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던 1.5세 목회자 그가 OMC로 온 이유?
죽어가는 2세 살리기 위해 1세 목회 회복이 선결 과제
효과적인 EM 사역 교단 교파 초월해 뭉치는 게 사는 길
“아프다고 자리깔고 누워있을 수 만은 없죠. 아프면 아픈대로 약 먹으면서 할 일을 해야죠.”
올해로 42주년을 맞이한 동양선교교회(OMC)의 담임 박형은 목사의 말이다. 지난 12일 만난 그의 인상은 마치 거친 파도에 모난 돌이 깎여 동글동글해지듯 교회 갈등을 겪으며 동그랗게 깎인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부적인 어려움과 핍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고난 가운데 소망을 꽃피우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노라 다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LA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대형교회로 손꼽히던 교회였는데…’ 하는 안타까움을 인터뷰 내내 떨칠 수 없는 건 어째서일까. 2005년 이래 심각한 내홍을 겪으면서 당시 시무하던 목사는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물론 교회의 대외 이미지는 곤두박질쳤다. 언론에 비췬 일부 기득권자의 무분별한 횡포는 믿는 이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교회에 지난해 7월 5대 담임으로 박형은 목사가 부임한 것. 그로부터 딱 1년 반이 지났다. 이 시점에서 그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그의 약력부터 소개하자면,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아르헨티나 이민을 거쳐 1979년 북가주에 건너온 1.5세 목회자다. 나성영락교회 EM(영어 목회)을 12년간 담당하다 2007년 텍사스 빛내리교회에서 4년간 1세 목회를 한 경험이 있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스패니시, 포르투갈어까지 4개 국어에 능통한 ‘차세대 목회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문제 많은 동양선교교회에 부임할 당시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2세 목회자는 맷집이 약하니 조금만 힘들게 하면 금방 (교회를) 떠날 거라고. 길어봤자 3년, 아니 1년도 채 못 버틸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예상은 오히려 빗나갔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제가 만약 떠난다면, 힘들어서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시기 때문일 거에요. 어느 교회라고 안 힘들겠어요. 앞으로 모든 게 정리되면, 교회 분쟁 관련 세미나를 한 번 할려고 해요.(웃음)”
박 목사 부임 후 처음 1년간은 외부적으로 조용한 듯 보였다. 그러다 지난 7월부터 잡음이 들리더니 사설 경호원이 교인들의 교회 출입을 간섭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를 반복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힘든 교회에 애당초 왜 왔냐”고 묻기도 한다고. 그러면 그는 “힘든 교회니까 왔다”고 역설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10여년간 2세 목회에 올인(all-in)해오던 그가 돌연 1세 목회로 전향한 건, 2세 목회가 싫어서가 아니다. 한 세대의 악이 다음 세대의 영성을 죽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 세대의 영성을 보면서 2세들이 자기 갈 길을 결정하는데, 자녀들 눈에 부모가 위선자나 이중인격자로 보이는 가정이 많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사사기 2장10절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는 말씀처럼 가망이 없다고 본다”면서 “2세들을 위해서라도 1세들이 제대로 신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워낙 안 좋은 뉴스거리로 유명세(?)를 타서 그런지 2세들도 OMC 하면 ‘힘든 교회’라는 걸 다 안다고. 오죽하면 ‘그 교회는 절대 안 바뀔거다’라고 장담하는 2세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OMC에 온 이유에 대해선 “하나님께서 망가진 교회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1세 목회가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힘들다고 더 이상 못하겠다’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달린 문제이니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라는 것.
“두고 보세요. 사람이 보기엔 절대 안 바뀌어도 하나님께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올바로 세워질 때까지 결단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박 목사와의 일문일답.
-오랜 분열과 갈등을 겪어왔는데, 그나마 어느 정도 많이 극복이 된 것 같습니다.
집안에서도 가장(家長) 역할이 중요하잖아요. 가장의 태도와 기분에 따라 온 가족이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듯이 목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힘들어하면 양들도 힘들어하거든요. 목사가 느긋하고 여유만만하면 교인들도 힘 받는 거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라도 더 웃으려고 하고 표정관리도 하고 그러죠. 물론 기도할 때는 눈물 뿌리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서로 대할 때는 되도록이면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많이 웃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우리 교인들한테도 얘기해요. 총 맞은 사람처럼 얼굴 찡그리고 다니지 말고 웃고 다니라고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죠.
근데 지나고 보니 유치하기도 하고, 다 큰 어른들이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 장난 마냥 ‘우리 꺼’라고 문 걸어잠그고 했을까 싶어요. 요전에 한 2세가 저한테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자기 아버지가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다”면서 “자기가 너무 미안하다고 대신 용서를 빌겠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아버지보다 낫단 생각을 했어요.
-내홍을 겪으면서 상처가 클 것 같습니다.
현재 출석 성도는 1000명에서 1200명 정도입니다. (안 좋은 일이 터지니) 처음엔 청년들이 다 떠나더라구요. 다행인 건 교회 분위기가 시끄러워도 교인들 안에 조금씩 분별력이 생기는 거 같고, 교회가 회복되는 단계 속에서 아프지만 반드시 거치고 가야 할 과정이라 생각해요. 제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건, 하나되는 것 밖에 살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얘기하면 어느 성도는 ‘목사님은 과거를 몰라 그런다’고 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오히려 ‘과거를 모르니 할 수 있다’는 거에요. 과거에 대한 영적 치매에 걸리는 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전 것은 흘려 보내는 자세죠.
