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교협 산하 청소년센터(대표이사 최창섭 목사)가 주관하는 ‘2013 AYC 청소년 후원 감사의 밤’이 19일 오후7시 뉴욕수정성결교회(담임 황영송 목사)에서 개최됐다.

청소년센터는 매년 연말을 앞두고 ‘후원의 밤’을 통해 후원자들 및 후원교회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한편, 청소년센터의 한 해의 활동을 알리고 새로운 후원자들을 찾았다.

특히 올해 진행된 청소년센터 후원의 밤은 은혜로운 간증이 이어져 그 의미를 더했다. 한 인 부모의 간증은 청소년센터를 통해 자신과 자녀와의 관계가 개선됐음을 알리고 감사를 포했고 한 중국 청년의 간증은 삶의 목표를 잃고 우울증 속에서 방황하던 자신이 청소년센터를 통해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게 됐고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됐다는 신앙 간증이었다.

청소년센터는 올해 초 서니사이드 쉘터 매각으로 인해 더 이상 임대료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재정적으로 자립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중에도 청소년센터는 무료로 문을 열어두고 있는 상담 및 그룹모임을 통해 방황하는 영혼과 가정들이 제 삶을 찾아주는 귀한 사역을 펼치고 있었다.

이날 1부 예배는 이수일 박사의 사회로 이풍삼 목사(총무이사) 기도, 최창섭 목사(대표이사) 설교, 김승희 목사 축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2부 사역활동 소개 및 기도시간은 송병기 목사의 진행으로 김지욱 사무총장 대행의 사역 소개에 이어 이경숙 권사와 Liye Zhou자매(중국) 간증, 후원약정, 통성기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최창섭 목사는 ‘별과 같이 빛나는 사역’(단12:3)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알려주고 신앙의 길로 인도하는 길은 본문 말씀과 같이 별과 같이 빛나는 가장 가치로운 일임을 강조하면서 청소년센터 사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지욱 사무총장 대행은 청소년센터가 올해 걸어왔던 길과 주요행사 등을 알리면서 청소년들이 더욱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날 참석자들은 청소년센터 후원을 약정하면서 청소년센터의 사역을 위해 다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음은 이날 간증 주요 내용.

이경숙 권사 간증

간증하고 있는 Liye Zhou 자매
(Photo : 기독일보) 간증하고 있는 Liye ZLIye Zhou 자매 hou 자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간호사로 일하다 최근에 은퇴를 했다. 바쁜 이민생활 중에 제 아이의 외로움을 알 수 없었다. 이 아이가 마음에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깨닫기 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굉장히 어려운 순간들이 지속됐고 어떻게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한 교회에서 30년간 신앙하면서 예수님도 인격적으로 만났지만 신앙의 선배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기도 힘들었다. 자녀가 청년이 다 됐지만 정신과 센터를 찾아야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어디에 손을 내밀지도 몰랐는데 신문을 통해 생명의 전화를 접하게 됐고 목사님께서 상담하는 것을 알려주셨다. 이 박사님과 만나면서 저도 상담받고 아이도 상담을 받았다. 부모교실에 저는 참여를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못했지만 계속 참여하다가 말문을 트고 제가 저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주거나 해열제를 주는 병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에 치료가 막연하기도 했지만 성실히 임하면서 문제를 개선해나갈 수 있게 됐다.

아이를 변화시키려는 집착이 더 문제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저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를 바꾸겠다고 강박관념을 가졌는데 제 자신이 변화돼야 했던 것이었다. 이것을 부모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그 이후 저도 변화되고 아이도 많이 안정이 됐다. 자녀가 이제 취직도 하고 대학교도 졸업하고 그만뒀던 교회도 다시 나가게 됐다. 2-3년 사이에 너무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저를 위해 컴퓨터도 셋업해주는 자상함까지 보여줬다. 제가 부모교실에서 기도하면서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배우고 있는데 우리 가정에 변화를 주신 것에 너무도 감사하다. 저보다 큰 문제를 안고 있는 부모들도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고통들이 나에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기도의 영역이 넓어진 것을 알게 됐다. 기관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센터의 도움들을 받기를 바라고 센터는 또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다리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교회들이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LIye Zhou 자매(중국계)

