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성(根性)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성질을, 그리고 건성(乾性)이란 어떤 일을 정성스러운 마음 없이 대충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 건성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에게 '다음에 내가 밥 살게',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자'고 합니다. 비신자들은 '내가 다음에 술 살게' 하고 지나가는 말로 '타성'에 젖어 '건성'으로 말합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은혜 많이 받으세요!'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아멘' 등 입에 발린 소리를 습관적으로 타성에 젖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목사님·집사님과 식사 약속을 했답니다. 목사님은 이를 기억하여, 그 날짜에 전화를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같은 구역의 집사님에게 전화해서 '지난번 목사님과 대화할 때 그냥 '건성'으로 했던 말인데 오늘 전화가 와서 난감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집사님은 '아니, 약속을 했으면 지키셔야지요!' 하면서 '제가 식사를 대접할 테니 약속한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답니다. 그리고 집사님은 목사님과 약속 장소 앞에서 만나, 간판에 적혀 있는 메뉴를 보고 목사님과 의논 후 결정하여 식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장로님은 이미 도착해서 메뉴를 주문하고 있더랍니다.
이 집사님은 정말 황당했습니다. 장로님이 식사비를 부담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 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을 이미 주문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음식 취향이 서로 다를 수 있고, 그 장로님은 매월 연금을 포함해 400만 원 넘는 수입으로 생활을 한다고 늘 자랑 삼아 말했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인 그 장로님이 직장도 없이 어렵게 생활하는 집사님의 대접을 받는 것은 모양새가 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산을 했습니다.
'건성'이든 아니든 이왕 약속을 했으면, 당연히 장로님이 대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번 같은 경우는 아주 나쁜 종류의 '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평소 늘 습관적이던 장로님의 '건성'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중대한 실수로 이어진 것입니다. 일상생활의 습관들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강자에게는 아부하고, 자신보다 약하고 힘 없어 보이는 분들에게 군림하는 것은, 믿음의 식구로서의 행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식구들은 습관적으로 하는 '건성'을 타파하고, '진실' 속에서 주님의 몸 된 제단과 성도를 위해,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을 좋은 뜻으로 사용되는 복음적인 '진실'로 사랑하며, 즐겁고 행복한 예배를 위해 마음 깊이 '근성'을 담았으면 합니다. 지도자라면 다소 손해가 있을지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온돌'이 되고, 좋은 일을 양보하는 너그러운 미덕을 가짐과 함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출 23:1-3)!"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사회와 교회 내 정의를 추구해 나감에 있어 개인의 올바른 도덕과 공정한 처신을 기초로, 마냥 '건성'으로 일관하던 세월을 과감하게 바꾸고 새로운 마음과 미래를 향해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진실(眞實)'은 '거짓 없이 바르고 참됨'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①truth ②true ③sincere ④fact 입니다. 반면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며서 말하는 것'입니다.
발생했거나 현재에 실존하는 일을 '사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인식의 근접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진실에는 거짓이 없고 바르고 참되다는 '주관'이 뚜렷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이라는 'fact'는 하나이지만, 하나인 사실을 놓고도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음도 유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마다 주관을 나타낼 때는 과연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일까요? 이는 개인이 사실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그러나 교인들 사이에서 '진실'이 짓밟히고 거짓이 판을 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주님의 말씀을 믿는 이들인지 분별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저마다 사회적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최소한 세상을 향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자처한다면 견지해야 할 자리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오직 '진실' 되게 사는 것, 그리고 그 '진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적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실'된 '삶' 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은 기본이고, 거짓을 보면 당장 물리칠 수 있어야 하며, 진실을 말하는 자의 눈물들을 닦아 주는 마음으로 변화해야 참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고, 불행을 당하는 이들의 호소에 귀를 닫아 버린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실'에 메마르고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 찬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힘이 되어 주는 비옥한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마른 논에 '비' 같은 수분이 필요하듯, '진실'된 사랑의 수분을 이웃을 향해 뿜어낼 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제발 '신실'하고 '진실'된 교인들이 되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실' 없이 교회 건물 안에서 우글거리며 내뿜는 거짓된 '함성'과 '건성'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혼돈에 빠져 있다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