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가 지난주(2012년 9월 25일)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된 입법의회에서 국내 개신교 교단들 중 최초로 목회자 가족의 교회 대물림을 제도적으로 막는 ‘세습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연속해서 동일 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 그의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는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조선일보, 2012.9.26. A23). 무기명 투표 결과 총 투표자 390명 중 찬성 245명 반대 138명, 기권 7명으로 통과됐다(KBS TV9시 보도, 2012. 9.25). 새 교단법은 ‘부모와 자녀나 사위나 며느리가 연속해서 한 교회를 담임할 수 없다’고 명시(明示)한 것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에서는 앞으로 목사인 아버지가 자녀나 그 배우자에게 담임목사직을 물려주는 ‘교회 세습’이 원천적으로 금지된 것이다. 62.8%로 찬성으로 신설된 개정안은 2012년 9월 28일 공포되어 시행에 들어갔다. 아직도 한국교회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에서는 어느 교단 총회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되지 않았다. 감리교가 개정한 세습금지법은 장로교와 더불어 한국 개신교 모든 교단에 적용되어야 한다. 필자는 학자요 장로교 목사로서 이러한 개정안에 찬성하고 환영하면서 이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성경적 근거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야훼의 언약궤를 메며 야훼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야훼 이름으로 축복하도록 구별받았다. 레위 지파는 그 형제 중에서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야훼가 그의 기업이었다(신 10:8~9). 구약의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 나오고, 대대로 세습되어 야훼를 섬기는 직분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땅이나 재산을 갖지 않고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 어느 지파에서나 나올 수 있고, 소명받기 전의 직업도 다양하다. 그리고 예언자가 세습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가문의 세습으로 이루어졌다. 그 집안에 태어난 자식이 불알이 터졌거나 한쪽 눈알이 빠졌거나 팔이 병신이거나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하지 않는 한 남자는 누구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다른 직업은 가질 수 없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구약의 제사장이다.
교회 세습의 합리화 근거를 구약시대 제사장의 세습에서 찾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목사는 세습이 아니고 소명직(召命職)이다. 주님이 불러서 사명을 주시고 양무리를 치도록 맡기시는 것이다. 아버지가 목회자라고 그 아들이 반드시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세습직이 아니다. 예수님도 그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사(祭司) 계급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고, 어부, 세리 등을 불러 제자로 삼았다. 사도직도 그 자식들에게 세습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도의 제자들도 그 직을 세습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에는 세습이 없었다. 구약성경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도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살 수 있게 했으나 분깃이나 기업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축복권’만 아니라, 돈과 명예와 권력(교권)까지 한꺼번에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 타락의 징조가 되는 것이다. 교회 세습을 구약의 제사장직에서 찾으려는 발상은 전혀 개신교적이 아니다.
2. 교의학적 근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권한은 세습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것을 세우거나 개척한 목회자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오늘날에는 제사장은 없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로마 천주교가 말하는 교회 직제의 제사장 신분을 보편화하였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종교개혁 교회는 예수 대속(代贖)의 피를 믿고 그의 은혜를 힘입어 보좌에 나아가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더 이상 혈육으로 세습되는 것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혈통으로 계승되지 않고 믿음으로 계승된다고 말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유대인이나 목회자의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이 조건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는 혈육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고 신앙고백하는 자가 받는다. 혈육이 아니라 믿음이 핵심이다.(마 16:17-19). 교회의 목회권은 교권적으로나 혈육으로 전(傳)해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자들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소명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혈육적인 세습이 정당화될 수 없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하). 목회권은 담임목사의 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 가운데 소명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3. 교회사적 근거
