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개신교와 정교회 등 타 교회를 폄하하는 문건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기독교계가 술렁이고 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이 지난 10일 발표한 16페이지 분량의 이 문건은 로마 가톨릭 이외의 교회를 부적절한 교회(not proper churches)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리스 정교회 역시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결함이 있다(defective)고 주장하고 있다. 또 “그리스도는 오로지 한 교회를 세웠고 이것은 가톨릭으로 존재한다”면서 “가톨릭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 세계 교회는 충격과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독일 복음주의루터교회연합(United Evangelical Lutheran Church)의 프리드리히 베버(Friedrich Weber) 주교는 “이번 발표는 참 슬픈일”이라며 “바티칸의 이번 공식적인 입장은 현재 다른 기독교 커뮤니티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회간 대화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독일 복음주의교회연합(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의 수장인 볼프강 후버(Wolfgang Huber) 주교는 “교황청의 발표가 개신교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며 “바티칸의 이번 발표는 공격적인 발언들을 반복하고 있고 개신교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할 기회 역시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의 세트리 뇨미(Setri Nyomi) 사무총장은 “우리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가톨릭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단 하나의 교회라는 배타적인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감독교회(Episcopal Church)에서 에큐메니칼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엡팅(Christopher Epting) 주교는 “성공회 신자로서 나는 교회간에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에큐메니칼적인 대화를 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해 갈 것이다. 교황청의 이번 발표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했다.

프랑스개혁교회연합(The French Protestant Federation)은 “이것이 가톨릭 내부의 발표(internal pronouncement)이지만 외부적 반발(external repercussions)에 부딪힐 것이다”라고 평했다.

과거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부터 개신교와 정교회 등 타 교회들과의 대화와 일치를 강조해 왔다. 더 나아가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이슬람, 불교, 힌두교 지도자들을 이탈리아에 초청해 ‘세계 평화 기도의 날’ 행사를 여는 등 종교간 화합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교황청의 이번 문건은 그 동안 교황청이 교회간 화합과 일치, 종교간 대화를 추진하던 기존 노선에서 완전히 변화된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에 취임하기 전인 추기경 시절, 신앙교리성의 수장을 지낸 바 있으며 보수적 가톨릭 학자로서 가톨릭의 교리를 수호하고 가톨릭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 교황이자 신앙교리성의 전 수장으로서 베네딕토 16세는 이번 문건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특히 최종적으로 이 문건이 교황에 의해 선포됐다는 점에서 전 세계 교회들은 교황청의 공식적인 입장 변화와 태도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