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절 때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0:22-39)

신약 성경을 연구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복음서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을 시간과 지역 별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저자의 특별한 관점에 따라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태는 예수님의 사역을, 주로 유대인들을 위한 사역에 주목했고 대부분 갈릴리에서의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께서 팔레스틴의 먼 거리를 여행하시는 중에 이방 지역에서 있었던 사건들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베뢰아에서의 사역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많은 비유의 말씀은 마태복음에는 대부분 생략되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정확한 장소와 시기를 통해 묵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복음서를 훨씬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겨울에 있는 절기인, 수전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본다.

수전절은 구약에는 기록되지 않은 주전 168년 마카비 반란과 관련이 있다. 주전 168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Antiochus Epiphanes IV)는 예루살렘의 스룹바벨 성전에서 제우스 (Zeus)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관리와 군사들을 유대 모든 마을로 파송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우상에게 절하고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이 사건은 팔레스틴의 모든 유대인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안티오쿠스가 파송한 관리는 예루살렘의 북서쪽 약 40 Km 떨어진 모디인 (Modiin)에도 이르렀다. 관리는 레위 지파 출신인 제사장 마타티아스 (Mattathias)에게 이방 제사를 집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명령을 거부한 마타티아스는 왕이 파송한 관리를 살해하고 유다 마카비를 포함한 다섯 아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연합하여 왕의 파송 부대를 전멸시켰다. 모디인 인근 야산으로 피신한 유대 반란군은 마타티아스의 아들 유다 마카비가 지휘하였다. 마카비는 점차 세력을 얻어 주전 164년 예루살렘을 함락하였다. 당시 성전은 이미 이방 제사로 더럽혀졌고, 성전의 기명들은 분실되거나 크게 훼손되었다. 그래서 유다 마카비는 성전을 청결케 하고 촛대 (Menorah)에 불을 밝히고자 했으나 성전에 사용할 정결한 감람유 (Olive Oil)는 하루를 밝힐 양 밖에 없었다. 이 부분에서 탈무드의 기록에 따르면, 하루치 감람유는 놀랍게도 팔일 동안 꺼지지 않았고, 정결한 감람유를 준비할 수 있도록 팔일 동안 켜져 있었다는 것이다. 마카비서에 기록된 수전절에 관한 내용이다: 유대인들은 팔일 동안 성전 봉헌(하누카)을 기뻐하였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다시 봉헌한 날을 . . . 해마다 . . . 팔일 동안 . . . 지킬 것을 공포하였다 (마카비상 4:56-59). 요세푸스는 수전절을 빛의 절기 (Feast of Lamps)로 묘사하였으며, 유대인들은 이 때를 하누카 절기로 지킨다. 하누카 곧 수전절은 유대 월력으로 키슬레브 (Kislev) 25일부터 8일을 지킨다. 곧 지금의 12월 초에 해당된다.

수전절은 성전을 꼭 방문해야 하는 절기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을 방문하셨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요 10:22-23). 요한복음 10:22절의 수전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시기 전, 예수님은 이미 3개월 전,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가신 적이 있다. 그 초막절 때에 있었던 사건들을 요한은 자세히 기록하였다.


초막절 때의 기록인 요한복음 7:10-10:21절과 수전절 때의 사건인 요한복음 10:22-39절 사이에는 약 3개월간의 시차가 있다. 바로 이 3개월 동안 예수님은 유다 지방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셨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요한복음이 아닌 누가복음 10:1-13:21절에 기록되어 있다.


수전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님은 늘 그러셨던 것처럼 성전 안 솔로몬 행각으로 가셨다. 솔로몬 행각 (Solomon’s colonnade)은 솔로몬 성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헤롯이 건축한 성전의 동쪽에 위치한 열주들이 위치한 주랑을 가리킨다. 솔로몬 행각에서는 주로 모임과 교육이 행해졌다 (요 10:24, 행 3:11, 5:12; 눅 2:46, 요 7:14 참고).

초막절부터 수전절까지는 약 3개월간 시간의 간격이 있었지만, 여전히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에 대한 의혹을 갖고 있었다. 초막절 때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있었다: 무리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의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요 7:31). 그러나 믿는 무리들과는 다르게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사람들을 파송하였다 (요 7:32). 초막절 때의 이런 갈등은 수전절에도 계속되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 . 유대인들은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였다 (요 10:24-31).

메시아에 대한 의혹을 갖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내 말을 믿지 아니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고 저희는 나를 따르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도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라. 그러나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깨달으리라 (요 10:26-38).

수전절, 예루살렘에서,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은 저희를 떠나 요단강 동쪽 요한이 처음 세례 주던 곳으로 가 거기 거하셨다 (요 10:40). (사진은 헤롯 성전을 1/50로 축소한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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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