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의 어머니는 힘이 없어 몸을 잘 못 가누어 양노원에 계십니다. 다행이 아버님이 계시는 아파트와 한 불럭 사이에 위치에 있기에 아버님도 형님도 자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차남인 저도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저희 형제들을 키우실 때,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8남매를 낳아 셋은 실패 했습니다. 저희가 어릴 때는 열병이나 다른 이유로 자주 까무러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침놓는 한의원이 많아 침산이라고 불리우는 곳까지 아픈 아이를 엎고 갔습니다. 택시를 못 잡으면 버스를 타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세 자식이 병들어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때 마다 어머니를 탓했다고 했습니다. 자식 감기 드는 것도 어머니 탓으로 돌렸습니다. 또 자식을 죽여 남편에게 욕(?)먹기 싫었던지 허겁지겁 정신없이 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주 아픈 자식들 중에 제가 제일 약골이라서 자주 아팠다고 했습니다.
저희들이 중고등 학교 다닐 때 도시락을 매일 4-6씩을 싸셨습니다. 마땅한 도시락 반찬이 없어 힘들어 하시던 어머님의 한숨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어쩌다 제 딸들의 점심 샌드위치 하나를 싸줄 때 그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안 이후부터 말입니다. 물론 그 때에도 돈만 있으면 해결이 되었겠지만… 제가 여름 방학에 ROTC 하계 군사훈련을 다녀오면 한달 훈련 받느라 못먹어 바짝 마르고 태양 빛에 그을러 시꺼먼 베트공 같은 아들을 위해 언제나 그 날 저녁상에는 제가 좋아했던 푹 고아놓은 사골 국물이 올라왔습니다. 그 것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들을 쳐다보는 그 따뜻한 눈길이 이제는 그리워도 다시 느낄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 때 어머니의 눈길 때문에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노년이 되어 누워 계신데 자주 가지도 못하는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유행가는 저를 위해 지은 노래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도리 중 제일이 부모 공경임을 십계명에 기록을 했습니다.
영적인 하나님을 모시는 것처럼 육신의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은 일맥 상통하는 것입니다. 반중 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니 유재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이를 서러 하노라. 어느 옛시인이 돌아가신 보모님을 그리워 하며 쓴 시입니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전화라도...
가까이 계시면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