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뉴스에서 전직 KTX 여승무원들의 '고용투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7월 13일로 투쟁 500일째를 맞았다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은 고속열차 KTX의 승무원으로 일했던 여성들입니다. 136대 1의 경쟁률을 뚫었습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여객기의 여 승무원처럼 땅 위를 달리는 고급 열차의 승무원으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갖고 일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일을 시작하면서 실망을 하게 됩니다. 열차를 운영하는 철도공사가 아니라 하청에 따라 인력을 공급하는 인력회사에 위탁 계약직으로 고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제복과 명찰도 자비로 구입하는 등 생각지 못했던 열악한 고용 환경에 견디다 못해 철도공사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고용투쟁입니다.

지금까지 500일 동안 기자회견, 각종 기관 점거 농성, 단식, 거리 행진, 촛불 행사, 토론회 등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200-300여명의 여성들이 조직되어 투쟁했지만 지금까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무런 해결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 바닥에서 합숙 생활까지 하면서 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노동조합 구호기금 등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 문제야 말로 말 한마디 잘 못하면 당장 벌 떼 같은 아우성의 대상이 되는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500일이라는 세월입니다. 거의 2년에 가까운 세월을 대부분 20대의 젊은 여성들이 '투쟁'에 보냈습니다. 이 기간이면 번듯한 석사 학위도 얻을 수 있는 기간입니다. 500일 전에 무엇을 하던 상관없이 젊은 시기에 전혀 새로운 인생을 창조할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아마도 분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당한 대우와 공평하지 못한 처우를 보면서 울분이 생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몇 달간의 억울한 처지를 해결하려고 20대 인생의 10%에 해당하는 기간을 쏟을 것은 아닙니다.

틀림없이 그들을 이용한 세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앞세워 또 다른 이해타산을 하고 있는 집단이 있을 것입니다. 분하고 억울한 심정은 옆에서 조금만 추켜 주면 쉽게 폭발합니다. 아주 쉽게 눈을 멀게 합니다. 앞으로 남은 50년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 속에서 소도구가 된 것입니다.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신앙생활에서도 그런 일이 없지 않아 벌어집니다. 작은 실패에 매여서 몇 년을 허송세월 합니다. 억울한 일 하나에 인생을 몇 년 씩 낭비합니다. 기분 나쁜 말 한마디에 병적으로 집착합니다. 한번 섭섭하게 대한 사람에게 몇 년 씩 마음에 쓴 뿌리를 묻고 삽니다. 목숨이 달린 일도 아니고, 천국의 문이 닫기는 것도 아닌 일에 투쟁하듯 몇 년 씩 온 정성을 다 씁니다.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하면서 작은 일에 흥분해서 큰일을 그르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사는 하루는 내일을 복되게 하는 일에 써야합니다. 새 날을 맞으면서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내 마음에 고리를 걸어 매는 일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에는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죄가 죄이기 이전에 죄는 얽매이기 쉬운 특징이 있습니다. 날로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죄가 아닌 것이라고 할지라도 얽매이기 쉬운 것이라면 죄악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 장세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