님을 높이고, 가난한 이웃을 드러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되시기를 엄숙히 충고합니다. 말보다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 주며, 주님의 따뜻한 미소를 그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내 친구, 내 부모, 내 가족처럼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어야만, 한국 사회도 '삶'의 기준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 (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