로마 천주교 주교좌성당 세습(cathedral transmission)은 중세교회사에서 이미 실패한 제도였다. 중세에 천주교가 타락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 주교좌성당의 세습이었다. 당시 성행하던 주교좌성당의 세습 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성직자 독신주의였다. 주교좌성당을 두고 이루어지는 세습으로 인해 중세교회는 성직매매와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다. 급기야 클뤼니(Cluny)수도원의 일원으로 수도회 개혁운동을 주도한, 청렴한 수도승 힐데브란트(Hildebrand)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그레고리 7세(Pop Gregorius VII, 1073-1085)로서 교회개혁 청사진을 담은 27개의 교황령을 반포했다. 그 주요 내용은 성직매매 금지, 속인의 주교 서임(敍任)권 금지, 사제 결혼 금지였다. 교황은 성당 세습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성직자 독신주의를 전격적으로 교회에 끌어들였다. 1074년 그레고리 7세의 성직자 독신주의 선언은 교회의 세습 행위를 막으려는 특단의 조치에서 비롯되었다. 그 때까지 교회는 수도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직자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고, 권력과 명예와 돈이 모이는 주교좌성당은 중세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교좌성당 세습은 교회의 화합을 해치고, 사교회화(私敎會化)하여, 공교회성(公敎會性)을 약화시켰다. 11세기 그레고리 7세 개혁 이후, 성직자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게 되었으며 독신으로 생활해야 했다. 12세기 중엽(1110년)에는 종교법에서 성직자-평신도의 구분을 법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성직자는 성무에 종사하여야 하고, 묵상과 기도에 전념해야 하기에 무소유자로서 세속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 이처럼 주교좌성당 세습의 차단을 위하여 성직자 결혼금지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의 역사를 밟아온 것은 초기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초기 개신교 목사들은 교회 건물을 올리기 전에 학교와 병원·복지시설부터 세웠다. 이런 헌신(獻身)이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존경과 신임의 반석(盤石)이 됐다. 그러나 신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외형은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초창기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대형 교회 목사직은 돈과 명예·권력이 따르는 자리가 됐다. 일부 목사는 은퇴 후에도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교회를 아들이나 사위에게 대물림하기에 이르렀다. ‘목회 세습’과 ‘교회 세습’은 구분되어야 한다. 목회 세습이란 목회자의 자녀가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되는 것이며, 교회 세습이란 목회자가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 세습은 재산권과 관련이 없고 신앙과 정신적 품성만을 물러 받는 것이기에 좋은 전통이 될 수 있으나, 교회 세습은 재산권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탐욕이 개입되는 악습이 되는 것이다.
4. 사회윤리적 근거
교회 세습은 담임목사 ‘사교회화’(私敎會化)의 전형이다. 세습은 공적 기관인 교회를 개인이나 가족의 사유물로 여기는 것으로, 신학적·성경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회 세습은 정의 수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서 공정한 경쟁원칙을 무너뜨린다. 또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담임목사의 사유재산화한다. 대형교회들은 담임목사의 절대적 카리스마, 교회의 목표를 복음의 전파보다 성장에 두고 있는 번영주의,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 등의 특징으로 대표된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은 인사권, 재정 등 모든 권한이 담임목사에게 귀속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단순히 목사직만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모든 권한(재산권, 인사권 등)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세습의 문제는 종교적인 영역인 동시에 사회적인 영역의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은 이대로 가면 기독교가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여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제 기구는 없다. 개교회가 스스로 판단해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교단의 헌법이나 장정에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면 공교회적으로는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에 감리교 총회에서 통과된 세습금지법이다. 이것도 완벽한 것은 못 된다. 왜냐하면 세습에 사욕(私慾)을 가진 목사는 교단을 탈퇴해서라도 그 자식에게 교회를 물러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자신이 올바른 교회론과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에는 교회론과 가치관의 심각한 왜곡이 있다. 목회자의 교회론과 사회윤리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
5. 시대적 근거
개신교계에서는 1997년 ‘대형 교회 세습 1호’로 불려온 서울 충현교회 김창인(95)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대물림하면서, 강남 K감리교회 등을 비롯한 다른 교회 세습의 ‘물꼬’를 텄다. 지금까지 한국 감리교회에서는 강북 K감리교회, 강남 E감리교회, M감리교회, 인천 S감리교회 등 세습이 유행해 왔고, 장로교회에는 변칙 세습과 목회자 퇴직금 경쟁이 유행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경우 서울을 비롯한 인천, 경기 등에 수천 명 모이는 교회는 다수가 세습되어 왔다. 3천 명에서 6천 명 정도의 교인이 모이는 감리교회들은 교회 세습을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12년 6월 14일 김창인 목사가 “한국 교회와 하나님 앞에 저의 크나큰 잘못을 회개합니다. 충현교회 성도 가슴에 씻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아들을 무리하게 담임목사로 세운 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조선일보 6월 14일자 A2면 보도〉라고 고백한 것 등을 계기로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져 왔다. 교회 세습은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신뢰를 잃은 핵심 원인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받게 되었고,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가 기독교적 가치를 전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고난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가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그런 부끄러운 교회가 되었다.
