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벗', '짝패', '동지', '동료', '도반' 등으로 부른다. 'friend', 'helper', 'patron', 'ally', 'company'도 같은 뜻이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게 친구요, 서로 충고해 줄 수 있는 게 친구다. 서로 이해해줄 수 있는 게 친구요, 잘못이 있어도 서로 덮어줄 수 있는 게 친구다. 서로 미워하면서도 이해해 줄 수 있는 게 친구다. 서로 허물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게 친구다. 서로 울어줄 수 있는 게 친구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질투 나는 게 친구다. 뒤돌아 흉보면서도 예뻐 보이는 게 친구다. 가까이 갈 수 없을 때 답답함을 느끼는 게 친구다.
한 팔로 안을 수 있는 게 친구다. 떨어져 있을 때 허전함을 느끼는 게 친구다. 나의 소중한 모든 것을 주고 싶은 것이 친구다. 아픔을 반으로, 기쁨을 두 배로 나누는 것이 친구다. 이유 없이 눈물을 머금게 되는 게 친구다. 싸우면 둘 다 마음이 아픈 게 친구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친구다. 기쁜 소식을 먼저 알리고 싶은 것이 친구다. 눈을 감아도 보이며 서로 의지 하는 것이 친구다. 믿음이 쌓여 이뤄지는 것이 친구다. 친구로서 친구답게 대하는 것이 친구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곧 나의 친구다.
어떤 이기적인 발상이나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를 진실로 위하고 아껴주며 문득 생각날 때마다 안부를 물을 수 있고 간간이 만나고 싶을 때 주저 없이 달려갈 수 있는 게 친구다. 마음 깊이 묻어둔 속내를 털어놔도 아무런 허물이 되지 않는 게 친구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릴 때에도 두 손을 맞잡고 말을 놓을 수 있는 게 친구다. 언제 만나도 커피 한 잔 하자, 술 한 잔 먹자, 식사 한 번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게 친구다. 아무런 부담 없이 얼마간의 돈을 빌려달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빌린 돈은 상대방이 말하기 전에 빨리 되갚는 것이 친구다. 한밤중 곤히 잘 시간에도 주저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는 사이가 친구다.
친구 간에 어떻게 살아야 될까를 가르쳐주는 실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국가로부터 영장이 발부되었다. 워싱턴 기차역엔 매일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군대로 보내는 가족과의 눈물겨운 작별이 있었다. 그 시민들 가운데,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 잔을 쟁반에 들고 늦은 밤까지 봉사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때는 코코아를 직접 끓이기도 하였다. 그는 코코아를 따라주면서 "잘 다녀오세요. 그대들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 한 젊은이가 그에게 말했다. "혹시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코코아를 따라주던 그 노인은 바로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즈벨트였다. 그는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집무를 마치고 난 밤 시간에 기차역으로 나와 늦게까지 훈련소로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나누며 봉사활동을 했던 것이다.
시간은 섬김을 위해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순간 낮아짐의 결단만이 섬김의 삶을 살게 한다. 큰 일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작은 돌봄을 외면하지 말자. "어느 위치에 있기 때문에", 혹은 반대로 "아직 충분히 여유롭지 않기 때문에" 라는 마음은 핑계일 뿐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작은 섬김이 없다면, 죽는 날까지 아무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는 모범적인 친구의 예로서 다윗과 요나단을 들고 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맏아들로 다윗의 친구이자 처남남매간이다. 자기 대신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성실한 우정을 지켰다. 특히 질투심이 많은 그의 아버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그를 도피시켜 생명을 구해줬다. 요나단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과 함께 전사했다. 다윗은 요나단의 죽음을 깊이 슬퍼해 애가(哀歌)를 지었다(삼하 1:26).
그리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챙기며 우정을 지켜 은혜에 보답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인데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유모가 므비보셋을 안고 도망가다 떨어뜨려 다리를 절게 됐다(삼하 4:4). 다윗은 왕이 된 후 요나단의 우정을 기억해 마길의 집에 있던 므비보셋을 불러 친아들처럼 보살폈다(삼하 9:3-11). 압살롬의 반역 때 시바의 모함으로 잠깐 오해가 있었지만, 반역이 진압된 후 다시 므비보셋의 진심을 알게 됐고 빼앗았던 재산을 되돌려주기도 했다(삼하 19:24-30). 이리하여 므비보셋의 아들 미가를 통해 태어난 후손들 가운데 이름난 용사들이 많았다(대상 8:34-40, 9:34, 40).
이렇게 두 친구간의 우정은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계속 유지됐고, 당대 뿐 아니라 그 자손들을 돌보는 데까지 이어졌다. 우리들도 잠시 잠깐 필요할 때만 '친구'로 지내는 게 아니라 평생 동안, 그리고 자손들까지도 서로 돕고 도움 받는 우정을 가꾸었으면 좋겠다. 감탄고토(甘呑苦吐)니 면종복배(面從腹背)니 하는 말은 없어져야 할 비극적인 용어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