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문제연구소(이사장 신영석)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서울 대표 베른하르트 젤리거)이 ‘독일 통일의 2가지 진폭제-독일식 ‘2+4’ 그리고 인권과 민주센터, 지하교회’를 주제로 2013 한·독 워크숍을 29일 오후 서울 퇴계로 세종호텔에서 개최했다.
워크숍에서 라이너 바그너 대표(Dr. Rainer Wagner·독일 공산당압제희생자연합회)는 ‘교회에서 움튼 통일의 희망: 북한에도 가능한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바그너 대표는 구동독 정치범에 관한 개신교회위원회 위원장으로, 구동독 바이센펠즈에서 태어나(1951) 15세 때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발각돼 1년 2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현재는 ‘북한인권, 지하교회 인권’과 관련해 활동 중이다.
개신교 신학자로서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서두를 연 바그너 대표는 “구동독의 전환을 회고하면 일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동독 공산당 독재국가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교회의 주요 과제는 저항운동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이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은 자유를 희구하는 경향이 있어 독재 또는 무신론적 전제정치보다 민주주의가 기독교적 윤리에 부합하는 면이 있어 늘 기독교 사상에 입각한 ‘자유를 위한 투쟁’이 존재해 왔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동독 전환기(통일) 교회의 역할을 소개했다. 그는 “동독 지역은 종교개혁의 본거지였고, 독일 개신교회는 역사적 전통으로 늘 국가와 근거리를 유지하면서 시대정신과도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다”며 “독일 분단 당시에도 동독 주민들 대다수는 개신교도였지만, 신앙심이 강해서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적 성격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바그너 대표는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주민들 대다수가 개신교도였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 교회는 영향력이 큰 공공기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심 약화와 교회 관계자들의 현실 타협, 그리고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이념 주입, 차별과 불이익 등으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갔다”며 “국가는 기독교 의식을 대체하는 의식들을 고안했는데, 이는 대다수 개신교회가 공산주의 국가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1965년부터 ‘사회주의 내에서의 교회’라는 이름의 교회정책적 운동이 발생, 많은 교회 지도부가 현실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사회주의 기독교인들 외에 전통적으로 이뤄졌던 개신교와 국가 간의 밀접한 관계에 충실함으로써 영향력을 갖기를 희망하는 ‘실용적 이유’로 교회를 공산주의 체제 아래 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그는 “가장 볼썽 사나운 일은 1983년 에리히 호네커(동독 마지막 수장)가 국가 루터위원회장이 되어 교회 지도층 인사들과 함께 등장했던 일”이라면서도 “여러 형태의 공작과 협력에도 불구하고 개신교회는 동독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관제화되지 않은 조직으로 남았는데, 이는 가톨릭과 자유교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청소년 활동이나 평화·환경 운동 등도 교회를 통해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동서독 교회간 연결고리도 교회의 정치적 지평을 확대했다. 1967년 이후 전(全) 독일 개신교회가 사라졌지만 동서독 교회 공동체간 파트너십은 유지됐고, 동베를린에서 청소년 회합이 이뤄졌고, 교회는 공산주의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도피장소가 되기도 했다.
동독에서 시위는 불가능했지만 예배는 허용됐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도회를 활용해 요구사항들을 표출했고 이를 통해 대규모 시위의 시초가 된, 그 유명한 ‘평화의 기도’가 생겨났다. 특히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는 말씀 아래 시작된 평화운동은 1980년 이후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몇몇 목회자들은 순교하면서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바그너 대표는 이같은 동독 교회의 역할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한국에는 대중교회 또는 국가교회 없이 대부분 복음 중심의 교회만 있는 반면, 북한에는 완전히 국가에 예속된 교회조직만이 존재하고 있다”며 “그러나 동유럽 국가들이나 소련 붕괴 이후 확인한 것처럼, 북한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에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소규모 단위로 지하에서 활동하는 신앙심 깊은 이들이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활용할 만한 부분들을 제안했다. 이는 △동독 사례를 참고로 현지 사정에 밝은 이들이 직접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것 △재난상황 또는 북한을 위한 경제적·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북한 현지 기독교 또는 유사 그룹을 통해 지원을 시도하는 것 △수감자들에 대한 ‘프라이카우프(돈을 주고 정치범을 데려오는 방식)’를 신중하게 논의해볼 것 △당국간 협상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인도적 문제들을 다룰 것 △한국교회가 북한에서 탄압받는 사람들을 예의주시하고, 중재를 통해 공론화할 것 △북으로 라디오를 보내거나 전단을 날리는 등, 기독교가 갖는 강한 힘인 ‘희망’을 더욱 커지게 할 것 등이다.
평화문제연구소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은 1989년 4월 협약서 교환 이래, 20여년간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 공동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해 오고 있다. 이 중 ‘한·독 심포지엄’은 지난 1990년 4월부터 시작, 독일 통일 전후 경험했던 주요 이슈에 대해 양국 전문가들이 발표와 토론을 통해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 바그너 대표에 앞서서는 독일연방 헬무트 콜 정부에서 내무 차관을 지낸 에두아르트 린트너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독일식 ‘2+4’가 가능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