세습 결정을 하는 이들 교회들은 하나같이 교인들이 원하고 장로들을 비롯한 교회 중직들이 원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당수 교회가 이미 부자간 대물림으로 인해 갈등과 시험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장로교 대교단 소속 교회들은 한 교회에서 30-40년씩 목회를 하고 은퇴하는 목사들이 퇴직위로금을 수십 억씩 경쟁적으로 챙겨간다고 한다(대형교회 세습관행 끊어야 한국교회 미래있다. 교회연합신문, 2012.9.23. 3면). 이런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 교회에도 없는 일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는 정신, 곧 시대정신이 있다. 기독교가 이를 반영하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실질적으로 부모의 교회를 이어받아 목회를 잘하는 목사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요구가 그렇고, 교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이번에 세습금지법이 마련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사회의 요구”다. 즉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교회 세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리교 총회에서 세습금지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되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감리교, 개신교 역사를 한 次元 높이 끌어올렸다”고 보도했다(조선일보, 2012.9.26.일자). 한겨레신문도 이를 보도하면서 이것은 “개신교 교단의 쇄신운동”이라고 평가했다(감리교 ‘교회세습’ 안한다. 한겨레|입력2012.09.25 21:30|수정2012.09.25 23:50). “감리교단이 가족간 교회 대물림을 끊기로 스스로 발의(發議)해 결정한 것은 한국 교회의 자기 정화(淨化) 능력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다. 감리교단이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개신교 신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담당할 긍정적 역할에 아직도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조선일보, 2012.9.26.일자). 세습금지법 통과와 함께 이제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소망의 빛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교단의 ‘교회 대물림 금지’에 대해 “교회의 자기 개혁과 쇄신을 바라는 사회의 요구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라고 한 감신대 교수들의 지지 성명은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뜻있는 모든 사람의 정직한 소감이기도 하다
맺음말: 세습 금지는 시대의 요청이며 시민의 정서, 모든 개신교단이 이에 동참해야
감리교 세습금지법의 전격적인 통과는 한국 개신교사에 획을 긋는 신선한 쾌거다. 감리교단은 규모에서 소속 교회 6200개, 신도 수 160만 명으로 한국 개신교 3대 교단 중 하나다. 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교단에 이어 셋째로 큰 교단으로 꼽힌다. 이런 감리교의 교회 세습 반대 추진은 개신교계 전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감리교의 세습금지법 통과는 한국교회가 자정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쁜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감리교는 지난 4년간 교단의 수장인 ‘감독회장’ 자리 등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이어지면서 교단 행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지난 6월에야 서울 연회 감독을 지낸 김기택 감독이 법원 명령에 따라 임시 감독회장 업무를 시작했고, 교단 총회도 열리면서 행정 기능이 되살아났다. 그동안 흙탕물을 뒤집어 썼으나 이번을 계기로 감리교가 다시 살아났고, 한국 개신교의 자정(自淨)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장로교를 비롯한 타교단이 응답할 차례다. 한국교회는 여태까지 개교회주의로 나가면서 사회적 이목을 피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교회는 사회로부터 도덕적 윤리적 지탄을 받았다. 필자가 사이비 이단을 사회윤리적으로 비판하면 안티기독교는 한국교회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그 비판을 우리에게 돌리곤 하였다. 교회법은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한국교회가 지금 시대정신을 거역하면 교회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사회가 바라는 건전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공교회성을 회복해야 한다. 소위 장자교단이라는 장로교 통합, 합동, 기장, 고신 교단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1. 성경적 근거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야훼의 언약궤를 메며 야훼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야훼 이름으로 축복하도록 구별받았다. 레위 지파는 그 형제 중에서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야훼가 그의 기업이었다(신 10:8~9). 구약의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서 나오고, 대대로 세습되어 야훼를 섬기는 직분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땅이나 재산을 갖지 않고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서 어느 지파에서나 나올 수 있고, 소명받기 전의 직업도 다양하다. 그리고 예언자가 세습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가문의 세습으로 이루어졌다. 그 집안에 태어난 자식이 불알이 터졌거나 한쪽 눈알이 빠졌거나 팔이 병신이거나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하지 않는 한 남자는 누구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다른 직업은 가질 수 없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구약의 제사장이다.
