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기독일보에서 매주 몇몇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최근 설교문을 요약 정리해서 소개하는 <주일강단>을 시작합니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눈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전달되는 말씀이 갈급한 심령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에게 커다란 은혜와 소망을 전해줄 것을 믿습니다

해밀톤 연합감리교회 담임 홍연표 목사
본문: 빌4:13 “능력의 원천”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보면서 믿음의 생활을 그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군대를 지휘한 경험이나 사관학교에서 훈련 받은 적이 없습니다. 행정학이나 경영학을 배운 일도 없습니다. 그의 경험은 양치는 것 뿐이었습니다. 양치는 법은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어디가면 위험한지, 어디가면 물이 있고 초장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양을 잡아 먹으려고 맹수가 달려 들면 퇴치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자와 맞붙어 싸운 경험도 있었습니다. 삼상17장에 보면 골리앗 장군이 나와서 호령하는데 이스라엘 사람 중에 나가서 싸울 사람이 없을 때 다윗이 자진해서 자신이 나가겠다고 합니다. 신하들이 사울왕 앞으로 다윗을 데리고 갔습니다. 작은 소년이라 실망을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 앞에서 “주의 종의 아버지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자와 곰과 싸워서 이겼다고 합니다. 이 같은 양을 치면서 맹수와 싸워야 하는 그런 용감성, 담대함을 익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그가 왕이 되었을 때 통치 자에게 좋은 자질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나무껍질로 피리를 만들고, 비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음악적 자질을 키워나갔습니다. 이것이 사울에게 선택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계속되는 양 치는 책임과 가중되는 맹수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앙심도 그 속에서 성장했던 것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말할 때 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이 말은 내 힘으로 내가 용감해서 사자와 곰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나를 건져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양을 치는 가운데 맹수와 싸우는 용맹함, 음악적 소질도 키워 나가면서 무엇보다 그는 신앙심이 점점 커갔다는 것입니다. 위험할수록 어려울수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믿음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던 사람이었던가 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 다윗은 그런 사자와 곰과 맞붙어 싸웠습니다. 이 같은 곰과 생명을 내걸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어떻게 이 곰과 붙어 싸울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삼하22장에서 ‘하나님은 나의 요새’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나의 요새가 되고 나를 온전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은혜로우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를 보호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찾아 오는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의지하고 요청하시는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이 같은 다윗의 믿음이 하루 아침에 형성 된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매일 부딪히는 사건 속에서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요청하고 그 분을 신뢰하고 그 분과 기도하며 대화 하는 가운데 키워낸 믿음입니다. 믿음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때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믿음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바쁜 삶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바쁘기 때문에 더욱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단둘의 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백하고 내어 놓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 믿음은 성장합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바쁘지만 기도를 쉬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서 기도가 내 능력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빌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경 지식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율법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바울이 성경지식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성경 지식은 많이 있는데도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은 그의 지식이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지식이 정확해야 합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생활은 생활대로 하는 것은 성경지식이 아직 바른 지식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을 만납니다. 예수를 만나는 체험으로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깨닫는 것이 내 지식, 내 경험의 판단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가 내 능력이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지식이나 경험이 여러분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지키셔야 합니다. 이처럼 말씀에 대한 민감성 영적인 민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과 기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외에는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체험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다윗도 홀로 지내면서 두려움과 무서움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체험 속에서 그의 믿음이 성장했던 것처럼,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 속에서 변화 되었던 것 처럼 그 분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능력과 지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노력이 끊임없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생한 관계 맺기이며 그 분과 함께 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담대함을 지니고 장차 우리에게 주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옥에 갇혀 있는 가운데 쓴 것입니다. 옥에 갇힌 죄수의 입장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고 긍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능력이 부족해도 하나님은 능력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함께 하시면 내가 옥에 있든 옥 밖에 있든 상관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전체 사상 중에 흐르는 것은 기쁨입니다. 옥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 어떻게 기쁨을 지닐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기쁨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어려운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내 능력의 원천으로 삼고 하나님과 영적인 깊은 경험 속에 살기만 하면 우리는 그 분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샘물장로교회 담임 함종협 목사
본문 : 창6:13~16 “구원의 통로”


노아의 시대는 죄악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죄악이 차고 넘쳤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의 대안은 세상을 보시면서 탄식하시고 아파하시면서 그 하나님 마음에 또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방주였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보혈로 세워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하신 것이 ‘방주를 세워라’였습니다. 방주는 히브리어로 상자로 번역합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상자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의 하나의 모형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의 모형이었습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구원을 하는 하나님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방주의 모형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살펴 보기 원합니다.

