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에는 한국중국선교협의회 주관으로 제5차 2015 선교중국 컨퍼런스가 '제자훈련과 선교중국'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특별히 주제강연을 펼쳤던 천 형제의 글을 요약 정리했다. 천 형제는 1987년부터 중국의 변화가 컸던 28년간의 제자훈련 사역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음을 확신하며 메시지를 전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다니엘서의 이 구절은 그가 중국에서 오랜 기간 섬김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힘이 됐다. 물론 실패와 좌절을 겪을 때도, 고난을 당할 때도 있지만 주님이 중국을 사랑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주님은 중국을 어떻게 사랑하실까?"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의 답을 강의를 따라가며 찾아보기로 한다.

"주님은 중국을 어떻게 사랑하실까?"하는 앞의 질문에 그는 복음이 중국 전역에 전파되고 있으며, 중국교회를 사용하셔서 중국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중국교회가 부흥하여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이며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중국교회는 견고한 교회로 성장할 것이다. 그런 후 전면적인 선교가 중국교회에서 강력하게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도한다. 어떤 때는 마음이 급해질 때도 있어서 바로 지금 중국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느낄 때도 있다. 다 함께 중국교회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오늘의 중국교회를 어떻게 성장시켜야 하고, 중국교회가 어떻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제자훈련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선교중국 컨퍼런스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의 명사는 '제자'이다. 우리는 제자가 된 뒤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제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제자는 추상명사가 아니다. 제자는 우리가 큰 대가지불을 하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우리 자신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만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 그의 교회에게 주신 사명은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다.

존 스토트가 쓴 어떤 책에서 말하기를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제자가 있는데 이 세계는 지금 성경의 원리에 따라 훈련된 제자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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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하나의 단어를 언급했는데, 그것은 제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제자를 삼는 것이 시작되는데 주 예수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떤 사람이 주님을 따르려 한다면, 날마다 그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서 본다면, 중국교회는 많은 제자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그 비율은 어떤가? 만약에 우리가 이런 비율을 생각해본다면, 8천만 기독교인들이 중국에 있는데 진정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얼마나 있길 바라는 걸까? 우리는 이런 비율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교회를 위해 많은 걱정을 한다. 도대체 진정한 제자를 얼마나 양육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큰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사도행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제자훈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엄격한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제자 삼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많은 사역을 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제자를 삼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제자훈련의 범위는? 하나의 범위는 "우리가 어떻게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이들 제자들은 선교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땅 끝까지 나가서 주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제자훈련을 할 것인가?

제목으로 삼은 것은 '선교훈련을 위한 제자훈련'이다. 사실 이 제목을 '선교를 위한 제자훈련'으로 고쳤다. 그것은 훈련을 받은 제자들은 선교적 목적에 도달해야 된다는 말이기 때문에 제목을 수정했다. 첫 번째 문제는 우리는 어디서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가? 중국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것은 우리의 견해와도 맞는 것일까? 우리가 한 사람의 훈련자라면, 우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훈련은 그들이 1년, 2년, 3년 후에,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훈련받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련된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선교라고 말하며, 우리는 선교 사역을 위해서 떠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들 제자들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서 제자들을 양육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양육한 제자들이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필요함을 본다. 많은 선교학자들은 우리가 가서 단지 복음을 전하고, 좋은 곳에 교회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선교 사역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것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하나의 모형을 주 예수를 통해 보았다. 그가 12명의 사도를 불러모으고, 그들을 인도하셨다. 후에 120명도 그렇게 하셨다.

사도행전 1장에서 마가 다락방에서의 무리들, 그들은 예수의 대사명에 대해 거절할 수 없었겠지만, 한편으로는 큰 부담 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대사명을 받은 후, 주 예수는 하늘로 승천하셨다.

사도행전에 2장에 이르면, 우리는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시면 그들이 감동을 받고, 대사명을 받아 복음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복음을 전한 뒤에는, 그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세우는 것을 본다.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가 이들을 훈련하신 후에야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다. 복음을 전하는 것의 중요한 하나의 결과는 곧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교회를 세웠다. 예루살렘교회를 설립한 후에 교회는 많은 제자들을 양육했지만 오래지 않아 예루살렘교회가 부흥하자 핍박이 시작됐다. 곧 스데반이 받은 핍박이었다. 제자들은 흩어졌다. 신기한 일은 이들 제자들이 흩어질 때, 사도행전 8장에서는 이렇게 각 지역으로 흩어진 제자들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각 지역으로 피난 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상 그들은 피난 간 것이었다.

제자들은 각 지역으로 피난 가서 흩어졌지만 성경에는 피난 간 이야기가 없다. 그들은 전도하러 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사마리아교회를 세웠다. 사도행전 11장에서는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사람들이 흩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베니게와 안디옥으로 곧장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후에 안디옥교회를 세웠다.

우리는 이처럼 간단하게 시작된 모형을 보면서 제자훈련은 기본적으로 교회 안에서 양육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교회가 양육한 제자들이 끊임없이 복음 전하는 일과 교회세우는 일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도행전 13장에서도 바울이 어떤 사람들을 데리고 동일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후에 바울은 설립한 교회에서 제자들을 양육하고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다. 사도행전 16장에 이르면, 마케도냐의 이상을 본 후에 그들은 유럽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하는 전략을 세운다. 그리고 복음은 계속해서 전해지고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고 온 세상에 복음 전하는 선교 사역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는 부디 일을 급하게 이루려고 하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치지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부흥된 후에 일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된다. 사도행전 2장을 통해 중국교회는 복음 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성경에서 이들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제자로 양육된 최소한의 3천 명을 볼 수 있다. 또한 구원받은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 가고 있음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베드로와 열한 사도들이 순수한 신앙을 전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회개하지 않는가? 유대인은 율법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할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의 죽음과 그의 구속, 그의 구원의 은혜를 의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요, 메시아시다. 이 회개는 유대인들이 그 당시에 엄숙하게 지키는 일 가운데 하나였다. 아마도 그들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거나, 공동체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하거나,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를 해야 하고, 예수를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 된다.

사도들은 믿음이 없었을 때는 무지한 백성이었다. 이들은 어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 끊임없는 사도훈련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계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들은 꾸준하게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지켰다. 서로 교제하며, 서로 왕래하며, 서로 사랑했다. 주를 믿는 사람들은 진실로 친형제보다 친자매보다도 그 이상이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는 것은 중요한 제자도 중의 하나다. 우리는 이 사람이 하루에 몇 시간을 기도하는지, 성경을 몇 장을 읽는지에 따라 주의 제자 됨을 평가한다. 요한복음 13장 17절에서 예수의 제자훈련에서 가장 분명한 것은 바깥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오랜 시간 제자들과 함께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는 이들을 진정한 제자들로 삼을 수 있었나. 그는 제자의 사랑에 대해 발을 씻기는 것으로 표현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제자들은 하나 되기 위하여 기도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하나 됨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자의 특별한 행동인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서로 사랑하라. 이것은 중요한 일이기에 영원히 사도의 훈련을 지켜야 한다. 그런 후에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고, 기도를 하는 것이다. 주를 기념하라, 주님을 위해 기도하라. 기도하면서 성령충만하고, 기도하면서 주의 말씀을 알아가고, 기도하면서 주 되심을 인정하게 된다. 이것은 제자의 태도이다.

사도행전 2장의 물질의 헌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교회는 물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 심지어 중국교회 안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절대로 헌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그들이 복을 받기를 원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원해서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는 것을 본다.(계속)

중국어문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