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어느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파네라에서 이덕렬, 박지나, 조혜숙 전도사님과 커피를 마시며 멕시코 선교를 다녀오면 좋겠다는 목사님의 권고에 '네.. 한번 가야지요..' 라며 막연히 대답을 한 것이 급속도로 진행되어 지난 1월 6일부터 11일까지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있는 이사말의 깐뚜닐이라는 작은 도시를 다녀왔습니다.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돌아와 뜨거운 마음으로 이 후기를 쓰며 함께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었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유카탄반도에 있는 이사말(Izamal)에서 심방과 찬양, 간증집회, 미용봉사를 중심으로 사역하기로 했습니다. 2009년부터 우리교회가 섬겨온 이자말은 캔쿤공항에서 5시간 서쪽에 위치한 곳이며 에니깽농장에 이민온 한인후손들이 있는 마을입니다.

이 지역에서 20여년을 사역하고 계시는 이철남 선교사님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일정을 논의하던 중 떠나기 2일전에 아무래도 깐뚜닐(Kantunil)에서 사역을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사말의 위성도시인 깐뚜닐은 교회가 하나도 없는 지역이라 선교사님께서 작년부터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지역이라고 말씀을 들어와서 이번에 가면 한번 방문만 해볼 예정이었는데 이 지역에서 전 사역을 다 해야한다고 하니 어떻게 계획을 수정하고 다시 준비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상도 기존 교회멤버에서 초신자, 불신자이니 찬양선곡이며 집회내용도 다 바꾸어야할 형편이었습니다.

아니..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건 도저히 불가능이었습니다.
어째야 하나..
찬양팀은 어떻게 구성해야하지?
교회도 없는데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하나?
마치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물은 것처럼 내 상식으론 도저히 답이 안나왔습니다
'선교사님께서 그 지역에 더 필요한 사역이라 그리 하셨겠지..'
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
'그러나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우릴 그곳으로 인도하시겠지..'
여러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도대체 깐뚜닐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여 구글맵을 찾아보았습니다. 이사말에서 남쪽으로 10마일정도 떨어져있는 인구 6000명의 작은 도시이네요. 그곳의 거리를 보고 땅색깔, 나무들, 사람들 모습, 건물, 가옥형태들을 바라보며 2번이나 다녀와서 익숙한 이사말이 아닌 황량하고 낯선 깐뚜닐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애써보았습니다.

1월 6일 출발하는 당일 아침 목사님과 한재학전도사님의 배웅을 받고 좀 딜레이가 되긴했지만 평범하게 멕시코단기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여정속에 그 떠남 부터가 예사롭지않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는것을 안 것은 사역을 다 마치고 1월 11일 밤 11시 덜레스공항에 도착하여 박지나 전도사님의 카톡에 들어와 있는 한통의 메세지를 받아보고 난 후였습니다.

"전도사님, 이번 선교여행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잘 되어질것을 확신합니다. 선교팀이 떠나신 후 워싱턴지역에는 강추위가 찾아와 그날 오후부터 모든 공항이 닫았고 수많은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떠나지 못할뻔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전도사님 일행은 진정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출발하셨다는것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라는..

원래 우리선교팀은 목사님을 모시고 1월 7일(화)에 떠나려 했습니다. 목사님은 도저히 빠질 수 없는 행사가 1월 6일날 있어서 너무 짧은 여정이라 목사님께서 '나는 빠질테니까 6일날 정상적으로 출발하라'고 결정해 주시었습니다. 만약 목사님과 같이 가려고 7일로 잡았더라면 이번 멕시코 선교는 무산되고 말았을것입니다. 비행기가 조금 더 딜레이 되었더라도 우리는 떠나지 못했을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우리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왜 이자말이 아닌 깐뚜닐이어야 했는지..
왜 우리의 염려와 걱정이 기우였는지..
그날부터 멕시코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말씀하심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준비하시는 놀라우신 일들을 체험한 우리에게 이것은 서막일 뿐이었습니다.

기타 2명에 바이올린, 키보드, 싱어까지 구성된 훌륭한 찬양팀이 준비되었고, 초대교회의 시발점이었던 마가의 다락방같은, 꼭 그런 아름다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로 준비해 놓으셨던것입니다, 할렐루야!!!!

