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의 관계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나 연결점이 있는가? 아니면 일반인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고 오히려 서로 무관하거나 심지어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가? 헹겔은 이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수의 신약학자들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종교사적 견지에서 신약의 비판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유다이즘과 헬레니즘이 서로 완전히 상이한 것을 뜻하고,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별에 큰 중요성이 부여되고 있으며, 그것은 신약의 연구에 있어서 역사적 해석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되고 있다.
헹겔은 이어서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여준다.
구체적인 예란, 헬레니즘이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디아스포라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도 도입되어 희랍화(hellenization)가 폭넓게 이루어진 증거들에 관한 것이다.
헹겔은 그의 대저 “유다이즘과 헬레니즘” 그리고 소책자인 “유대의 헬라화”라는 두 책에서뿐만 아니라 권위 있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고대사 시리즈의 일환으로 편집된 “유다이즘의 역사(The Cambridge History of Judaism, 1989)” 제 2권에 수록된 몇 편의 논문들 속에서 헬라화가 디아스포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에서 얼마나 널리 그리고 깊게 이루어졌는가를 광범위한 자료 및 증거들을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헹겔 이전에 유대인 학자 체리코버(Cherikover)도 그의 책 “헬레니스틱 문화와 유대인들”이라는 책에서 같은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의 유사성
따라서 헬레니즘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유다이즘 연구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성전 파괴 이후에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랍비적 유다이즘(Rabbinic Judaism)은 한편으로는 헬레니즘을 수용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에 저항함으로써 발전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유다이즘을 헬레니즘과 무관하거나 또는 그에 대립된 것으로 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헬레니즘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이 반드시 대립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국의 저명한 구약사가요 고고학자인 올브라이트(W. F. Albright)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이 희랍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 공통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예를 들면 사이러스 고든(Cyrus H. Gordon)은 그의 책 “고대근동”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히브리인들과 희랍인들의 초기 역사들은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이 둘은 서로 분리해서 이해될 수 없다.
그는 그 후에 출판된 “희랍과 히브리 문화의 공통적 배경”이란 책에서 이 두 문화의 공통점에 대해서 보다 더 자세하게 다루었다. 이것은 지리적으로 이 두 나라가 같은 문화에 속했던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이 두 민족 사이에는 공통된 관습이 많은데 이러한 사실은 모세5경과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도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희랍과 호머를 잘 이해하게 되면 구약 특히 모세5경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초반에 독일의 로마사가 뵈크(Bockh)에 의해서 이미 지적된 바 있다. 그는 그리스, 이탈리아, 시칠리, 이집트, 팔레스타인, 포에니키아, 그리고 바빌로니아 지역의 도량형과 주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티베르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지중해 연안 국가들 간에 문화적 동일성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대 그리스와 이스라엘 사이에 차이점이 없다거나 또는 그 차이점들을 일부러 극소화하자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다만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