교회 세습의 합리화 근거를 구약시대 제사장의 세습에서 찾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불연속성 측면을 간과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목사는 세습이 아니고 소명직(召命職)이다. 주님이 불러서 사명을 주시고 양무리를 치도록 맡기시는 것이다. 아버지가 목회자라고 그 아들이 반드시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세습직이 아니다. 예수님도 그 제자들을 부르실 때 제사(祭司) 계급에서 부르신 것이 아니고, 어부, 세리 등을 불러 제자로 삼았다. 사도직도 그 자식들에게 세습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도의 제자들도 그 직을 세습하지 않았다. 초대교회에는 세습이 없었다. 구약성경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도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살 수 있게 했으나 분깃이나 기업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는 ‘축복권’만 아니라, 돈과 명예와 권력(교권)까지 한꺼번에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 타락의 징조가 되는 것이다. 교회 세습을 구약의 제사장직에서 찾으려는 발상은 전혀 개신교적이 아니다.
2. 교의학적 근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권한은 세습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것을 세우거나 개척한 목회자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오늘날에는 제사장은 없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로마 천주교가 말하는 교회 직제의 제사장 신분을 보편화하였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종교개혁 교회는 예수 대속(代贖)의 피를 믿고 그의 은혜를 힘입어 보좌에 나아가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더 이상 혈육으로 세습되는 것이 아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혈통으로 계승되지 않고 믿음으로 계승된다고 말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유대인이나 목회자의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이 조건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의 열쇠는 혈육이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고 신앙고백하는 자가 받는다. 혈육이 아니라 믿음이 핵심이다.(마 16:17-19). 교회의 목회권은 교권적으로나 혈육으로 전(傳)해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자들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소명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혈육적인 세습이 정당화될 수 없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하). 목회권은 담임목사의 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 가운데 소명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3. 교회사적 근거
로마 천주교 주교좌성당 세습(cathedral transmission)은 중세교회사에서 이미 실패한 제도였다. 중세에 천주교가 타락했을 때 나타난 현상이 주교좌성당의 세습이었다. 당시 성행하던 주교좌성당의 세습 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바로 성직자 독신주의였다. 주교좌성당을 두고 이루어지는 세습으로 인해 중세교회는 성직매매와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다. 급기야 클뤼니(Cluny)수도원의 일원으로 수도회 개혁운동을 주도한, 청렴한 수도승 힐데브란트(Hildebrand)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는 그레고리 7세(Pop Gregorius VII, 1073-1085)로서 교회개혁 청사진을 담은 27개의 교황령을 반포했다. 그 주요 내용은 성직매매 금지, 속인의 주교 서임(敍任)권 금지, 사제 결혼 금지였다. 교황은 성당 세습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성직자 독신주의를 전격적으로 교회에 끌어들였다. 1074년 그레고리 7세의 성직자 독신주의 선언은 교회의 세습 행위를 막으려는 특단의 조치에서 비롯되었다. 그 때까지 교회는 수도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교직자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고, 권력과 명예와 돈이 모이는 주교좌성당은 중세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교좌성당 세습은 교회의 화합을 해치고, 사교회화(私敎會化)하여, 공교회성(公敎會性)을 약화시켰다. 11세기 그레고리 7세 개혁 이후, 성직자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게 되었으며 독신으로 생활해야 했다. 12세기 중엽(1110년)에는 종교법에서 성직자-평신도의 구분을 법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성직자는 성무에 종사하여야 하고, 묵상과 기도에 전념해야 하기에 무소유자로서 세속과 거리를 두어야 했다. 