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교회사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뜨거운 논쟁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가?❞라는 질문은 식지 않고 오늘까지 식탁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6시에 주유소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만났습니다. 그 분과 나눈 대화도 역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이야기였지요. 그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고, 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한가지 우스운 사실은요, 우리 둘 다 같은 성경을 펴고 서로의 주장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재미있지요? 어떻게 같은 성경을 보는 두 사람이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처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성경이 예수님에 대해서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해석 때문입니다. 벧후 1:20과 3:16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생이 좌우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해석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생이 좌우된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여호와의 증인처럼 그 반대로 생각하시나요?
반론 검증: 여호와의 증인들이 인용하는 구절과 그 해석은 여러분도 다 아시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대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확실하게 증거하는 성경의 구절 몇 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이번 글에서는 로마서 9:5만 다루도록 합니다. 로마서 9:5로 가 봅시다.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로마서 9:5)❞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구절을 헬라어로 보면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이라는 헬라어(σάρκα) 뒤에 콤마가 찍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한 번 헬라어 성경을 볼까요?
ἐξ ὧν ὁ Χριστὸς τὸ κατὰ σάρκα, ὁ ὢν ἐπὶ πάντων θεὸς εὐλογητὸ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ἀμήν.
여호와의 증인들의 말처럼 육신(σάρκα)이라는 단어 뒤에 콤마가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하여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 세세에 찬양이 있으리로다, 아멘❞
한국어 번역과 많이 다르지요? 한국어 번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위에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는 송영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본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부께서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는 송영이 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처럼 이 구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해석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여기까지만 보면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이 맞습니다.
반론 비평: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헬라어를 어설프게 알기에 만들어지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쓰인 고대 헬라어에는 콤마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고대 헬라어 사본을 보면 콤마도 없고 띄어쓰기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사진을 보세요.
그래서 읽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지요. 그래서 나중에야 비로소 콤마와 띄어쓰기, 그리고 장과 절이 삽입 되었는데, 문제는 신학적으로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을 신중하지 않게 삽입했다는 것입니다. 고로 후대에 찍힌 그 콤마를 가지고 로마서 9:5를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해석하는 것은 마치 "누나가방에들어간다"는 문장을 "누나 가방에 들어간다"로 해석하는것과 매 일반이라는 것이지요.
진실을 찾아: 그렇다면 고대 헬라어로 로마서 9:5를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한 구절이 됩니다. 그 이유를 몇 개 열거해 보겠습니다.
- 로마서 9:5에 ❝찬양❞이라고 번역된 헬라어(εὐλογητὸς)는 송영을 나타냅니다. 헌데 바울의 글에 나타나는 모든 송영은 앞에 있는 문장을 꾸미거나 그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 내용과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송영은 전혀 없다는 말이지요. 고로 ❝찬양 받으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송영은 앞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꾸며주는 것으로만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써 찬양을 받으셔야 할 주체라는 것이지요.
- 신약 성경에서 송영을 나타내는 ❝찬양❞이라는 헬라어(εὐλογητὸς)가 독립적 용법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장의 첫 머리에 와야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9:5에는 문장의 첫 머리에 쓰이지 않고 중간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찬양 받으실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송영이 문맥과 상관없는 성부 하나님께 돌려지는 것이 아니라, 문맥속에 주인공으로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돌려짐을 말합니다. 역시 예수님께서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써 찬양을 받으셔야 할 주체라는 것이지요.
- 이 송영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것이 되려면 ὁ ὢν ἐπὶ πάντων θεὸς εὐλογητὸ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에서 ὢν이 빠져야 합니다. ὢν이 있다는 것은 송영의 주인공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심을 밝힙니다.
- 이 송영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것이 되려면 ❝하나님❞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θεὸς)앞에 정관사가 붙어야 합니다. 정관사가 없다는 것도 송영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심을 밝히지요.
- 구문론상 존재를 나타내는 분사 ❝계셔서❞로 번역된 헬라어(ὢν) 는 신성만 있으신 성부 하나님께 사용되는 단어로 맞지 않습니다. 인성과 신성을 함께 입고 계신 예수님께 사용되는 것이 문맥상 맞습니다. 그래서 송영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문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볼 때에 ❝계셔서❞로 번역된 헬라어(ὁ ὢν)는 앞에 있는 명사인 ❝그리스도❞를 받습니다. 송영의 주체가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이지요.
- 문맥적인 흐름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로 바울이 문맥을 무시하고 갑자기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송영을 기록했다는 것은 억측입니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