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회장 유재도 목사)가 주말 2012 호산나전도대회에 이어 18일부터 뉴저지벧엘교회(담임 정성만 목사)에서 3일간 선교컨퍼런스를 개최, 이민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깨우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10시까지 3일간 진행된다.
뉴저지교협이 호산나전도대회에 이어 선교컨퍼런스를 연이어 개최한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유재도 회장은 “전도대회는 성령의 뜨거움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받은 구원을 다시 확신하기 위한 것이라면 선교 컨퍼런스는 차분히 구체적인 전도와 선교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뉴저지 선교컨퍼런스는 랄프 윈터의 미션 퍼스펙티브를 중심으로 교육하면서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한편, 현장에서 선교사로 직접 헌신하고 있는 이들의 간증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모두 가르치고 있다.
이번 선교컨퍼런스는 리빙스톤교회 이성일 목사가 기획을 맡아 준비했다. 이성일 목사는 평소에도 미션 퍼스펙티브를 선교사들과 신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성일 목사는 “이번 2012년 선교컨퍼런스를 통해 각 교회들과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고 내적 사람의 변화를 경험해 주님의 증인으로 다듬어지고 성령의 증인되기를 소원한다”고 밝혔다.
18일 저녁에 진행된 강의에서는 중국 하남성 정주에서 13년동안 선교하다 현재 말레이시아침례교신학교(MBTS)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고인섭 선교사(한국침례교 해외선교부)의 간증이 있었다. 고인섭 선교사는 간증을 통해 중국선교 과정에 있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현지 말레이시아 선교에 몸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다음은 고인섭 선교사 간증 주요 내용.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열왕기하 6장 16절~17절)
어느 날 선교사님을 통해 들은 설교가 중국선교에 대한 꿈을 품게 했다. 설교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 전까지 선교사라는 것은 굉장히 고귀한 사람들이고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제 마음에 중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가시지 않았다. 중국선교의 비전을 갖고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다.
제가 자라던 시기만 해도 맏아들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선교에 대한 소명에 따라 중국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저의 원대로 하기를 바라셨다. 그날 어머니도 울었고 저도 울었다.
중국으로 처음 갔을 때 한국과 중국이 극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됐다. 1992년 8월24일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저는 이 환경이 저를 위해 예비하시는 것 같았다.
그 후 저와 아내가 정식으로 중국으로 가게 됐다. 거기서 문화대학이라는 곳에서 언어를 공부했다. 3년 반을 아내와함게 언어훈련을 했다. 중국어가 어휘량이 보통이 아니고 평생 중국사람이 공부해도 다 배울 수 없다고 중국사람 스스로가 말한다. 아내와 저는 늘 스탠드에 앉아서 큰 소리로 중국어로 읽었다. 저는 아내를 동역자로 늘 생각했다.
보통 일반 에이전시에서 선교단체에서 요구하는 것은 언어훈련 2년이다. 그런데 저는 3년반을 공부했다. 왜냐하면 결국 언어가 선교사역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는 하남성 정주라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 하남성을 중국에서 굉장히 가난한 동네다. 여러분이 중국지도를 보면 연해안 지역으로 발달이 되고 그 위쪽으로는 거의 사막지대다. 상해와 청도 등 연해안이 발달됐다. 정주는 곳은 황화강과 양쯔강 중간에 있는 곳이다. 중원 땅이라고 하면 이 하남을 가르킨다. 저기가 곡창지대인데 시대가 변하고 나서 연안지대는 부흥하는데 내륙지방은 굉장히 가난했다.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 여기서 황하신학교를 세웠다. 인원수도 4명에서 10명, 10명에서 20명으로 늘게 됐다. 그리고 지도자 사역을 시작했다. 여기 골든게이트와 연계해서 한인교회에서 인정된 분들이 와서 강의하고 인정이 되면 골든게이트 학위를 줬다. 가정교회 사람이지만 몇 십명씩 관리를 하는 핵심자들만 모아서 훈련했다. 그리고 지방에 내륙지방으로 가서 핵심지도자 훈련에 참가하지 어려움 사람들을 모아서 훈련을 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 처럼 안전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안전한 장소를 찾는데 때로는 호수를 건너가서 섬 안에서 하기도 하고 농촌에서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의 촌장이나 서기 같은 핵심인물이 예수를 믿거나 부인이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안된다. 중국은 여성파워가 보통 센 것이 아니다. 모택동이 어느 날 여러 사람의 모아두고 이야기를 한 것이 ‘하늘의 반은 여자의 것이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분위기가 변해서 중국은 지금 여자들의 파워가 보통이 아니다. 남자가 밥을 하는 곳들이 많다. 그런 지역에 가서 하루에 2끼를 먹으면서 200명의 지도자를 모아두고 훈련을 했다.
