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와 기쁨을 빼앗겼을 때 어떤 찬송이 떠오르십니까? 저는 평화의 찬양을 부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세상에서는 참된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늘에서 내려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배고픈 돼지가 우리를 뒤적거리는데 홍시 하나가 옆에 툭 떨어져있는 겁니다. 너무 맛있게 먹다보니 또 먹고 싶어 돼지우리를 전부 뒤집어 놨습니다. 주인이 그걸 보더니 '이런 돼지xx' 몽둥이로 죽도록 팼습니다. 돼지는 죽겠다며 벌러덩 드러누워 끙끙 앓고 있는데 그때 돼지 얼굴에 홍시 하나가 철퍼덕 떨어진겁니다. 그러자 돼지는 먹으면서 중얼거렸답니다. '아, 홍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군'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야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늘로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참된 평화를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얻지못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는 하늘로 부터 내려주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세상에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까? 이 땅위의 삶이 평안이 없기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참된 기쁨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찾는 기쁨이야 말로 진정한 평안이란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인사할 때 ‘살롬’이라고 인사하는 것은 ‘평안’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기에 마음에 근심도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실 때 방주 옆으로는 창문을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오직 위에만 창문을 내게 하셨는데, 만일 옆으로 난 창문을 통해서 물이 온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보면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홍수가 나고 비가 그쳐 물이 빠질 때까지 무서운 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늘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무서운 일이 보이지 않았기에 배안에서 평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만일 바라보면서 살았다면 얼마나 많은 날들을 근심과 걱정 불안 가운데 살았겠습니까? 이처럼 하늘에서 주는 평안만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란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느 권사님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성인대학에서 배웠다고, 그걸 부르며... 웃음이 나서 죽겠더라는 겁니다. 노래를 부르면 부를 수록 기쁨이 있고, 자꾸 부르고 싶답니다. 살맛이 난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뭔가 봤더니 거기에는 노래 가사가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제목 : 우리들의 인생은

(1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행복감에 살아갑니다.
칠십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2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기쁨 안에 살아갑니다.
팔십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3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구십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재촉하지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4절)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백세에 우리들을 데리러 오면, 서서히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모릅니다. 불안해 하지말고, 두려워하지말고, 겁내지말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참된 평안으로 살게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