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박영식 교수. ⓒ 자료사진
일아(一雅) 변선환 선생 서거 20주기를 맞이해 변선환 아키브가 21세기 변화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변선환의 신학적 몸짓들을 재해석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학술서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트랜스-휴먼과 탈-종교 시대의 대화 신학"을 출판했다.
이 책의 출판에 대해 변선환 아키브 측은 "종교재판이라는 비극적 사건(1993년의 출교 처분) 이후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소극적 반응을 넘어서서, 이제 그의 신학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지구/한반도 상황에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신학적으로 검토한 작업"이라 밝혔다.
박영식 교수(서울신대)는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알아 변선환의 하느님 이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먼저 "개인적으로 일아 변선환 선생을 뵌 적도, 멀리서나마 그 분의 강의를 들은 적도 없다"고 밝히고, "뒤늦게 글을 통해 만난 선생님은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복잡하고 난해한 신학사를 얌전하고 깔끔하게 정돈해 주는 그런 '샌님'이 아니라, 제자를 향한 사랑과 시대를 향한 고뇌를 온 몸으로 받아 토해내는 열정의 신학자로 느껴졌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 시대가 무신론의 짙은 그림자가 일상화되어 버린 시대인 듯 하다고 말하고, "신의 부재와 버림받은 시대의 슬픔을 말하는 것이 한결 마음 편한 이 때, '어떻게' '어떤' 하느님을 말할 수 있을까?"라며 "이 물음 앞에 변선환 선생은 머리가 아닌 심장, 이론이 아니라 삶, 형이상학이 아니라 실존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고 했다. 덧붙여 "변선환 선생은 머리와 이론과 형이상학이 만들어낸 신의 죽음을 니체로부터 듣고, 심장과 삶과 실존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열어놓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변선환 선생에게 절망과 좌절과 고통과 죽음이라는 실존의 어두운 측면을 배제하고 희망과 낙관과 환희와 행복에서 신의 모습을 발견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참다운 의미에서 무신론적이며, 우상숭배에 속한다. 그는 "변 선생님의 하나님은 절망과 좌절과 고통과 죽음이라는 실존의 깊은 어둠을 들춰냄으로써 인간을 참으로 실존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을 참으로 구원 한다"면서 "그의 하나님은 인간 존재를 참으로 실존하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라 했다.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인간이 도피한 평균적 인간의 우상숭배를 폭로하고, 죽음과 고통으로 오히려 우리를 초대한다"면서 "하느님은 실존의 괴로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자신에게도, 인간 자신에게도 낯선 것이 아님을 계시할 뿐 아니라, 오직 이 실존의 고통을 통해서만 실존의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고 했다. 실존의 고통을 실존의 기쁨으로, 좌절과 절망을 환희와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경험하는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임을 감내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영식 교수는 이렇게 '변선환 선생의 하느님'을 정리했다. ▶인간의 현실과 동떨어진 또 다른 현실을 가진 초월자가 아니며, 초자연주의적 신이 아니다(그의 신론은 기존의 유신론, 곧 기독교화된 형이상학적 신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느님은 이성과 관념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사유와 언설의 객관적 대상으로 취급될 수 없다(그런 식으로 신의 존재유무를 논하는 것은 인간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실존적이며, 이 때 하느님은 고뇌하는 인간 존재에 이미 가까이 와 계신다(인간 실존과 하느님의 연관성은 기존의 교리화 된 신론 이전의 단계, 곧 인간 존재와 하느님의 근원적인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십자가의 하느님은 고뇌하는 실존으로 하여금 삶의 부정성을 하느님의 가능성으로 수용하게 하신다(인간 실존에 참여하는 하느님은 인간의 고난과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사랑의 하느님이며, 이런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곧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랑의 실천을 가능케 한다). ▶하느님의 구원은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고통의 수용과 참여다.
故 일아 변선환 선생
덧붙여 박 교수는 "그의 신학이 서구적 사변 신학과는 달리 삶의 실존을 중시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그의 하나님 이해도 자신의 삶의 토막과 깊이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밝히고, "그에게 하느님은 통치하고 다스리고 심판하는 이미지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품어 안고 함께 아파하는 여성적인 이미지를 지닌다"면서 "그에게 예수 십자가 죽음은 인간의 부정성에 대한 하느님의 한없는 수용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아들을 위해 새벽기도하던 변 선생의 어머니가 변 선생에게 영향을 줬음을 언급하면서 "그의 하느님 이해는 형벌 논리를 앞세운 가부장적 형상보다는 애틋한 모성적 형상을 지닌다"고 했다.
한편 논문집에서 학자들은 먼저 변선환 선생의 신학 대화 상대자로 '신 담론'을 삼고, 변선환 신학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어 불교와의 대화라는 주제 속에서 변선환의 신학을 조명하고, 2015년 현실 속에서 변선환 신학의 지평을 새롭게 모색해 봤다. 또 故 일아 변선환 20주기 추모 학술문화제에 발맞춰 이뤄진 이번 작업의 논문들은 7일 심포지엄을 통해 일부가 발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