마을이 하나 있으면 주변은 다 논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 큰 도로가 있다. 거리에서 논을 거쳐 오면 20분정도 걸리는 곳에서 교육을 한다. 그래야 공안이 오는 것을 보고 피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안들이 머리가 좋은 것이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어디서 누가 오는지 모르니 사람을 심고 스파이를 심는다. 그런데 또 가정교회 사람도 머리가 좋아서 논 일을 하는 것처럼 꾸며서 작전을 펴기도 한다. 공안이 왔다고 하면 뒷문으로 일시에 빠져 나간다.
이 마을이 굉장히 추운데 한번은 교육을 하려고 모였는데 공안이 올 것을 대비해서 이쪽 저쪽 논으로 다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웠다. 다들 혹독한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 때 분노가 일어났다. 이 사람들이 과연 무슨 잘 못이 있기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신기하게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이 깊이 박혔다. 이것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이 고생이 쉽지 않지만 이 것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오면 평안이 임하고 추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찬양이 나온다.
우리의 선교 전략은 어느 한 곳을 선정해서 그 지역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2박3일씩 가서 복음만 전하는 방식이었다.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것이다. 정주 지역이 하남성 가운데서 교통이 발달된 곳이다. 모든 기차와 차가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형제 자매들이 우리 집을 늘 거쳐가기도 했다. 어느 지역에서 한 자매가 왔었는데 저희 집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저희는 가정교회의 열정은 알지만 신학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점검하기 위해서 차를 마시면서 구원관이 어떤지 예수님을 정확히 영접했는지 물어본다. 자매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자매가 잘 이야기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제가 갖고 있는 제자훈련 10과로 된 것을 집사람이 번역을 했는데 같이 나누겠느냐고 했다. 좋다고 해서 같이 공부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들어가서 1과 2과 들어가는데 자매가 왔다갔다하면서 하기 싫다고 한다. 경험이 많으니 자매가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같이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했다. 둘째 날도 기도했는데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귀신들린 사람 쫓아내는 것을 여러분도 봤을텐데 그것이 걸려들었다. 세 번째날 기도하는데 이웃에서 기도소리 들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밤새도록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귀신을 쫓았다. 귀신은 나가면서 시꺼먼 가래를 뱉게 하면서 나간다. 저는 침례교 선교사다. 침례교는 찬양할 때 박수치면 혼나고 그랬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안 그럴 수 없다. 전쟁터에서 총이 날아오는데 젊잖게 있을 수 없다. 귀신을 쫓았더니 이 자매가 무릎을 꿇고 천국천사가 찬양하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그 때 크게 깨달은 것이 한 사람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는 침례교 선교사다.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런데 그 자매를 통해서 저희가 엎드려졌다. 복음의 의미가,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됐다. 그것이 바로 저희 부부를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제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을 뒤엎으리라는 각오로 했고 정말 잘 되고 있었다. 중국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몇몇 사역자들은 저와 같이 CPM사역을 계속했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9월20일 오전 7시경이었는데 제 딸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중국은 자전거 도로가 넓게 돼 있다. 그런데 이 산타나라는 오래된 차가 자전거를 지나 앞에 딱 서면서 6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너무 빨라서 뭔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를 계속해서 주시해 봤던 것이다. 모두 가죽자켓을 입었는데 연행하는데 선수였다. 정주 외곽에 큰 집이었는데 겉에서는 알 수 없고 안으로 들어가니 두꺼운 최창살과 조그만방이 여러개 있었다. 이 한 팀 4명이 안정청에서 나왔다. 중국 경찰을 공안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안정청에서 나와서 더 직급이 높은 사람이었다. 공안처럼 시를 감시하는게 아니라 성 단위를 감시한다. 원래 외국인을 잡았을 때 24시간 이내에 해당 국가에 알려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인을 하라고 강요했다. 안한다고 했더니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위협했다.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 4명과 같이 한 방에서 생활을 하는데 꼼짝할 수 없게 했다. 정말 피를 말리게 했다. 그런데 3일째 저녁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이 무엇이냐면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던 말씀이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주셨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에는 이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읽은 것이 있어서 그 내용을 기억하게 하셨다.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려는데 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고 있어서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엘리사의 능력 때문이었다.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완전히 포위 시켰다. 그 때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 때 느꼈다. 내가 비록 수많은 천군천사를 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 말씀이 마음에 때리니까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 뒤로 제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추궁했다. 왜 나를 데려왔는지 추궁했다. 