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뉴욕지구한인교회협의회(회장 김종훈 목사)가 한국장신대 김명용 총장 초청 이단대책 세미나를 20일 오전9시 플러싱 금강산 식당에서 개최했다.
조직신학 전공인 김명용 총장은 요한계시록을 신학자의 입장에서 면밀히 분석해 이단들이 성도들을 미혹하는 과정에서 쉽게 인용하거나 일반 성도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상세하고도 명쾌하게 풀어내는 유익한 강의를 펼쳤다.
10년 이상 요한계시록을 연구에 몰두했던 김명용 총장은 요한계시록에 대해 “절대 신비의 책이 아니며 또 말세론적 목적의 책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명용 목사는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으로 요한계시록을 보아서는 안되며 요한계시록은 오고 오는 세계에 모두 적용되는 영원한 책이자 앞으로 오는 세대로부터 역사의 마지막 때까지 이르는 귀한 예언의 책”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명용 총장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잘 이해를 하고 그 안에 나타난 상징을 잘 인식하시면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이단들의 발설이 너무도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명용 총장은 “요한계시록으로 이단들은 부정적인 역사관을 들고 나와 공포감을 조장하지만 실은 이 요한계시록은 잠시(악의 지배)와 영원(주님의 지배)의 대립 속에 희망의 역사관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라면서 계시록은 희망적인 종말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고 역설했다. 또 김명용 총장은 강의를 통해 ‘3년 반’이 상징하고 있는 의미, ‘14만4천’의 의미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김명용 총장은 한국장신대 대학원 졸업 후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85년부터 27년간 장신대 교수 및 학생처장, 신학과장, 교학처장, 기회처장, 신학대학원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칼 바르트 신학’, ‘성령 신학’, ‘통전적 신학’, ‘다른 복음은 없다’ 등 다수가 있다. 다음은 김명용 총장이 주장한 주요 주제들.
▽요한계시록은 신비한 책이 아니다=이단들의 대부분은 종말이나 계시록을 해석하는 문제에서 혼란을 가져다 주고 있다. 한국교회의 요한계시록 이해가 잘못되어 왔다고 판단도 된다. 이런 결과로 인해 이단들이 득세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오히려 마련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신천지가 주장하는 부분 70~80%는 계시록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계시록 해석도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계시록을 말세론적으로 접근하다가 한 발자욱 더 나가면 이단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말세론적 사고로 계시록을 보면 분명 잘못된 길로 빠질 염려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신비의 책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뭔가 비밀이 있을 것으로 착각에 빠져 이단들이 다가와 계시록을 풀고 제시하면 미혹하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의 역사 배경은 소아시아 교회가 로마제국 아래서 핍박을 받을 때였고 황재 명령에 불복하면 죽는 때였다. 어린양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생명 걸고 지키면, 잠시 어떠한 핍박은 지나고 영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세계 역사 가운데 권력을 잡았던 마귀를 보자=요한계시록만 제대로 공부해도 마귀가 국가 권력으로 엄청난 악을 행한다는 것을 아는데 요한복음 8장44절에 예수님이 마귀에 대해 처음부터 정확히 살인자라고 언급하셨다. 히틀러나 카다피도 같은 경우다. 시민들을 탱크로 깔고 죽이는 것을 봤을 때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교회는 저 곳을 위해 기도했어야 한다. 마귀가 물러나도록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도록 기도했어야 한다. 교단에 중요한 분들과 식사를 하다가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것에 상당히 놀랬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부총회장 누가 되느냐에 엄청난 관심을 쏟는다. 세계 역사 속에 마귀가 어디서 역사하는지 알아야 한다. 교회가 영적인 교회가 되면 역사 속에 마귀를 몰아내고 생명의 통치력을 이 땅에 구현할 수 있다. 교회가 그렇게 기도해야 하고 그런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세계 마귀의 역사를 몰아내는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 바로 교회다.
▽요한계시록은 사사로운 예언이 적힌 책이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잘못 알고 이해하는 이유은 예언의 책이라는 말 때문이다. 여기에 모택동도 등장하고 신천지도 등장하고 그런 것들이 요한계시록 안에 써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틀림없이 예언의 책이지만 그 예언이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이 건설된다는 예언이다. 그리고 주께서 오신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바뀐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이 다시 살고 주님과 함께 왕노릇한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을 보이고 철저히 짓밟힌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들이 승리자임을 예언하는 책이다. 그리고 예언하는 것은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처럼 보이는 마귀와 결탁된 자의 지배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심판을 받아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 빠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요한이 한가롭게 요한계시록을 쓴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신천지가 등장한다고 이 요한계시록을 썼겠는가. 이것을 기록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 눈에는 다 실패한 것 처럼 보이겠지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희가 진짜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언하는 예언의 책이다.