공항에서 픽업하러 나오신 선교사님을 만나 반가움을 나누고 곧장 이사말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였습니다. 이 고속도로는 450페소의 통행료를 내면 5시간 30분이 걸리는 로컬 길 대신에 2시간을 단축하여 이사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의 1주일 주급이 500페소인것을 감안하면 무척 비싸기 때문에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가격입니다. 그대신 비리경찰의 관행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길을 피할 수 있지요. 지난 2009년도에 선교갔을때는 로컬 길로 가다가 경찰에 붙잡혀 2000페소를 주고야 1시간만에 풀려났던것에 비하면 다행이다 싶습니다.

선교사님과 그동안의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이사말의 언약교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사택으로 가서 사모님이 정성을 다하여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는 교회로 돌아와 교회옆 방에 장의자 2개를 맞붙혀놓고 에어배드를 깔아놓은 훌륭한 숙소에서 선교 첫날 밤을 지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6시 새벽기도회에 마르셀로 선교사님이 '뛰지 말고 걸어라, 주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으로 자칫 선교의 열정으로 뛰어가려했던 우리의 행보에 지침돌이 될 귀한 말씀을 주시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오늘의 일정은 깐뚜닐 시청앞으로 가서 시청바로 옆에 붙어있는 학교가 끝나고 나오는 학생들을 만나 전도하여 오후 3시에 마리아휄리시아집에서 집회를 갖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생들도 11시30분이면 수업이 다 끝나서 할것도 없고 갈데도 없어 시청앞 마당에서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가지고 간 쵸컬렛도 주면서 친해지기 작전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로 만나면 사진도 볼 수 있다며 이름을 알아서 적은 다음에 선교사님께 알려드리곤 했습니다.

치킨을 오더하여 점심으로 먹기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6,7세 된 아이들이 몰려와서 함께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을'등 찬양을 불렀고 그 후에 마르셀로선교사님이 복음제시하시고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저들에게 복음이 들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오더한 점심이 와서 상을 차리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모여서 치킨 3마리 가지고 22명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임신 7개월된 15살 여자아이가 슬그머니 옆자리에 와 앉아서 치킨은 안먹고 밥만 먹고 있길래 치킨을 안 좋아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집에 가져가려고 안먹고 있는거라고 하더라구요. 내것을 다 덜어주고 나니 그제서야 치킨을 집어먹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마음이 안쓰럽던지요.. 미국에선 흔하디 흔한 음식들인데 여기서는 태중의 아이와 어린 엄마를 먹이고 키우는 귀중한 음식인 것을..

마리아네 들려보았는데 넓은 마당을 갖춘 비교적 안정된 집인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들어가니까 집주인인 휄릭스와 그의 친정어머니 나딸리아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어쩜.. 천사의 얼굴 같았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영접해주는 그 얼굴과 몸짓에서 사랑이 넘쳐나며 얼른 또르티아를 말아서 대접해주며 기뻐하는 모습이 정말 초대교회의 뵈뵈집사 같았고 루디아도 같았습니다. 작년부터 선교사님이 길도 없는 비포장도로를 털털거리며 다니시며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하신것이 열매를 맺어 바로 지난 주 목요일날 처음으로 이집에서 (자원해서 자기집에서 모이자고 했답니다)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하네요, 할렐루야!