성경을 가르쳤다고 잘못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는 말했다. 예수 이야기했다.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했다. 그리고 성경에 위로 부터의 권세를 공경하라고 돼 있다. 국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고 증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기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 성경이야기를 30분이나 했는데 그 사람들이 그대로 들었다. 그리고 그 중 팀장이 정말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는데 그만하라면서 동료들을 제지했다. 내가 당신을 치료하는 것이지 당신이 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고 귀를 막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그 때 느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저는 안에 있어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는데 제 아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쑤시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연락이 갔다. 그 연락을 그 사람들이 듣더니 우리를 통제할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나를 겁주려 했다. 그런데 밖에 제가 아는 목사님이 하남성 부서기를 알았다. 수소문하고 전화를 했다. 제가 잡혀 있는지 물었다. 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번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그 때 하남성에서 엘림교회 수석 장로님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장로님이 직접 엘림교회에 전화해서 제가 잡혀 갔다면서 저를 위해 기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모 교회에서도 소식을 듣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1부, 2부, 3부 예배에서 저를 위해 성도들이 기도하고 완전히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런 난리 중에 김하중 대사가 이 소식을 듣게 됐다. 그래서 김하중 대사가 제 이름과 자료를 팩스로 넣어달라고 해서 하남성 정부를 압박했다. 여차 여차한 사람을 빨리 풀어주라는 것이다. 그 때 하남성이 경상도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이제 가난한 동네가 부흥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차 있었던 때다. 그래서 김하중 대사가 이것 석방 안 시켜주면 일 안한다고 했다. 김하중 대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같으면 넘어가는 것인데 그리고 굉장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수 있는데 여기에 자기이 직책을 걸고 일하시는 것이다. 정말 장로님같은 분이었다. 그 때 느꼈던 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은 높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명해질 사람은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 사람은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안정청 사람들끼리 싸움이 났다. 무명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난리가 난 것을 두고 당황했던 것이다. 결국 집까지 저를 바래다줬다. 잡혀갈 때는 그 사람들이 저한테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놀리는 식으로 말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저는 그 사람들에게 잘 가라고 그동안 잘 지냈다고 인사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했던 사람들인데 그런 교만했던 사람들이 망신을 당했다.
2006년에 나와서 7~8개월 안에 돌아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여권을 새로 받아야 하는데 백방으로 노력했다. 새 여권을 받고 무척 기뻐했는데 비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보통 2~3일이면 나오는데 몇 주가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여행사에서 하는 말이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면서 아무리해도 비자가 안 나온다고 했다. 대사관쪽에 연락을 했다. 알고 봤더니 여권 뒤에 빨간 도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빨간 도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사관쪽은 당신은 세계 어느 대사관을 가도 중국 못들어온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그 때 하나님이 막으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 때부터 성도들이 금식하면서 기도했다. 제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렇게 헌신했는데 왜 중국에 못오게 하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 때 말레이시아 선교를 보게 했다. 하나님이 더 넓은 곳의 선교지를 보게 하신 것이다. 새로운 화인이 세계다. 말레이시아는 선교역사로서는 길지만 무슬림에 더부살이를 해서 그런지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것을 보게 했고 그리고 세계 화인들 3천5백만의 잠재력을 보게 하셨다. 동남아에만 3천만 명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분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 동남아에 엄청나게 한류 물결이 일고 있어서 문화센터를 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리고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지리적으로 굉장히 요충지가 되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현지의 문화센터 설립과 목회자 재훈련 센터, 선교사 훈련센터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중국선교 과정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말레이시아 선교 과정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저는 중국 선교의 문은 비록 막혔지만 대신 더 큰 시각으로 화교 선교의 영역을 담당하게 하셨다.
뉴저지교협이 호산나전도대회에 이어 선교컨퍼런스를 연이어 개최한 것은 올해가 처음으로 유재도 회장은 “전도대회는 성령의 뜨거움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받은 구원을 다시 확신하기 위한 것이라면 선교 컨퍼런스는 차분히 구체적인 전도와 선교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뉴저지 선교컨퍼런스는 랄프 윈터의 미션 퍼스펙티브를 중심으로 교육하면서 선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한편, 현장에서 선교사로 직접 헌신하고 있는 이들의 간증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모두 가르치고 있다.