▽요한계시록 기록의 배경은 일제치하와 비슷=이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주기철 목사님이 떠오른다. 그 정황이 닮은 데가 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가 배경으로 작용한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가 그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로마권력이 마귀의 도구로 등장하는데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의 국가권력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신사참배를 가결한 사건이다. 강압에 의해 가결됐었다. 총대들보다는 일본 경찰이 더 많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역시 그것은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이 속해 있는 노회는 주 목사님의 목사직을 파직했다. 역사적으로 가짜 목사가 진짜 목사를 쫓아내는 일들이 늘 있었다. 제대로 영적으로 안 깨어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최소한 같은 노회에 있는 목사들이라도 주기철 목사를 위해 기도했어야 하지만 같은 노회에 있는 목사가 파직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은 감옥에서 고민을 당하고 또 당하시다 세상을 떠났다. 마귀가 이긴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처럼 마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잠깐사이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깐 그렇게 된 것이다. 광나루 장신대에 주기철 목사의 순교기념비가 있다. 그리고 주기철 기념관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한다. 장신대의 진정한 스승은 주기철 목사님인 것이다. 그 영성을 본받기를 바란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주기철 목사님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영원토록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 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을 파직한 목사들 이름만 듣기도 싫은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 주기철 목사님이 위대해진 것이다. 역사의 마지막이 되면 주기철 목사의 영광이 세상에 찬란하게 빛난다.
▽요한계시록은 희망적 종말론을 말한다=세대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을 비관적인 역사의 증거로 쓰고 있는데 계시록은 희망의 증거다. 지금 현재는 마귀가 지배하고 있다. 마귀가 황제의 권력으로 지배하는데 희망이 없다. 그런데 그 가운데 희망을 말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이 역사의 진짜 주인은 우리 주님이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곧 바뀐다는 것을 말한다. 새 역사가 오고 우리가 여기서 왕이 된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뤄진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계시록을 잘 읽으면 어마어마한 희망의 책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오고 오는 세대에도 적용될 책=요한계시록을 보면 너희가 잠시 고난을 당한다고 써 있다. 오고 오는 세계에 모두 적용되는 영원한 책이다. 앞으로 오는 세대 역사의 마지막 때까지 이르는 귀한 예언의 책이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저는 제 신앙이 각성이 된다. 이 요한계시록은 마귀의 활동조차도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요한계시록 첫 머리에 보면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마귀의 활동을 허용하시는 것을 언급된다. 이 세상에서 마귀가 국가 권력을 사용하고 온갖 세상의 힘있는 것을 사용할 때 그 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분명 마귀하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적대 세력이지만 마귀가 하나님과 싸움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교회가 희망의 역사관 가진 인재 길러야=남아공의 대통령 만델라가 27년 반을 감옥에 있었는데 그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남아공의 그 정치지도자들이 만델라를 손쉽게 죽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계의 목소리가 만델라를 죽이지 말라고 하니까 결국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최초의 남아공 흑인 대통령이 됐다. 흑백 차별의 종지부를 찍고 민족의 지도자로 서게 된 것이다. 그 기가긴 인종차별의 역사를 보면 만델라의 감옥살이는 어쩌면 정말 짧은 기간이다. 결국 세상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만델라의 이름은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 교회가 희망의 역사관을 갖고 있는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님이 진정 역사의 주인이시지 마귀가 아무리 세상 권력을 지배한다고 해도 우리 주님이 진짜 역사의 주인이시다. 너희가 이 역사 속에 진짜 주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 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의 ‘3년 반’ 고난에 대해(7년 대환란은 잘못)=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3년 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잘못 인용해서 7년 대환란 이론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3년 반과 42달이 이어서 나오는데 다미선교회 세대주의자들은 이 3년 반을 아주 많이 이야기했다. 이장림은 신학적인 이단이다. 이 세대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7년 대환란 이론은 세계에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믿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가 생겨나는 것은 위험하다. 점점 역사가 어두워져서 세계가 다 마귀 세계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 비관주의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이론이다. 교회의 사회적 역사적 책임이 흔들리게 된다. 이 역사를 개혁해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자고 하는 모든 노력이 거기서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려는 아주 중요한 이 정신이 7년 대환란 이론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된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적, 사회적 책임에 암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지금도 이 이론을 믿는 사람은 사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요한계시록에 두 번 3년 반이 나오는데 이것을 합치면 안된다. 11장, 12장의 3년 반은 합쳐서 7년대환란을 만드는 것은 세대주의자들의 머리일 뿐이고 요한계시록에 있는 이론이 아닌 것이다.