간증하고 있는 이경숙 권사
(Photo : 기독일보) 간증하고 있는 Llye Zhou 자매

저는 5살 때 부모님을 따라 도미해 미시간에서 자랐다. 자라면서 책과 TV 등의 미국 미디어 문화 환경에 노출돼 있었지만 아시아적(중국)인 가정 환경집에서 자라게 돼 이중문화 속에서 삶의 가치에 대한 균형을 잡기 힘이 들었다. 특히 서양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감성적인 접근을 하면서 포옹하고 격려하며 지지하는 모습들을 영화와 책에서 경험하는데 제가 자란 가정과는 아주 달랐다. 머리로는 부모님들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과후 활동에 필요한 것 등을 위시해서 옷과 음식 등 저에게 많은 것들을 공급하셨다. 그런데 저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저의 부모님이 저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저에게 열정적으로 투자하신 것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말 잘듣고 학교에서도 탁월한 다른 부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모범적인 아시안 딸이 돼야 하는 것이었다. 즉 부모님들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었다.

고교시절까지 한 학년을 넘길 때마다 피아노 경연, 피겨 스케이팅, 미술 등의 특별활동에서 상을 받으며 참 잘해왔다. 그런데 제 속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완벽주의가 자라고 있었다. 만점을 받지 못하면 저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주변의 많은 분들은 저의 미래를 아주 밝게 봤다. 그 결과로 저는 생체 읠공학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좋게 간주되던 존스홉킨스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동양적 가정환경은 저를 그렇게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아시안으로서의 모범적인 자녀의 이미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제가 하는 것마다 실패를 하는 것 같은 불안감과 패배감이 저를 사로잡고 있었다. 동시에 항상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점점 지치게 했다. 대학 입학 후 처음에는 새롭고 즐거웠지만 그런 기분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저는 전공에도 만족하지 못했고 수업에도 흥미를 잃어갔다. 결과적으로 성적은 떨어졌고 부모님은 전공을 바꾸기를 원했지만 저는 거절했다. 쉬운 길을 택해서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 또한 저에게는 용납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부모님을 위해서 다시 열심히 노력하면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가능하다며 저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그런데 점점 완벽은 커녕 아예 근처로 갈 수 없는 수준까지 가게 됐고 우울증이 오게 됐다.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이 제가 명석하지 못하고 가치 없는 학생으로 여기는 것을 두려워해 수업참가에도 흥미와 동기를 잃게 됐다.

한편으로는 주변의 친구들이 어려운 과목들을 각자 나름대로 잘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들 속에 있던 열정이 제 속에서도 일어나기를 원하곤 했다.

제 자신이 똑똑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은 그런 열정에 대한 소망이 사라지게 했다. 저의 어머니 말씀처럼 저는 열정이 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염려에 염려를 더해 갔고 저는 열정과 소망이 없어지는 것에 두려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으로부터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의 눈을 마주 칠 수 조차 없어서 공휴일에 미시건을 방문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결국 4학년 때 학사 경고를 받았고, 2011년 봄학기 대 나름대로 마지막 노력을 시도했으나 별로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비참함을 느꼈다. 제 전공을 싫어함은 물론, 학문을 모두 포기하고 학교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결국 수업 참가는 물론 리포트 제출도 포기하고 시험도 거부했다. 가을학기부터는 다시 학교에 등록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많이 울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미시건으로 도저히 돌아갈 용기가 없어서 결국 짐을 챙겨서 뉴욕으로 왔다.

뉴욕의 삶의 시작도 쉽지는 않았다. 약 2달 동안 친구들의 집을 전전긍긍하며 지내다가 8월에 친구들이 더 이상 아파트에 같이 지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7번 전철에서 잠을 자며 밤을 보내야 했다. 전철에서 쪼그려 자며 육체적으로는 노숙자의 현실에 처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으로는 해방감을 맛보기도 했다. 일을 하며 머물 곳을 찾는 것과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저의 일과였다.

