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젊은이들이 편하게 찾아와
이중언어로 예배볼 수 있는 공동체
필리핀 중국 등에 선교사 파송하고
주님 마음으로 제자훈련에도 열심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는 베다니한인장로교회 담임 방수민 목사.
(Photo : 기독일보)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는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는 베다니한인장로교회 담임 방수민 목사.

버뱅크 소재 베다니한인장로교회(담임목사 방수민·Address: 2401 N Brighton St.)는 북미주개혁장로회(Christian Reformed Church)에 소속된 탄탄한 중형교회다. 1993년 시작돼 22년의 역사를 지닌 이 교회에서는 약 200명의 출석교인들(주일학교 포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돌 삼고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

방수민 목사가 불신자 1명과 함께 시작한 교회는 초창기에 저녁마다 전화번호부를 넘겨가며 한인 가정마다 전도를 다닌 끝에 1년만에 30여명의 성도를 모았으나 노스리지 지진이라는 날벼락을 맞아 교인의 절반 가량이 동네를 떠나는 시련을 맞는다.

“불신자 전도로 출발한 교회이기 때문에 일정한 숫자를 채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생각했지요. 그렇지 않으면 한인교회가 이미 많은데 제가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워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은 선교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지 않으시더군요.”

방 목사는 “그후 교인들이 수평이동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목회가 별 의미 없게 느껴진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다”며 “그것은 ‘LA는 선교 전략지’라는 깨달음이었다. 안디옥처럼. 이곳에 건강한 교회가 하나 서면 그것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그런 교회 수십 개를 세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 세대를 통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든 적든 교회가 건강하다면, 믿을 것이 없는 이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성경적 가치관, 기독교적 윤리관을 바로 심어준다면, 그들이 차세대 리더들이 되리라는 게 그의 확신이다.

“미국은 하나님께서 꼭 백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모두에게 주신 땅입니다. 부모들이 아무리 힘들어도 올곧게 믿고 꿋꿋하게 이민생활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좋은 옷과 운동화를 사 주는 것보다 기도하며 사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가슴에 각인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이 절대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방 목사에 따르면 이민교회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선교의 사명, 지도자를 키우는 2세 교육, 서로 위로하고 돕는 사랑의 공동체 일구기 등이다. 큰 교회는 큰 교회의 사명이 있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의 임무가 있다는 지론을 그는 갖고 있다. 하지만 작은 교회는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오기에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

평범한 이민자로 살다가 뒤늦게 예수를 믿었던 사람으로서, 그는 평신도의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고단함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국땅에서 야심만 갖고 주변인으로 살면서 실컷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이냐”고 그는 반문한다.

베다니한인장로교회 교인들이 진지하게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Photo : 기독일보) 베다니한인장로교회 교인들이 진지하게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

베다니한인장로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미국화가 많이 된 공동체라는 것.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예배 볼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평가다. 주일예배 때 영어통역이 제공되고 영상에 성경구절을 띄울 때도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등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오는 이들이 많은 영어권 회중을 확실하게 배려하고 있다. EM을 맡고 있는 오클라호마 출신의 백인 전도사가 있어 교역자 회의도 영어로 진행한다.

“교회의 소중한 자산인 젊은 목회자들이 중도에 하차하는 일이 많은데 이는 담임목회자들이 그들의 네트워킹을 돕고 훈련시키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방 목사는 “한국에서 오는 이민이 많이 감소하고 있어 앞으로 한인교회들은 어차피 다민족 교회로 서서히 변해갈 것이다. 담임목회자가 큰 그림을 그리며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모가 작아도 이런 철학을 가지고 목회하면 훌륭한 부목사들이 서로 오려고 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결국 패전한 것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만들어 상대편에 위협을 주기는 했으나 파일럿을 희생시켰기 때문이지요. 비행기는 1년이면 제조할 수 있지만 파일럿을 양성하는 데는 5년이 걸려요. 그러므로 교회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잘 키워내야 합니다.”

이 교회는 선교에도 각별한 마음을 두고 사역한다. 중국과 필리핀에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는가 하면 7~8명의 협력선교사를 두고 복음을 전한다. 교인들은 옷, 신발, 가방 등 쓸 만한 구제품들을 모아 보냄으로써 이들을 후방에서 돕는 일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이 시대에 태어나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는 자각 때문이다.

또한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나는 일꾼으로 키워내는 제자훈련에도 힘을 쏟는다. 녹록하지 않은 이민생활에도 불구, 교인들이 안쓰러울 만큼 열심히 따라온다고 방 목사는 전한다.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난 방 목사는 캘리포니아 루터란 대학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하고 풀러신학대학원에서 M.Div.를 받았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1983년 마지막날 술김에 아내를 따라 은혜한인교회의 송구영신 예배에 나갔다가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날 한 번 믿게 해 보시라는 마음이었는데 3개월 뒤 하나님께서 꿈에서 나를 지옥에 넣으셨다가 꺼내시는 바람에 기적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불을 받아 전도하러 돌아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그는 장사를 하고 돈을 벌어도 기쁘지 않고 세상 것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끊어지는 것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가운데 목회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종교철학부터 공부하도록 인도해 주셔서 신앙적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신학생 시절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생을 직사하게 했으나 동시에 당장 이튿날 아침에 먹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면 누가 문밖에 음식을 놓고 가는 등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나던 때이기도 했다. 교회를 개척한 뒤에는 렌트해 사용하던 현 예배당 건물을 1,300번이나 찾아가 기도한 끝에 시가 120만달러 보다 크게 낮은 약 70만달러에 백인 교회로부터 구입하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교인들로부터 기도하는 목회자,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설교하는 목회자라는 말을 자주 듣는 그는 지난 2007년 ‘보리 이삭 속에 숨은 사랑’(생명의말씀사 간)이라는 제목의 간증수필집을 냈다.

이제 사역이 한 텀(term) 정도 남은 나이가 되어 간다는 방 목사는 “교세 확장에만 관심을 갖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다음세대에 리더십을 잘 계승하는 일에 마음이 간다. 목회 잘 하는 목사는 많아도 끝을 잘 맺는 목사는 드물다. 나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다”라고 고백하며 처음보다 나중이 더욱 아름다울 베다니한인장로교회의 중장기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

문의: (818) 845-5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