예배처소는 담벼락과 자동차를 세워둔 사이 플라스틱 스레트로 지붕을 얻은 공간에 플라스틱의자들을 죽 놓고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양팀은 언약교회(izamal)의 알레한드레아라는 청년과 이사말과 깐뚜닐 사이에 있는 쑤짤(sudzal)이라는 교회의 기타치는 싸미라는 청년과 노래 잘하는 훼레사(Feresa) 아줌마를 같이 데리고 가서 우리 조혜숙 전도사님의 키보드가 합쳐져서 훌륭한 찬양팀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엔 이지역에서 단 한명뿐인 바이올린을 하는 싸울이라는 귀한 청년도 보내주시었지요.. 이 모든일이 하나님의 예비하심으로 되어진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집회중에 간증을 한 안드레아의 이야기를 또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어린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25세의 싱글 맘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가정을 버리고 도망을 가서 오전에는 시청 앞 거리에서 건강음료를 팔고 오후에는 집에서 해먹(Hammock)을 만들며 어렵게 살아가는 젊은 여자입니다. 이철남 선교사님이 길에서 만나 전도를 하고 성경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안드레아가 틈틈이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위로자(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을 읽었다고 합니다. "아직 성경을 다 안 읽어서 위로자가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삶에도 그분이 오셔서 위로받고 싶다" 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말씀을 읽고 그대로 믿는 안드레아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느곳 어느나라 누구에게든 말씀이 들어간 곳에는 역사가 일어남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음날 생활필수품을 사들고 안드레아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집들이 모여있는 동네를 지나 축구장같은 공터를 지나 나무와 덤불이 우거진 곳으로 한참을 들어갔더니 딱 한채만 있는 것이 젊은 여자가 어린아이 두명을 데리고 사는 집이었습니다. 낮에도 인적이라곤 아무도 없는 그곳인데 깜깜한 밤에 불빛하나 없는 그곳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이 많을까? 어린 두아이를 범죄와 치안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두고 돈을 벌러나와야 하는 그 어린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너무 안타까와서 우리 박지나 전도사님이 선교사님, 돈좀 주고 가면 안될까요? 를 신음처럼 뱉어냈습니다. 알고있지요 우리도.. 단기선교온 사람들이 자꾸 물질로 주는것만 버릇들여 놓으면 현지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힘드시는지를요.. 그렇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나오면서 제발 저 아이들이 이곳에서 무탈하게 자랄 수 있게 하옵소서. 집을 동네 속으로 옮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또한 안드레아가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 말씀으로 힘을 얻어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호세라는 청년이 바로 지난 금요일날 아내가 죽었다며 아들 2명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자기 아내가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온 식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빛가운데로 걸어가며 살아서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고 회중들 앞에 나아와 간증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복음제시와 바로 이웃들의 생생한 간증으로 인하여 첫날 집회는 은혜롭게 무사히 마쳤습니다. 할렐루야!!

피곤하지만 기쁜마음을 가지고 마르셀로 선교사님댁으로 갔습니다. 수잔 사모님이 강된장과 상추로 차린 정성어린 식탁을 대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더 놀란 것은 사모님의 간증이었습니다. 멕시코로 오기전부터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말에 멕시코가면 사서 기르자고.. 기도하라고 했답니다. 아이들은 공책겉장에 있는 강아지 그림을 구해놓고 매일 밤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멕시코로 이주한 후 얼마 안되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선교사님에게서 강아지 새끼 두 마리가 있는데 한마리 키우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답니다. 그래서 가지러 갔더니 아이들 공책사진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답니다. 황토색깔에 이마와 앞발에 하얀 점이 있는.. 우리 모두 이 간증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선교사님가족에게 힘과 확신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는 끼니찌까꾸모(Kinich kakmo)라는 피라밋에 올라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야문명시절 인신제사를 드리며 우상숭배하던 제단에 올라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찬양을 하며 이 지역이 속히 복음화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어지는 심방과 미용봉사 그리고 저녁집회로 3일간의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시간, 순간순간이 무디어진 나의 마음에 꽃혀지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채찍이었습니다. 이 순간들이 잊혀질까봐 열심히 사진찍고 메모하고 가슴에 새기었습니다. 훗날 사진첩 갈피갈피, 구겨지고 손때묻은 핸드북에 적어놓은 구절구절이 식어진 내 가슴에 불을 지펴줄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마지막 날 집회 때엔 비가 억수같이 쏱아져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집회에 지장을 받을까 걱정을 했는데 아이들까지 60여명이 모여 스레트지붕안에 옹기종기모여서 집중하여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박지나 전도사님은 얼마나 멋있는 헤어스타일을 연출하셨는지 머리자르겠다는 사람들의 줄이 끊어지지 않아 핸드폰 후래쉬를 불빛삼아 어두워진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미국돈으로 1불50전이면 머리를 자를 수 있다는데 그럴 형편들도 못되어서 모두 수세미같은 형색을 하고 있었던 그들이 모두 인물이 훤해졌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이는지요.

빗물과 땀으로 범벅된 냄새나는 서로이지만 헤어지기 아쉬워 부둥켜안고 밤이 늦도록 작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신분과 인종이 달라도 믿음 안에서 하나되었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듯 했습니다.

먼길을 찾아가 늘 배가 고픈 저들을 먹일 샌드위치를 만들며,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줄 선물봉지를 만들며,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개의치않고 저들을 섬기며 돌보는 이유는 오직 저들에게 복음이 전해져 예수믿고 구원받는 천국백성이 되기를 소원하는 그 한가지였습니다.

신호등도 없고 주유소도 하나없는 가난한 마을 깐뚜닐에 교회가 우뚝 세워지는 일.. 그 한 가지였습니다. 교회태동의 아름다운 현장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이사말이 아닌 깐뚜닐로 보내신 여호와이레 하나님의 섭리이며 사랑인것을 이제야 뒤늦게 깨달은 선교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