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그분들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런 스승들을 거치지 못했다면 지금의 위치에도 오지 못했다. 어떤 스승 한 명이 빠졌다면 지금과 같은 선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박지성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면서 했던 말이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알고 보면 스승들의 영향이다. 우리가 만난 스승들 가운데는 지대한 영향을 주어 내 인생을 바꾼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냥 스쳐 지나간, 평범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편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과연 어떤 스승일까?
요즘 진정한 스승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한탄한다. 얼마 전 나이지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가 여학교를 습격하여 200여명의 여학생들을 납치했다. 그날 밤 학생들은 기숙사 방에서 잠을 자다 총소리를 들었다. 놀라서 밖으로 나가 앉아 있었다. 이때 교사들도 여학생들과 함께 있었다. 교사 중 한 명은 문을 잠그면서 '달아나지 말라'고 했다. 결국 학생들은 탈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도망쳤다. '스승답지 않은 스승'에게 공분했다.
우리 역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어른답지 못한 어른'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었다. 세월호 선장은 배와 학생들을 버리고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탈출했다. 살기는 살았지만, 산 게 아니다. 해경이나 정부 당국에서는 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겼다. 구원파의 실체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기성세대는 '어른답지 못하다'던 성장세대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이 부끄럽게 됐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승다운 스승'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그나마 위로를 삼는다. 단원고 영어교사인 남윤철 교사는 2대 독자이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당시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학생들을 대피시키다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의 아버지는 충북의 어느 사립대 교수인데,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학생들을 살리려고 노력하다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저는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목사다운 목사, 어른다운 어른, 부모다운 부모, 스승다운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 스승인데. 스승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어떤 점을 점검해야 하는가? 나이나 경륜이나 직분이 어른과 스승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점검이 필요하다. 신학만 끊임없이 개혁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도, 스승 된 우리 모두가 부단한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설교 후 때때로 보내주는 문자를 보며, 가슴 벅찬 기쁨과 감격을 감출 수 없다. 이게 목회자의 행복이 아닐까? "금과 은 나 없어도... 목사님의 은혜로운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깨닫게 하시니 무척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목사님, 주일 말씀이 저의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것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으로 인도함 받는 하루 되시기를 바라며, 저도 말씀에 젖는 하루 되게 기도해 주세요. 저도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금요 합심 기도회 후에 카톡으로 문자가 왔다. "지금 도착했는데, 찬양 가운데 모든 성도들이 저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오늘 머리가 깨질 듯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힘을 내겠습니다. 목사님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 화요일 새벽에 장문의 문자가 왔다. "필요할 때 우리 모두에게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목사님의 인도 하에 귀한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남은 5일 동안도 저희들의 영혼이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께 집중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과 교회가 빛을 발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고난주간 되기를 기도하며^^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의 갈한 심령을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와 같은 귀한 말씀을 주심에^^ 남은 시간도 기대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주일 낮에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지혜가 좀 없어도 괜찮아. 탁월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면 괜찮아. 하나님과 동행하면 괜찮아. 금요 합심 기도회 때 주신 말씀으로 많은 힐링이 됐습니다. 주옥 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난 답신을 보냈다. "난, 늘 집사님 자체를 보는 것으로 힐링이 된다오^^."
중고등부 헌신예배에 강사를 초빙하지 않고, 내가 강단을 섰다. 내 자식(?)들에게 친히 맛있는 양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서. 예배 후 제자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갔는데 문자가 왔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집사입니다. 저녁식사는 하셨는지요? 다름 아니오라 오늘 오후예배 때 들려주신 말씀이 매우 제게 은혜가 되어 톡으로 감사 뜻을 전하고 싶어 보냅니다. 성가대석 어디든, 예배석 어디든 우리 **이도 앉아서 들었음 하는 간절한 맘에 제가 열심히 듣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가 하나님께 합한 사람으로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며 나가겠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때때로 짧은 쪽지 편지로 내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사님께! 목사님께서 저희 목사님이신 게 참 좋고 자랑스러워요. 제가 자랑하고 다니는 거 모르시죠? 목사님의 따뜻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요. 목사님의 가정을 보면서 엄마 아빠의 소중함, 자녀의 존귀함을 봅니다. 닮고 싶은, 따라하고 싶은, 그냥 보면 미소가 짓게 되는 그런 가정이에요. 계속~ 쭉~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시길 바래요. 목사님과 사모님과 자녀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목사님! 성천교회에서 목사님을 만나고, 목사님의 등 뒤를 보며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시는 모습! 그 모습이 저의 삶의 롤 모델입니다. 저희 남은 삶의 모습도 목사님의 그 모습 보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위해 사시는 목사님을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정성 어린 선물을 준비해서 써 보낸 청년의 편지는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의 들뜨게 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 목사님께서 주시는 달고 오묘한 그 말씀에 늘 감사드립니다. 말씀으로나, 생활적으로나 늘 모범이 되어 본을 보여주시는 목사님께 작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어 선물을 준비했어요. 더 큰 마음과 좋은 선물로 섬겨 드리고 싶지만, 아주 작은 것이나마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늘 기도와 순종의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같은 마음으로 목사님을 섬기도록 노력하고, 기쁨으로 목사님의 말씀 따르도록 노력할게요. 늘 마음을 다해 성도들을 섬기는 목사님께 영력과 체력이 충만하기고,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작은 손길로 ** 드림."
생각하면 할수록 그저 감사하다. 한없이 부족한데. 그저 은혜로 설교하고, 사역할 뿐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부족한 자에게 스승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게 하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