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한 심령을 탁 트이게 해주는 시원한 바람: 배려와 신뢰의 마음 –

비 좀 왔으면 좋겠다. 땅을 흡족히 적시는 비라도 한차례 왔으면 좋겠다. 타들어가는 농작물과 시들어 말라가는 잔디를 단번에 소생시키며 다시 푸르르게 할 만큼 비가 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초목뿐만 아니라 답답하고 타들어가는 각 심령에도 종종 시원한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 되고 있다. 대낮에 땡볕에 세워둔 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얼마나 후덥지근하고 숨 막히며, 땀은 비오듯이 쏟아지는지 말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찜통같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전화를 걸어 이곳에 10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였더니,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무슨 100도가 넘느냐”고 말하면서 “목사도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지만 과장해서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서, 내가 한 말을 놓고 한바탕 입방아 찧는 일이 있었는가 보다. 한국에서는 물이 끓는 섭씨 100도를 생각하면, [날씨가 무척 더워 100도가 넘는다]고 하면 아무리 목사의 말이지만 그들의 잣대로 보면 믿을 수 없는 말이다.

똑같은 진실된 표현을 두고 오해는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고, 서로 갈등과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서울 어느 교회에서 [부흥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부모의 마음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기도에 힘쓰라]고 말씀을 전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간증하면서 [나의 첫째 아이가 열이 100도를 넘어 끙끙 앓을 때, 물수건으로 아이의 머리를 적시며 밤을 지새우며 기도한 적이 있었다]는 표현에, 그곳 교회의 성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었다. 벌써 미국물을 어느 정도 먹은 내가 그곳의 표준 척도인 섭씨로 환산해서 말하지 않고 [열이 100도가 넘었다]고 했으니, 그 당시 그곳 사람들이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과장하여도 너무 많이 과장했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었겠는가?

오해는 ‘삶의 환경이 다르고, 적용하는 기준과 잣대가 다르면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마든지 곡해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표현할 때도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가 참으로 필요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방을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접근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이것이 쾌쾌하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이 막혀있는 서로의 마음을 트이게 하는 시원한 바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아무튼 요즈음 날씨가 너무 더운데, 초저녁에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이를 데 없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추운 한 겨울 몸에 천불이 나지 않는 한, “아아, 바람이 참 서늘도 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찌는 듯이 무덥고 숨막히는 더위가 대낮에 있었기에 여름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무척 상쾌하고 서늘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아울러 땡볕과 같은 고난과 눈물겨운 시련의 과정을 인내로써 참고 견디어 냈기에, 그 결과 맺어지는 열매가 더욱 귀하게 보이고 그윽하고 깊은 단맛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오늘도 낮에 찌는 듯한 더위가 있었기에, 저녁에 마주치는 바람이 참으로 상쾌하고 서늘하게 느껴져서 좋다.

김병은 목사(한사랑장로교회/하워드한인교회 담임) 410-852-0999, bekim111@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