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평생의 소원은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늘 내 속에 있는 나의 “작음”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 서면, 그것도 큰 사람 앞에 서면, 상대적으로 위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면 이상하게도 우리가 크게 됩니다. 그의 광대하신 사랑과 위대하신 능력으로 우리가 자유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든 죄와 악을 이길만큼 큰 사람이 됩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 갔지만 늘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만큼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의 명령입니까? 애굽 황제의 경호실장을 남편으로 둔 안방마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하며 그녀의 유혹과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시련도 이길 수 있는 큰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46:1-3)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에 어떤 환란과 고통이 다가올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 사탄은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 못하실 죄가 없습니다. 넘어지게 하는 힘보다 더 큰 힘이 있을 때에 일어서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항상 이런 힘을 얻어 더 크게 됩니다.
큰 사람이 되고 싶으시거든 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추운 겨울 따뜻한 햇볕 아래 서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 아래 서 계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저절로 큰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람됨의 크기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한 나라의 정승이 다른 대감들뿐만 아니라 자기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과도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만일 한 나라의 임금이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의 임금과 흉허물 없는 관계를 맺으며 서로 안심하고 왕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넓은 인간관계를 가졌던 큰 사람으로 저는 다윗을 들고 싶습니다. 그는 자기와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까지도 자기 휘하에 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울 왕의 군대 장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을 광야로 쫓아낸 자기 아들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요압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전체를 품에 안으려고 했던 다윗 왕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모든 사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한 번은 자신을 무시하고 음식을 보내지 않았다는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원수를 갚으려는 다윗을 아비가일이라는 한 여인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깊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좁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더 커지려고 노력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부터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을 나누는 훈련을 하면서 자라납니다. 싫은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큰 사람이 되려면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더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이런 용기를 구해 봅시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 갔지만 늘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만큼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의 명령입니까? 애굽 황제의 경호실장을 남편으로 둔 안방마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하며 그녀의 유혹과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시련도 이길 수 있는 큰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46:1-3)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을 때에 어떤 환란과 고통이 다가올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보다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를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 사탄은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용서 못하실 죄가 없습니다. 넘어지게 하는 힘보다 더 큰 힘이 있을 때에 일어서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항상 이런 힘을 얻어 더 크게 됩니다.
큰 사람이 되고 싶으시거든 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추운 겨울 따뜻한 햇볕 아래 서 있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임재하심 아래 서 계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저절로 큰 사람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람됨의 크기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한 나라의 정승이 다른 대감들뿐만 아니라 자기 집에서 부리는 하인들과도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만일 한 나라의 임금이 자신과 경쟁관계에 있는 이웃 나라의 임금과 흉허물 없는 관계를 맺으며 서로 안심하고 왕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넓은 인간관계를 가졌던 큰 사람으로 저는 다윗을 들고 싶습니다. 그는 자기와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까지도 자기 휘하에 품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울 왕의 군대 장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을 광야로 쫓아낸 자기 아들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요압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전체를 품에 안으려고 했던 다윗 왕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윗이 모든 사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한 번은 자신을 무시하고 음식을 보내지 않았다는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원수를 갚으려는 다윗을 아비가일이라는 한 여인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깊은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좁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더 커지려고 노력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부터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을 나누는 훈련을 하면서 자라납니다. 싫은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큰 사람이 되려면 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더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이런 용기를 구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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