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들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 적이고 육적인 것을 위해 부르짖고 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른 신앙정신과 사상도 없고, 영적으로 친밀하지도 못한데 어찌 그런 소원을 들어주겠습니까? 그래서 목회자들은 진리의 교훈을 전해야 하겠고, 성도들은 교훈분별을 잘 해서 진리를 취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교인들도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가지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달라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파 교인들에게 저주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또한 무엇 때문에 바리새파는 예수님을 죽이게 됐을까요? 바로 그들의 교훈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적인 대화를 하다가 서로 통하지를 않으면"너는 네 방식대로 믿고, 나는 내 방식대로 믿자."고 합니다. 또는 상대를 향해 "너는 왜 그렇게 골치 아프게 믿느냐, 너만 잘 믿는 것이냐, 네 말대로라면 오늘날 교회가 다 잘못됐다는 것이냐" 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옳은 소리를 들으면 "내가 바로 믿어야 되겠구나, 고쳐야 되겠구나."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만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질적인 신앙을 움켜쥔 채 자신이 추구하고 소원하는 세상적인 욕심을 위해 전혀 딴판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고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교훈, 성경을 주신 목적도, 성령님을 보내주신 목적도, 우리를 구원 하신 것도, 우리를 구원해서 바로 천국에 데려가지 않고 사건과 환경을 주셔서 훈련과 연단을 시키는 것도 모두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본질을 입혀주려 하심이고, 우리를 하나님의 온전함으로, 만들어 주시고자 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목적을 내 기준과 표준을 삼아 "예수 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되자," 하거나 "너는 네 식으로 믿고, 나는 내 식으로 믿다가 천국에 가자"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과 질적으로 통하면 선이 되고, 통하지 않는다면 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지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옳은 신앙지식에서 열심도 나오고, 부지런도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아무리 예수이름으로 해도 이방신의 정신에 불과합니다.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만큼 옳은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난을 만났을 때 내가 믿는 하나님이 그 환난을 해결해주실 것을 굳게 믿고 부르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서 그 뜻을 잡고 환난을 주신 목적을 깨달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고 믿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