방주에는 오직 문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가는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교회의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죄사함으로 가는 오직 유일한 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0장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 받는 길을 허락하심을 믿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6주년으로 나아갈 때 이 외에 다른 것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 역청을 칠하라 라고 했습니다. 물이 나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역청입니다. 아무리 근사하게 지어도 물이 들어오면 가라앉게 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힘있게 지어도 틈이 있으면 가라앉게 됩니다. 역청을 칠하라 방주를 예수의 보혈로 덮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덮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근심이 여러분의 마음을 틈타고 들어오고 수 많은 세상의 유혹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장악해 버리는 것이 바로 틈입니다. 그 틈을 타고 여러분의 영혼을 잠식하게 하려는 것이 여러분 인생의 배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역청으로 그 안팍을 칠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입니까?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그 피를 보고 내가 넘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를 보고 저주가 넘어가고 그 피를 보고 심판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으로 기도로 여러분의 영혼을 날마다 덮지 않으면 세상이 여러분을 삼켜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나 사이에 틈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교회와 여러분이 틈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그 틈은 작은 오해의 틈, 조그마한 인생의 유혹의 틈, 정욕의 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야 합니다. 은혜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 은혜로 감사의 삶으로 내 인생을 덮으면 어떤 시험도 능히 이기는 능력이 그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능력은 수 많은 환란이 있어도 든든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에 우리가 넘어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그 방주 안에는 창이 있었습니다. 그 창을 통해서 땅에 흘러가는 물을 보고 땅의 심판을 보고 땅의 멸망을 보지 말고 저 하늘 높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라는 것입니다. 노아와 가족들이 그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소망 가운데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항로 중에서 결코 짧은 인생이 아닙니다. 믿음의 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사람은 새 희망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 우리를 지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사람이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이 방주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방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방주 안에 부정한 짐승도 같이 탔습니다. 교회 안에는 호랑이 같은 악인도 있고, 곰같이 미련한 사람, 하이에나 같이 음흉한 사람, 뱀같이 간교한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 정결한 사람 함께 머무는 곳이 교회입니다. 소망은 정결한 짐승이 더 많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따라서 하나님을 소망하고 오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든지 약한 사람, 부요한 사람, 가나한 사람 다 섞여서 사는 곳이 교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은 교회를 병원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람, 여러가지 아픔을 가진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다 불완전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약한 사람, 부족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 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고쳐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만 하면 좋은 교회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 붙들고 나아가면 좋은 교회가 되는 줄 믿습니다.

다섯번째입니다. 방주에는 넉넉한 양식과 깨끗한 물이 있었습니다. 진짜 먹을 수 있는 양식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돈, 명예, 권세 자랑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중요한 것은 다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목마릅니다. 왜 자살하는 것입니까? 가져봐도 더 목이 마른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방주 밖의 양식은 성도들의 양식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말씀들을 때 우리 영혼이 소성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해 보여도 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그릇으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서 생명의 은혜를 추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수 많은 환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방주 밖에 있으면 죽었습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아무리 부족해도 방주 안에 있으면 살았습니다. 아무리 힘 있는 짐승도 방주 밖의 있는 것은 죽었습니다. 하나님 교회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주신 은혜 가운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앞으로 남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사랑하자,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자, 하나님의 교회에 모이기 힘쓰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바라보며 나아가자’고 결단하기 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 보여도 그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연약한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방주 같은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죄악이 가득한 그 속에서도 세상의 물에 떠 있는 방주 같은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통해서 세상의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주빌리장로교회 담임 신현국 목사
본문 : 막13:1-6 “너희는 이 시대를 직시하라!”