거처를 찾는 중에 춥고 두려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저 스스로 생존을 위한 창의력을 나름대로 살아 있었기에 흥분과 행복감이 제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부모님을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는 여정에 나섰다는 생각이 일어나면서 저의 삶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안증세와 우울증세는 여전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저의 삶 속에서 나타나시기를 원하셨던 것으로 여거진다. 어릴 적에 교회를 몇 번 나간 적이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성경구절 찾는 것도 힘들었고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수도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종교에는 무관심하거나 혐오감까지 갖고 있어서 종교적인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대학 때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저에게 가장 상식이 잘 통하는 친구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한번은 성경공부에 참가하게 됐는데 인도자가 너무 자기의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강요해서 겁을 먹고 오히려 저항심이 생겨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후 저의 절친한 대학 친구의 인도로 아시아 청소년센터의 주관으로 시작됐던 Life Coaching and Support의 소그룹에 참가하게 됐고 동시에 정신건강 상담 전문가이자 어느 교회의 EM전도사님을 소개 받았다. 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작년 4월부터는 그 분에게 무료 정신건강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저의 믿음 없음을판단하지 않고 저의 모습 그대로 이해를 해주어서 상담에 대한 저항은 없었다. 상담은 세상을 더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경험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시켜줬고 교정시켜줬다. 상담을 받는 중에도 계속 AYC 토요그룹에 참가했는데 처음에는 수줍고 창피하고 불안했지만 점점 생동감과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저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사회성 기술을 습득하기 우해 교회 출석을 권유받았고 순종하면서 작년 여름부터 한 한국교회의 영어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고 그리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설교가 저의 삶과 관련된 것을 느끼기 시작해 저의 귀가 열리고 저항심도 줄게 됐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과 부모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법에 관심을 갖고 귀를 열어 두고 있었다. 그래도 하나님을 100% 이해하고 천사의 인도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겠다고 내적으로는 저항하고 있었다.

올해들어 그 분의 가족들과 함께 다민족교회로 옮기게 됐고 거기서 몇 분의 다른 사역자들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의 이슈들을 나누며 마음을 열어 저 자신이 동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여러분들을 만났다. 많은 것들이 저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데 기인했다. 저의 생각이 변화되면서 왜 사람을 예수님을 믿는지 이해하게 됐고 공감하게 됐다. 그리고 교회의 소그룹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에서는 개인 상담과 AYC 토요그럽에서 배운 대화기술과 교제 및 사회화 기술을 적용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기르기 시작했다. Andy Stanley 목사님의 설교도 하나님을 이해하고 신앙이 자라는데 큰 도움을 줬다. 지난 5월 저의 생일에는 결국 하나님의 존재가 나의 삶 속에 동기를 부여하는 큰 힘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저는 인식하고 고백하면서 십일조를 하기 시작했고 8월에 세례를 받았다.

무엇보다 부모님에게로 가까이 가는 법을, 그룹과 교회를 통해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희생 등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 분들을 통해서 제가 받은 은혜를 나누는 법도 배우고 있다. 현재 3학년으로 퀸즈 칼리지에 다니는데 졸업 후에는 나약 대학의 크리스천 카운슬린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를 기도하면서 소망하고 있다. 저와 같이 절망으로 위기에 처한 청소년과 청년들을 돕기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장래의 진로를 그렇게 정했다.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위하게 하는데 저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저에게 지나간 시련들을 허락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제가 그룹에 동참하게 된 작년 2월부터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교제해 왔는데 AYC의 토요 Life Coaching and Support Group은 정말 귀중하게 여겨진다. 저 자신을 비롯해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가치와 태도의 변화는 물론 일자리 소개를 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격려하는 자리까지 오게 됐다. 절망과의 우울증에서 소망을 갖고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체험하고 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위로와 격려의 언어로 그리고 기도로 자존감이 향상되는 것을 봤다. 이런 기독교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라으이 모델의 그룹으로 앞으로 AYC가 계속 발전되어서 위기와 절망에 빠진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혜택을 받기 기원하며 저 자신도 미래의 한 일꾼이 되기를 꿈꾸어 본다.

설교 후 기도하는 최창섭 목사
(Photo : 기독일보) 설교 후 기도하는 최창섭 목사
김지욱 사무총장 대행이 청소년센터의 한 해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김지욱 사무총장 대행이 청소년센터의 한 해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청소년센터의 한 해 사역이 브리핑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청소년센터의 한 해 사역이 브리핑되고 있다.
축도하는 김승희 뉴욕교협 회장
(Photo : 기독일보) 축도하는 김승희 뉴욕교협 회장
청소년센터의 한 해 사역이 브리핑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청소년센터의 한 해 사역이 브리핑되고 있다.
청소년센터 후원의 밤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Photo : 기독일보) 청소년센터 후원의 밤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후원이사장 송병기 목사가 2부 순서를 인도하고 있다.
(Photo : 기독일보) 후원이사장 송병기 목사가 2부 순서를 인도하고 있다.
기도하는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기도하는 목회자들
기도하는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기도하는 목회자들
기도하는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기도하는 목회자들
기도하는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기도하는 목회자들
기도하는 목회자들
(Photo : 기독일보) 기도하는 목회자들
기도하는 목회자들과 참석자들
(Photo : 기독일보) 기도하는 목회자들과 참석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