이처럼 주교좌성당 세습의 차단을 위하여 성직자 결혼금지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한국에서 개신교가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의 역사를 밟아온 것은 초기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초기 개신교 목사들은 교회 건물을 올리기 전에 학교와 병원·복지시설부터 세웠다. 이런 헌신(獻身)이 기독교에 대한 사회의 존경과 신임의 반석(盤石)이 됐다. 그러나 신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외형은 가난하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초창기 기독교의 아름다운 전통이 희석되기 시작했다. 대형 교회 목사직은 돈과 명예·권력이 따르는 자리가 됐다. 일부 목사는 은퇴 후에도 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교회를 아들이나 사위에게 대물림하기에 이르렀다. ‘목회 세습’과 ‘교회 세습’은 구분되어야 한다. 목회 세습이란 목회자의 자녀가 대를 이어 목회자가 되는 것이며, 교회 세습이란 목회자가 자녀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 세습은 재산권과 관련이 없고 신앙과 정신적 품성만을 물러 받는 것이기에 좋은 전통이 될 수 있으나, 교회 세습은 재산권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인간의 탐욕이 개입되는 악습이 되는 것이다.
4. 사회윤리적 근거
교회 세습은 담임목사 ‘사교회화’(私敎會化)의 전형이다. 세습은 공적 기관인 교회를 개인이나 가족의 사유물로 여기는 것으로, 신학적·성경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회 세습은 정의 수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치, 사회, 경제 영역에서 공정한 경쟁원칙을 무너뜨린다. 또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담임목사의 사유재산화한다. 대형교회들은 담임목사의 절대적 카리스마, 교회의 목표를 복음의 전파보다 성장에 두고 있는 번영주의,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 등의 특징으로 대표된다.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은 인사권, 재정 등 모든 권한이 담임목사에게 귀속하는 구조를 바탕으로 단순히 목사직만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모든 권한(재산권, 인사권 등)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세습의 문제는 종교적인 영역인 동시에 사회적인 영역의 문제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은 이대로 가면 기독교가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개교회주의여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제 기구는 없다. 개교회가 스스로 판단해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교단의 헌법이나 장정에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면 공교회적으로는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에 감리교 총회에서 통과된 세습금지법이다. 이것도 완벽한 것은 못 된다. 왜냐하면 세습에 사욕(私慾)을 가진 목사는 교단을 탈퇴해서라도 그 자식에게 교회를 물러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 자신이 올바른 교회론과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교회 세습에는 교회론과 가치관의 심각한 왜곡이 있다. 목회자의 교회론과 사회윤리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
5. 시대적 근거
개신교계에서는 1997년 ‘대형 교회 세습 1호’로 불려온 서울 충현교회 김창인(95)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대물림하면서, 강남 K감리교회 등을 비롯한 다른 교회 세습의 ‘물꼬’를 텄다. 지금까지 한국 감리교회에서는 강북 K감리교회, 강남 E감리교회, M감리교회, 인천 S감리교회 등 세습이 유행해 왔고, 장로교회에는 변칙 세습과 목회자 퇴직금 경쟁이 유행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경우 서울을 비롯한 인천, 경기 등에 수천 명 모이는 교회는 다수가 세습되어 왔다. 3천 명에서 6천 명 정도의 교인이 모이는 감리교회들은 교회 세습을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2012년 6월 14일 김창인 목사가 “한국 교회와 하나님 앞에 저의 크나큰 잘못을 회개합니다. 충현교회 성도 가슴에 씻기 어려운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아들을 무리하게 담임목사로 세운 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조선일보 6월 14일자 A2면 보도〉라고 고백한 것 등을 계기로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져 왔다. 교회 세습은 한국 개신교가 사회적 신뢰를 잃은 핵심 원인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를 받게 되었고,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어 버렸다. 기독교가 기독교적 가치를 전하고 실천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고난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가 반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복음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그런 부끄러운 교회가 되었다.