사람은 영적 존재입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활동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맛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 생활이 후회 없는 믿음의 생활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교회와 이 시대의 관계를 본문을 통해서 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교회와 신앙 생활을 바르세 세워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이 건물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라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감탄했던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왕 때 지어진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불에 타고 훼파 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감탄했던 성전은 솔로몬 왕 때 지었던 성전을 그 당시 헤롯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달래고자 자신의 치적을 뽑내 보고자 40년에 걸쳐서 재건한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 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거대한 성전이 완전히 파괴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자들의 마음이 굉장히 상심했을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안드레가 종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무슨 의미입니까? 라고 합니다. 그 때 대답해 주신 말씀이 5절부터 9절입니다. 세상 종말의 신호탄이 계속해서 더욱 처처에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오늘날의 증상과 같습니다. ‘점점 더 종말의 증상이 무르익어 갈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성전 파괴를 예언하시면서 세상 종말을 함께 연관 시켜서 말씀 하고 계십니다. 성전 파괴는 역사의 종말과 마치 톱니 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것입니다. 성전 파괴는 종말의 직접적인 사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전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이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 시간과 연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이 사건,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AD 70년경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배 의식이나 레위기의 제사 방법들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과 상관없는 사건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통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멸망 당할 것인가를 샘플로 보여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날 되어지는 모든 일들과 우리 신앙 생활의 모체가 되는 교회가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고 어떻게 교회가 자기 할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가? 주목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 되어지는 일들이 주님이 오시는 시간과 교회가 어떻게 무너지는가? 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난리와 기근, 지진이 더해 가고 자연재해가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예수만이 인간의 구원자라는 이 사실 조차 중요하지 않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무뎌졌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불타는 사명감이 상실하여 가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교회 파괴. 단순히 교회가 망가져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말, 주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 교회를 봐야 합니다. 오늘날 심각한 것은 교회는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이 웅장하고 최고급 재료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감탄하였던 것을 생각하며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을 보십시오 교회가 빚이 많아서 넘어가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교회는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 때문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너지는 교회는 무용지물입니다. 성도들이 빛을 잃어버리면 밟고 지나가는 것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그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 왜 존재 하는가? 우리는 고민해야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는 나의 몸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승천하시고 주님께서 세워주신 영적인 것을 가르치고 영적인 것을 격려하며 나아가는 곳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 계시며 가르치시고 행하셨던 것, 그 일 속에는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전하라고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주님은 내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조건이든 하나님은 그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 하신다는 은혜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은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 민족에게 전하고 증거하라고 세우신 곳이 교회이고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정보를 전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잘 먹고 사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내 속에 있는 자아를 만족시켜 주려고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오직 주께서 하신 그 일,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선포하기 위해서 세우신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주께서 낮아지신 십자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구원하시겠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희생을 치르시고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나의 정과 육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비록 좁고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어서 외롭고 힘들어도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좇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나의 삶 속에서 하나 하나 그래도 한번 적용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몸에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어느 덧 하나 하나 힘쓰면서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사람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종말 중에서 마지막 시대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시대에 맞게 개혁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 말은 세상 문화와 교회의 본질을 섞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대가 이럴수록 교회의 깊은 말씀의 생수를 끌어 올려서 교회의 본질을 더욱 더 강화해 나아가는 것이 바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더욱더 말씀 안에 굳건히 세워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개혁입니다. 세상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개혁이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을 보면 가슴 아픈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건국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온 청교도들을 통해서 세워진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마음껏 크리스천으로 믿고 섬기고 살겠다는 그 믿음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미국의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를 해야 합니다. 종말의 현상이 무르익는 이 시대에 교회의 파괴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시대를 바르게 보고 그리고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이지만 매일 같이 새로워져 가고 말씀 안에서 더욱 굳건히 뿌리를 내려서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생수로 진리를 지키는 교회가 되고 그 안에서 신앙 생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주신 깨달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