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송 총장
(Photo : 기독일보) 제이슨 송 교장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잘 설계되었고 멋지게 지은 빌딩이라 해도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했기에 다리가 무너지고 쇼핑몰이 가라앉고 집이 땅 밑으로 꺼지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사람은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물론 사고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게 기본이 안 되었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정말 기본적인 매너, 예의, 태도, 자세, 언어, 행동 등이 안 된 사람이 많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고 처음엔 손색없어 보이는 사람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 “아, 원래 기본이 안 된 사람이었구나”라고 혀를 찰 수 밖에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초면에 반 말 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반말을 해 오면 정말 불쾌하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에게 그대로 반말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헌데, 친절하게 대해 주고, 좀더 정중히 대해 줘도 계속 반말을 하는 사람은 다시 상종하고 싶지 않다. 요즘 어느 대형교회 목사가 설교 중 노인에 대해 비꼬며 반말을 했다는 동영상이 유투브에 떴다. 참 딱한 소식이다. 그 목사의 기초는 무엇일까? 그 분은 기본을 갖춘 분인가? 이런 사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목회자가 “기본이 안됐다”라고 “까는” 것 아닐까? 누구를 만나더라도 정중히 대해 주고 예의를 갖추자. 그게 상책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자동차 정비소에서 불필요한 수리를 속여 하게 하고, 기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겐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또, 중고 부품을 새 것이라 속여 설치하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이런 일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자주 일어난다고 하는데, 남을 속이며 돈을 버는 사람은 정말 기본이 안 된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의 “거짓”과 “속임”에 대처하려면 소비자가 기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견적도 여러 개를 받아 비교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 소비되는 시간이 바로 남의 거짓으로 인해 지불하는 대가이다. 그러니, 정직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돈을 벌자. 거짓으로 얻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힘을 남용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비겁한 사람도 많다. 초등학교 통학버스 운전을 해 온 어떤 이가 자신의 버스를 타던 어린이들에게 금품을 요구한 참담한 뉴스도 있고, 학교에서 힘으로 약한 학생을 짓누르는 못난 불리(bully)들도 많다. 직장에서도 직책과 권위로 아래 사람을 못살게 하는 고약한 상사가 있다. 돈이 좀 있다고 남을 함부로 대하는 그런 사람도 있다. 다 자기의 힘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며,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기본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 “큰 사람이 되려면 남을 먼저 섬겨라”라고 가르치셨다. 우리 시대에 좀더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귀한 가르침이 아닌가?

우리 사회가 약자를 비하하고 섬기지 못하고 있음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다. 젊은이만 선호하는 기업들, 새 것이 더 좋다고만 여기는 소비자들, 전통과 역사를 그저 고리타분하게만 여기는 사람들. 디지털 세대는 비디지털 세대를 마치 불필요한 부품같이 여긴다. 그런데, 윗사람과 노인을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회는 정말 기초와 기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아닌가? 고령화 되어 가는 우리 사회. 베이비부머나 노인을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존재로만 취급한다면, 부모를 공경하고 노인에게 존경을 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어기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기초란 무엇일까? 겸손히 남을 더 존중하는 것,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자. 기본이 제대로 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더 나아가 타인에게도 인정받는 그런 우리가 되어 가자. 그런 사람이 많으면 당연히 사회의 기초가 튼튼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