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민초기에 낙원장로교회(현 선한목자교회)를 개척 크게 부흥, 성장시켰던 故 임수식 원로목사의 천국환송예배가 3일 오후8시 선한목자교회에서 열렸다. 임수식 목사는 지난 1월30일 오전 12시30분 지병으로 향년 78세의 일기로 소천했다.
천국환송예배는 황영진 목사의 집례로 신성능 목사 기도, 박준열 목사 설교, 엄달호 목사 약력소개, 고인회고 영상, 임요한-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김형훈 목사 조사, 선한목자교회 찬양대 조가, 임정현 장로 유가족 인사, 황동익 목사 축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날 박준열 목사는 ‘생명수 강가에서 만나요’(계22:1-5)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소천하시기 얼마전 병원에서 뵜을 때 당신께서 몸에서 빠졌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하시며 얼굴에 기쁨이 충만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 때 하나님나라에 갈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을 느꼈고 오늘 본문이 그 때 함께 묵상하며 나눴던 말씀이다. 한참 어르신이지만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이 읽으시고 믿음으로 받으시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회상했다.
또 박준열 목사는 “故 임수식 목사님은 순수한 신앙의 소유자였고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시던 분이다. 그런 신앙을 후손들이 이어받기를 바란다”면서 “지금 임수식 목사님은 천국에서 하나님 앞에 한없는 감사와 찬양, 영광을 돌리실 줄 믿는다. 그리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축복하실 줄 믿는다”고 말했다.
박준열 목사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거할 하늘나라는 이 세상의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에게 예비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자. 우리 모두 생명수 강가에서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아들 임요한 씨는 “폭설 가운데에도 아버지의 천국환송예배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과 또 교회장으로 장례를 치러주시는 선한목자교회 관계자 분들에게도 너무도 감사를 드린다”면서 아버지 故 임수식 목사에 관한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황영진 목사는 故 임수식 목사에 대해 “힘든 이민초기 한인들과 함께 척박한 곳을 개척해 영적인 중심을 세운 훌륭한 신앙인이자 변함없는 순수한 신앙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면서 “저에게는 목회에 관한 조언도 아끼지 않은 상담사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故 임수식 목사의 장례는 선한목자교회장(장례위원장 황영진 목사)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유족은 장남 임요한, 차남 임디모데, 장녀 임성혜, 차녀 임혜경 등 2남 2녀다. 진복순 사모는 4년 전 소천했다. 故 임수식 목사는 1936년 경북 김천 출생으로 63년 결혼 후 72년 도미해 82년 낙원장로교회(현 선한목자교회) 초대 담임 목회자로 시무했으며 2004년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장남 임요한
참 희한하게도 전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선명합니다. 아버지가 가르치시던 학생들과 같이 소풍을 갔을 때 아버지가 절 어깨위에 놓고 걸어가시던 그 모습, 시장에서 이것 저것 보여주시던 손길, 치과에 가기 싫어하는 저희들에게 오불씩 주시며 달래던 모습, 저에겐 너무나 선명합니다. 전 아버지가 저희 형제들을 많이 사랑하시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저희가 힘들어할까봐 주셔던 박하사탕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박하사탕은 그 후 저의 가장 좋아하는 사탕이 되었어요. 미국에서 삶은 언어와 문화 차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헌신과 노력으로 자리를 잡아 갈 수 있었습니다. 장애자를 돌보는 일, 피자가게 운영까지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하셨지요. 피자가게를 운영하실 때는 저희를 위해 이탈리안 아이스를 자주 집으로 갖고 오셨는데 그 때 그 달콤한 맛은 아직도 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세 자녀를 데리고 이민와 힘든 시절을 보내고 늦둥이 데모데가 태어난 후에도 교회에서의 헌신 활동은 항상 변함이 없었습니다.
아버진 제가 결혼한 후에 우리집에 자주 오셔서 며칠 머물다 가셨는데 그 때는 아버지와 보낸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지요. 그저 아버지를 모시고 있던 제 동생 내외에게 좀 휴식시간을 줄 생각뿐이었지 그 시간들이 저희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외동딸이라 항상 친구를 찾는 제 딸 질리안은 희한하게도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계실땐 할아버지 옆에서 너무나 편한 모습으로 몇시간을 놀곤 했어요.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댁으로 떠나면 울면서 할아버지가 쓰던 물건을 안고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흙을 워낙 좋아하셔서 저희 집 뒤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잡초를 뽑아 주시던 아버지... 돌에 성경구절을 쓰시며 좋아 하시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그땐 아버지가 왜 그런 취미를 즐기셨는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지금 만약 기회가 된다면 아버지에게 직접 돌을 주워 갖다 드리고 싶네요.
이젠 천국에 계신 저희 아버지...천사들이 내려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영원한 평화가 있는 아버님의 품으로 인도하였을 것을 확신합니다.
아빠, 너무 사랑해요. 다시 천국에서 만나겠지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제 하나님과 엄마 옆에서 편히 쉬세요.
고 임수식 목사님을 추모하면서... 황은숙 사모
목사님! 그동안 큰 사랑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큰 사랑에 못 미치게 연약했던 점 너무 죄송합니다. 목사님과 함께한 10년, 목사님은 제겐 아버지같이 따뜻하고 든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마음 아파하며 늘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손을 잡아 주시던 목사님! 하나님이 인정하고 내가 인정하면 된다고 응원해 주시던 목사님! 목사님이 없는 빈자리가 제겐 너무 큽니다. 우리 곁에 계실 때는 몰랐는데 천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의 숨도 멈춘 듯 했습니다.
목사님은 복음의 열정과 성도와 교회를 향한 애절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지나온 생애를 돌이켜 보면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납니다. 무뚝뚝하시지만 속정이 깊으신 분이셨습니다. 돈이 없어 찾아 온 어려운 사람 빈손으로 보낸적 없으시고, 도움이 필요해 찾아 온 사람 홀대하지 않으셨던 영혼을 사랑하던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은 온 마음을 다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시느라 아내와 자녀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황사모님, 젊어서 자녀들과 가족을 돌보지 못한 것이 죄라는 것을 늙어서 알게 되었어. 아무리 바빠도 가족들을 사랑으로 돌보세요.” 아버지처럼 조언해 주시던 제겐 다정한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은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이셨습니다. 오랜 시간 육체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도 목사님은 예배드리고 목사님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기쁘고 즐겁게 여기셨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제일 먼저 나와 교회 문을 여시고 예배를 준비하셨습니다.
목사님을 괴롭히던 지병은 어쩌면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당장이라도 오라고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갈 신부처럼 사셨습니다.
목사님, 이제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하십시오. 온 성도들이 목사님의 소천을 슬퍼합니다. 정든 이별 때문입니다. 온 성도님들이 목사님의 소천을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참된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은 날, 우리 모두는 천국에서 목사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을 보내드리는 지금 목메어 기도를 드립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높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