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감정을 사랑으로 승화시켜 오랫동안 지속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오만과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는 것이 상대를 이해하고 신뢰하는데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잘 그려내어 놓은 책이 있는데 그것은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로 <오만(pride)과 편견(prejudice)>이다. 이책의 핵심은 19세기 영국의 남성 중심의 신분제도 사회 속에서 일어난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책을 조 라이트 감독이 2013년에 <오만과 편견>이라는 영화로 제작했다.
영화의 내용을 보면 좋은 신랑감에게 다섯 딸들을 시집 보내는 것이 마지막 인생의 목표로 생각하는 극성스러운 어머니와 딸들을 너그럽게 사랑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아버지와 함께 즐거운 삶을 사는 '베넷가(家)'의 이야기 이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베넷가' 가정에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자존심이 강한 영리한 소녀인 둘째 딸 엘리자베스 이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은 부호가 이면서 무뚝뚝한 '다아시'이다. 그둘은 시골 어느 저택가 댄스파티에서 처음만나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후로 서로가 사랑의 매력에 빠져,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둔 뜨거운 사랑을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고백을 한다.
그런데, 그때 언니 '제인'이 다아시의 친구인 부호가 '빙리'와 결혼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자신의 남자 친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철저하게 오만한 사람이라고 편견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나중에 다아시의 마음속에 진실을 알고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사랑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진실을 알기 이전에는 언제든지 상대에 대한 편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누군가와 그가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에 대해 편견을 갖기 이전에 분명한 원인이 있다. 이것은 바로 '돈과 권력'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고, 그것만이 삶의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여기는 교만과 오만이다.
이러한 실체를 확연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 한국 진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부의 관료들이 그동안 국민들에게 오만했던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비극적인 단원고 학생들의 죽음의 애도를 정치적으로 악용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국가 정보원이 청해진 해운에 세월호 취항을 1년 전부터 반대 했지만 회사는 보안 강화 각서를 쓰고 '부실' 운행을 했다. 그리고 국정원에서는 그후 한차례도 세월호의 문제점을 점검 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국민을 기만한 정부와 청해진 해운의 오만이이다. 그리고 "세월호 추모 집회에 학생들이 일당 6만원을 받고 집회에 참여했다고 허위보고를 한 정미홍 의원"이다. 대한민국의 정의 실현 국민연대의 대표라는 사람이 사실이 아닌 것을 허위 유포한 것은 참으로 국민들을 혼란시키려고 한 것이다. 또한 국민들을 보수와 종북세력으로, 백과 흙으로 나누려고 하는 어리석은 한 정치인의'오만과 기만'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회에 무서운 것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게 하고 국민들의 정서를 이분화 시켜 국민들간에 증오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신문, 라디오, 텔레비젼이나 SNS를 통해 이념과 사상으로 대립으로 갈등하게 한다. "백인들은 마음이 넓다", "흑인들은 강도가 많다", "학생이 머리에 염색을 하면 불량한 학생이다", "공부를 못하면 미래가 불투명하다", "성공하려면 좋은 대학에 나와야 한다", "미인들은 싸가지가 없다", "미국에 살면 영어를 잘한다", "여자같이 생겨서 연약해 보인다", "대모하는 대학생은, 다 종북세력이다" 이러한 것들은 무지한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심한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가진 편견들을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는 한 편견이 전혀 삶에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람과 세상을 편견을 가지고 보게 하는 선입관은 공동체를 해롭게 하고 분열시키는데 큰 문제의 요인이 된다. 이것이 증오심을 갖게 하는데, 찰스 케일러브 콜린은 "우리는 어떤 사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증오하며, 또 증오하기 때문에 알려 하지 않는다고 " 말했다.
우리사회에 오만과 편견이 제거 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실천해애 할 곳은 교회이어야 한다. <편견의 속성>이라는 책을 저서한 고든 W.올포트의 말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교회 신자들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편견이 더 심하다고"했다. 그것은 늘 이원론적인 시각에서 신앙관을 바라보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사건의 결과에 대해 판단하고 그 기준에 벗어나는 모든 사람을 죄(罪)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로 주어진 동기가 무엇이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 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회가 이기적인 것은 사회적인 공동체에 주어진 문제의 결과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건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에 대한 방법론을 제기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제시가 없다. 단지 이것을 하지마라(do not it) 혹은 이것을 하라(do it)으로 율법의 기준만 가르친다. 그러기에 신앙을 지극히 형식적이며, 윤리적 그리고 도덕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곧 바리새인들이 서기관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것이며,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정죄하는 편견을 갖는다. 이것은 철저하게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오만속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오만하고 교만한 종교지도자들을 예수님은 겸손하라고 가르치셨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기자도 자신을 낮추라고 교회 공동체에 선포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교회의 공동체의 기초는 예수님께서 진리의 복음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세우셨으며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만하고 편견'을 완전히 깨뜨리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할 때,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 소명의식을 주셨으며, 영혼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신분과 인종을 초월하셨다.
예수님은 창기 였던 막달라 마리아도 구원하셨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마리아 의 우물가 여인에게 구원의 생수를 주셨다. 교회는 인종, 민족, 성별과 신분을 초월하여 겸손으로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복음적인 제시를 통해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더욱이 교회는 오만과 편견을 내려놓고 주님의 눈과 주님의 사랑으로 가정, 사회와 민족을 건강한 토양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문의 전화 425-773-9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