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량
(Photo : 기독일보) 정인량 목사

허허실실이란 허(虛)를 찌르고 실(實)을 꾀하는 계책(計策)이다. 쉽게 말해 적을 역으로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조조의 퇴로에 제갈량은 관우, 장비, 자룡등을 보내 허허실실작전을 편다. 이를 간파한 조조는 겨우 수십기를 이끌고 도망가는 주제에도 호탕하게 웃으며 공명의 지모없음을 비웃다가 매복한 유비군에 혼비백산하기를 거듭한다. 인의를 중시하고 정도를 주장하는 유비나 공명도 싸움에는 하책중 하책인 허허실실을 주저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허허실실은 꾀주머니 조조에게도 어쩔수없는 묘책이었던 것이다.

성경의 인물가운데 이런 허허실실을 사용한자는 흔치않다. 야곱이 라반을 속인것 정도이다. 허허실실이 신의와 의리를 논하던 삼국지시대에 횡횡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말하던 신의라는 것은 한낱 공허한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도 둘러보면 이런 얄팍한 허허실실의 세계가 판을 치고있다. 정치판만 하여도 좌우파 가릴 것없이 앞으로는 악수하고 뒤로는, 칼을 숨기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모사꾼들로 만원이다. 국민들은 하도 속아서 이제 웬만한 술책은 훤하게 꿰뚫고 있어 정치평론가들이 설 자리를 잃을 정도이다.

뿐아니라 의리를 중시하고 이를 위해 갖가지 수단방법을 가리지않는 조폭들이 영악해져 주먹이나 도구를 사용치않고 나름대로의 허허실실을 구사하는 바람에 수사당국들도 혀를 내두르는 수가 왕왕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영계가 이런 하찮은 허허실실의 하책들을 사용하고 모함하고 함정을 파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자들로 산을 이루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이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앵무새처럼 되내지만, 결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않는다. 하나에서 열까지 허허실실의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왕거미와 같으니 참으로 불쌍할 뿐이다. 왜냐하면 결코 허허실실의 거미줄이란것은 한 두번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인의자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굳게 잡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허허실실이란 한낱 휴지조각과 같다.

제갈량이 유비를 도와 서촉을 정벌한후 중원재패를 도모하여 북벌에 나서자 위의 책사 사마의 중달이 오장원에서 맞붙게 되어 양측 모두 허허실실책을 편다. 그런데 그토록 위세를 떨치던 공명의 허허실실은 추풍낙엽이 되고 결국 병을 얻어 한나라 유씨 황실 재건은 수포로 돌아 갔던 것이다. 패당들이 쳐놓은 허허실실의 거미줄에 걸려들지 않는것이 상책이지만 때로 퍼덕이는 나비처럼 된다 하여도 결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허허실실이란것은 사람에게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