세습 결정을 하는 이들 교회들은 하나같이 교인들이 원하고 장로들을 비롯한 교회 중직들이 원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당수 교회가 이미 부자간 대물림으로 인해 갈등과 시험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장로교 대교단 소속 교회들은 한 교회에서 30-40년씩 목회를 하고 은퇴하는 목사들이 퇴직위로금을 수십 억씩 경쟁적으로 챙겨간다고 한다(대형교회 세습관행 끊어야 한국교회 미래있다. 교회연합신문, 2012.9.23. 3면). 이런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 교회에도 없는 일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맞는 정신, 곧 시대정신이 있다. 기독교가 이를 반영하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실질적으로 부모의 교회를 이어받아 목회를 잘하는 목사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요구가 그렇고, 교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이번에 세습금지법이 마련된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사회의 요구”다. 즉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교회 세습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리교 총회에서 세습금지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되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감리교, 개신교 역사를 한 次元 높이 끌어올렸다”고 보도했다(조선일보, 2012.9.26.일자). 한겨레신문도 이를 보도하면서 이것은 “개신교 교단의 쇄신운동”이라고 평가했다(감리교 ‘교회세습’ 안한다. 한겨레|입력2012.09.25 21:30|수정2012.09.25 23:50). “감리교단이 가족간 교회 대물림을 끊기로 스스로 발의(發議)해 결정한 것은 한국 교회의 자기 정화(淨化) 능력을 보여준 역사적인 사건이다. 감리교단이 참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개신교 신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담당할 긍정적 역할에 아직도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조선일보, 2012.9.26.일자). 세습금지법 통과와 함께 이제 한국교회는 사회를 향하여 소망의 빛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교단의 ‘교회 대물림 금지’에 대해 “교회의 자기 개혁과 쇄신을 바라는 사회의 요구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라고 한 감신대 교수들의 지지 성명은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뜻있는 모든 사람의 정직한 소감이기도 하다
맺음말: 세습 금지는 시대의 요청이며 시민의 정서, 모든 개신교단이 이에 동참해야
감리교 세습금지법의 전격적인 통과는 한국 개신교사에 획을 긋는 신선한 쾌거다. 감리교단은 규모에서 소속 교회 6200개, 신도 수 160만 명으로 한국 개신교 3대 교단 중 하나다. 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교단에 이어 셋째로 큰 교단으로 꼽힌다. 이런 감리교의 교회 세습 반대 추진은 개신교계 전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감리교의 세습금지법 통과는 한국교회가 자정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쁜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감리교는 지난 4년간 교단의 수장인 ‘감독회장’ 자리 등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이어지면서 교단 행정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였다. 지난 6월에야 서울 연회 감독을 지낸 김기택 감독이 법원 명령에 따라 임시 감독회장 업무를 시작했고, 교단 총회도 열리면서 행정 기능이 되살아났다. 그동안 흙탕물을 뒤집어 썼으나 이번을 계기로 감리교가 다시 살아났고, 한국 개신교의 자정(自淨)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장로교를 비롯한 타교단이 응답할 차례다. 한국교회는 여태까지 개교회주의로 나가면서 사회적 이목을 피하고 다녔다. 그리하여 교회는 사회로부터 도덕적 윤리적 지탄을 받았다. 필자가 사이비 이단을 사회윤리적으로 비판하면 안티기독교는 한국교회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그 비판을 우리에게 돌리곤 하였다. 교회법은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한국교회가 지금 시대정신을 거역하면 교회로서의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사회가 바라는 건전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공교회성을 회복해야 한다. 소위 장자교단이라는 장로교 통합, 합동, 기장, 고신 교단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