이 3년 반이라는 것은 유대 묵시문학이다. 묵시문학의 전통 속에 3년 반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 다니엘서에 한 때, 두 때, 반 때가 나오는데 다니엘서에 묵시문학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구약의 다니엘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하나님을 모독할 때였다. 유대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갈 정도로 분노하는 존재가 둘이 있는데 600만 학살자 아돌프 히틀러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다. 이 자는 유대종교를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례를 금지시켰다. 할례를 받으면 집전한 제사장과 그 아이를 죽이고 아버지도 죽였다. 할례를 받은 아이의 어머니는 그 죽은 아이의 시체를 목에 걸고 다녀야 했다. 유대인들이 가장 거룩하게 생각하는 것이 성전이고 가장 더럽다고 생각한 것이 돼지였다. 이 유대교를 짓밟기 위해 성전에 돼지떼를 몰고 갔다. 그리고 돼지를 쳐죽여서 그 피를 성전에 뿌렸다. 유대 역사에 하나님의 성전이 이렇게 핍박받은 적이 없다. 믿음을 고백하다가 처형이 되고 그 자리에서 혓바닥이 뽑혔다. 산 채로 가마솥에 집어 넣었다. 7형제가 있다면 줄줄이 다 집어 넣는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박해가 약 3년반 지속되다가 마카비 형제의 영웅적인 저항으로 끝이 난다. 유대인들은 이 마카비 형제를 기념해 절기를 지킨다.
그런데 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통치가 3년 반이라는 숫자와 연결돼 있다. 묵시문학 속의 3년 반은 마귀가 통치하는 기간의 상징적인 의미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연결돼 있다. 그렇기에 3년반을 7년으로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긴 기간도 아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기간인 3년 반은 뒤에 나오는 천년왕국과 대립되는 숫자다. 마귀는 3년반이지만 그리스도의 통치는 천년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판단을 하려면 제대로 판단을 하라는 것이다. 이 3년반은 도메시안 황제의 폭정, 그 처참한 기간을 상징한다.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곧 끝나고 천년의 왕국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 잠시라는 말은 영원과 대립된다. 마귀는 잠시 통치하고 3년 반 통치하지만 주의 나라를 천년이 지속되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 요한계시록은 너무도 중요한 역사관이다. 대립적 역사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잠시와 영원의 대립 속에 요한계시록은 희망의 역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11장 3절 두 증인에 대해=요한계시록 11장 3절에 두 증인이 나온다. 그리고 1260일, 3년 반도 나오는데 이 3년 반은 마귀의 통치 기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감람나무에 대해서 말이 나오는데 전도관 박태선이나 신천지는 이것을 자신들로 본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상황을 보고 이 본문을 잃어야 한다. 이 두 증인은 엘리야와 모세다. 이 시대는 엘리야 시대도 아니고 모세 시대도 아니다. 이 박해 상황 속에서 엘리야와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일꾼이 누구냐 이 엘리야와 모세는 적군과 큰 싸움을 했던 이들이다. 어떠면 힘없은 인간이 국가권력과 싸운 대표적인 인물이 엘리야와 모세다. 지금 종말론적인 큰 싸움이 벌어지는데 이 두 증인은 영웅적으로 싸우다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박해 속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다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상징한다. 계시록에 무저갱에 올라오는 짐승이 나오는데 이 로마제국의 권력이 그들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 종말론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데 로마 권력으로 인해 죽지만 다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너희가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14만4천의 의미에 대해=이 요한계시록 자체가 위장 언어를 사용하고 암호와 상징 언어를 사용하는 책이기 때문에 문자적인 14만4천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다. 대게 이단들의 특징이 구원의 편협성이다. 대체로 훌륭한 종교가 구원에 대해 보편적이고 못난 사이비 성향의 종교가 편협성을 지니고 있다. 이 14만4천의 기본 정신은 지금의 시대와 다른 배경에 있다. 그 당시 상황 속에 그리스도인 그 당시 14만 4천도 안되던 때였을 것이다.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가 회의가 퍼져나가던 때였다. 요한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확실히 봤는데 무려 14만 4천이나 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아서 어린양 앞에서 찬양을 하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치신 사람은 틀림없이 구원한다는 메시지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라는 것이다. 당신께서 인치신 사람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부 구원한다는 것이다. 다 어린양 앞에 서서 찬양하는 그 영광의 비전을 확실히 봤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14만4천은 엄청난 희망을 주려는 희망의 숫자다. 우리 가운데 구원에 실패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인치신 사람을 하나님은 구원하신다.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 따라가는 자들이다. 큰 음녀 바벨론이 나오는데 로마제국이다. 로마제국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 이미 사라진 바벨론을 말한다. 음녀라는 것은 무엇인가 우상숭배하는 것이 음녀다. 주님만 섬기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데 지금 우상을 섬기고 우상 섬기기를 강요하는 이들을 음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는 자들인 것이다.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세세토록 왕노롯 한다고 한다. 너희들은 하늘나라에서만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세토록 왕노릇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