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를 지내다 보면 나 아닌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 뜻대로, 주님의 형상 닮는 생활을 하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다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직장 상사, 같이 일하는 직원, 가족, 이웃을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화났나? 환한 얼굴을 보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왜 저렇게 짜증을 낼까?”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지냅니다. 그 많은 생각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주님 따로, 생활 따로, 말씀 따로, 직장 따로, 기도 따로, 가정 따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생활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좋은 신앙생활 습관이 안된 것이지요.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연약한 우리를 사랑의 날개 아래 돌보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주님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니라 “주님 따라, 말씀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생각하고 늘 깨어 있으라고 여러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33절 말씀이 아주 대표적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6절도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니라.” 잘못되지 않으려면 생각이나 마음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들거나 혼몽한 상태에 빠지면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주님을 생각한다는 말은 깨어 있다는 말이며, 깨어 있다는 말은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은 믿음으로 삽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깨어 있다는 말은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생각한다는 말일 뿐만 아니라,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금 처해진 자리에서 충성되게 일한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장차 오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가정, 일터, 교회 등에서 섬기고 일한다면 얼마나 멋진 인생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멋진 것처럼 당신의 인생이 멋진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