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누가복음의 저자는?

서승원 목사
(Photo : ) 서승원 목사

또 한 가지 지적할 점은 샌더스박사는 누가복음의 저자를 의미하는 희랍어가 “Kata Lukas”라고 했는데, 성경학자가 아니거나 희랍어를 깊이 공부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희랍어의 카타(κατα)라는 전치사가 “ …에 반하여”, “…에 거슬러”의 뜻일 경우엔 2격 전치사를, “…에 따라서”의 뜻일 경우에는 4격을 취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4격을 취하므로 kata Lukas가 아니라 kata Lukan(κατ? Λουκ?ν)이다. 어느 언어에나 1격을 취하는 전치사는 없다. 따라서 희랍어에서도 1격을 써서 kata Lukas라 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명사에 격변화가 없는 히브리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그분이 희랍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주의에 의한 실수라고 믿지만 저명한 성경학자가 공식석상에서 행한 강연에서 이런 실수를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는 구약학자로서 히브리어를 많이 접하다 보니 아마도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혹시 한인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인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한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물론 이것은 필자의 오해일 수 있다. 이밖에도 그의 강연 원고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본고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므로 그것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12) 헬레니즘은 개인주의적인가?

 (1) 플라톤의 경우

필자는 어떤 단서 없이 Semitism 즉 고대 이스라엘 문화가 공동체적 가치관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반해 헬레니즘의 특징을 개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에 아래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간단히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헬레니즘을 개인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함을 먼저 지적하겠다. 고대 희랍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둘을 꼽으라면 아마도 누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먼저 플라톤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널리 알려져 있듯이 플라톤의 주저는 ‘국가(Πολιτε?α; Republic)’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국가를 그리고 있는데, 그의 이상국가의 설립원칙 (foundational principle) 또는 기본원칙은 국민 각자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타고난 재능과 소질에 적합한 임무를 부여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 국가가 목표로 하는 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행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행복이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해 국민들 간의 화합과 단결이 필수요건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의 국가는 생산자 계급, 군인 계급, 그리고 지배자 계급으로 이루어지는데,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각자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에만 몰두하도록 하기 위해 플라톤은 지배자 계급과 군인 계급에 사유재산과 가정을 금한다. 그들의 생활은 국가가 책임지며, 아내와 자식들은 공동이다. 다시 말해 그의 이상국가에서는 개인주의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점 때문에 플라톤의 국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 비판을 받아왔는데,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 널리 알려진 비판가들로는 칼 포퍼(Karl Popper)와 크로스만(R. Crossman)을 들 수 있다. 이들은 플라톤의 국가가 전제주의적(totalitarian)이라고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