그나마 이 와중에 교회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이 보이고,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돌아오고 있어요. 우리교회가 지리적으로도 한인타운 중심에 있고 또 역사도 있으니 올바로 서서 부흥하는 건 금새이겠다 싶어요. 병 걸렸다고 병에만 집착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저도 나이가 드니 당뇨병에도 걸리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졌어요.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 나이가 마흔 둘인데, 사람으로 치자면 저처럼 중년이니 성인병이 올 때도 됐죠. 우리 교회의 경우 일찍 온 건데, 약 먹으면서 갈 길 가자는 주의에요. 완벽해질 때까지, 혹은 다 정리될 때까지 손 놓고 있지 말고 교회적으로 할 일은 하면서 전진하자는 겁니다.
-내년엔 교회적으로 어떤 일들을 추진할 계획인가.
우리 교회는 임동선 목사님 시절부터 시작해 선교, 교육, 봉사 면에서 주력해 왔습니다. 선교나 교육 면에 있어선 여느 이민교회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잘 해 왔다고 생각해요. 다만 봉사 면에서는 좀 약했죠. 교회 안에서만 해 왔는데, 집안에서 엄마가 자녀를 위해 봉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지금까지는 OMC가 부끄러운 일, 창피한 일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커뮤니티를 섬김으로 이미지 쇄신에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7월말부터 다시 차터스쿨을 시작하기로 했고 현재 추진 중에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병 들었다고 자리깔고 눕는 것보다 치료하면서 나아가야죠. 악한 자들보다 선한 자들이 더 많고, 교회를 비난하는 자보다 기도하는 자들이 많으니 감사한 일이죠. 교인들이 연말과 정초를 맞아 기도모임도 시작하는 등 신나있어요. 이번에 새로 장로가 된 분들도 열정을 갖고 해 나가겠다는 자세구요. 미래를 바라볼 때 신납니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교회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2세들에게 도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교회 갈등이 2세 목회에 치명적이라 하셨는데 여기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작년 추수감사주일에 EM에서 450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러다 금방 1천명 모이겠다 싶었는데, 싸움이 터지니 가장 먼저 빠지는 사람들이 2세들이더라구요. (교회 문을 잠그고 난리를 피우는 통에) 지금 남은 사람은 120명이니, 한 세대의 악이 다음 세대를 죽인다는 것이 OMC에서 현실적인 그림으로 나타나더라구요.
저는 세계선교대회에서도 항상 부르짖는 게 자녀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투자는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으면 되겠냐는 겁니다. 집을 하나 지어도 1백년 뒤를 바라보고 지으라고 하는데, 우리는 당장 자신들만의 만족에만 머무르고 후손들이 바통을 잡고 해 나갈 토대를 마련해 놓는 데엔 소홀하다는 거죠.
-EM 목회에 오랜 경험이 있으신데, 2세들 쪽에도 문제가 있진 않을까요?
물론 2세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갈팡질팡하고, 리더가 없다는 면에서 문제가 많죠. 그래서 2세 목회자들 만날 때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어떻게 목회하겠느냐”고 충고하기도 해요.
오는 12월 26일부터 3박4일 동안 샌디에고에서 열리는 ‘하이어콜링(Higher Calling)’ 대회에서도 2세 목회자들을 위한 트랙을 따로 마련했어요. 2세 목회자들이 한인교회에서 살아남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1세들과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정서가 달라요. 보통 언어만 다르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문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정서거든요. 1세 목회자의 정서와 2세 목회자의 정서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거기서 오는 불화와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1세 목회자들이 2세 목회자를 볼 때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자세로, 서로가 믿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세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텍사스 빛내리교회에서의 4년간은 1세 목회를 위한 ‘대학교 과정’과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저를 훈련시키셨던 것 같아요. 1세들의 정서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금의 OMC로 보내셨는데, 그런 준비가 없었다면 저도 갈팡질팡하고 당황했을 거에요. 다행히 준비 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많이 도움이 되네요.
-모든 목회자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는데.
2세 목회를 위해 1세 목회를 한다고 하지만,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기도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각 교회마다 개별적으로 EM을 두려 하지 말고,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힘을 좀 합쳤으면 좋겠다는 구상입니다. 가령 10개 교회가 동역해서 2세들에게 퍼부을 예산을 합쳐서 함께 하나의 EM 교회를 세우는 식인 거죠. 20명 모여서 예배 드리는 거랑 200명 모여서 하는 건 분위기가 사뭇 다르거든요. 교역자도 5명일 때와 10명일 때는 시너지가 달라요. 한인타운에서 아무리 대형교회라 해도 EM이 제대로 되는 데가 거의 없거든요. 그럴 바엔 차라리 하나로 합치자는 겁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제가 늘 교인들에게 소망을 불어넣으면서 얘기하는 것이 부활 신앙이에요. 다 죽은 것 같이 보여도 수렁에서 끌어내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믿음으로 가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 올리고 밥 먹는 것보다, 가서 밥 하는 것부터 배우고 김장하는 것도 배우면서 우리의 것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기쁨이 있잖아요. “옛날엔 우리가 이랬는데”하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해요. 과거의 영광 바라봤자 쓸데 없고, 사도 바울이 자신이 이룬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듯 앞만 바라보며 가자는 거죠.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할 일 하면서 가면 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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