이번 선교컨퍼런스는 리빙스톤교회 이성일 목사가 기획을 맡아 준비했다. 이성일 목사는 평소에도 미션 퍼스펙티브를 선교사들과 신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성일 목사는 “이번 2012년 선교컨퍼런스를 통해 각 교회들과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인도하심을 받고 내적 사람의 변화를 경험해 주님의 증인으로 다듬어지고 성령의 증인되기를 소원한다”고 밝혔다.
18일 저녁에 진행된 강의에서는 중국 하남성 정주에서 13년동안 선교하다 현재 말레이시아침례교신학교(MBTS)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고인섭 선교사(한국침례교 해외선교부)의 간증이 있었다. 고인섭 선교사는 간증을 통해 중국선교 과정에 있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현지 말레이시아 선교에 몸담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전했다. 다음은 고인섭 선교사 간증 주요 내용.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열왕기하 6장 16절~17절)
어느 날 선교사님을 통해 들은 설교가 중국선교에 대한 꿈을 품게 했다. 설교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 전까지 선교사라는 것은 굉장히 고귀한 사람들이고 나와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제 마음에 중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가시지 않았다. 중국선교의 비전을 갖고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다.
제가 자라던 시기만 해도 맏아들은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선교에 대한 소명에 따라 중국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저의 원대로 하기를 바라셨다. 그날 어머니도 울었고 저도 울었다.
중국으로 처음 갔을 때 한국과 중국이 극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됐다. 1992년 8월24일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저는 이 환경이 저를 위해 예비하시는 것 같았다.
그 후 저와 아내가 정식으로 중국으로 가게 됐다. 거기서 문화대학이라는 곳에서 언어를 공부했다. 3년 반을 아내와함게 언어훈련을 했다. 중국어가 어휘량이 보통이 아니고 평생 중국사람이 공부해도 다 배울 수 없다고 중국사람 스스로가 말한다. 아내와 저는 늘 스탠드에 앉아서 큰 소리로 중국어로 읽었다. 저는 아내를 동역자로 늘 생각했다.
보통 일반 에이전시에서 선교단체에서 요구하는 것은 언어훈련 2년이다. 그런데 저는 3년반을 공부했다. 왜냐하면 결국 언어가 선교사역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는 하남성 정주라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 하남성을 중국에서 굉장히 가난한 동네다. 여러분이 중국지도를 보면 연해안 지역으로 발달이 되고 그 위쪽으로는 거의 사막지대다. 상해와 청도 등 연해안이 발달됐다. 정주는 곳은 황화강과 양쯔강 중간에 있는 곳이다. 중원 땅이라고 하면 이 하남을 가르킨다. 저기가 곡창지대인데 시대가 변하고 나서 연안지대는 부흥하는데 내륙지방은 굉장히 가난했다.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 여기서 황하신학교를 세웠다. 인원수도 4명에서 10명, 10명에서 20명으로 늘게 됐다. 그리고 지도자 사역을 시작했다. 여기 골든게이트와 연계해서 한인교회에서 인정된 분들이 와서 강의하고 인정이 되면 골든게이트 학위를 줬다. 가정교회 사람이지만 몇 십명씩 관리를 하는 핵심자들만 모아서 훈련했다. 그리고 지방에 내륙지방으로 가서 핵심지도자 훈련에 참가하지 어려움 사람들을 모아서 훈련을 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 처럼 안전문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안전한 장소를 찾는데 때로는 호수를 건너가서 섬 안에서 하기도 하고 농촌에서 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농촌의 촌장이나 서기 같은 핵심인물이 예수를 믿거나 부인이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안된다. 중국은 여성파워가 보통 센 것이 아니다. 모택동이 어느 날 여러 사람의 모아두고 이야기를 한 것이 ‘하늘의 반은 여자의 것이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분위기가 변해서 중국은 지금 여자들의 파워가 보통이 아니다. 남자가 밥을 하는 곳들이 많다. 그런 지역에 가서 하루에 2끼를 먹으면서 200명의 지도자를 모아두고 훈련을 했다.
마을이 하나 있으면 주변은 다 논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 큰 도로가 있다. 거리에서 논을 거쳐 오면 20분정도 걸리는 곳에서 교육을 한다. 그래야 공안이 오는 것을 보고 피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안들이 머리가 좋은 것이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어디서 누가 오는지 모르니 사람을 심고 스파이를 심는다. 그런데 또 가정교회 사람도 머리가 좋아서 논 일을 하는 것처럼 꾸며서 작전을 펴기도 한다. 공안이 왔다고 하면 뒷문으로 일시에 빠져 나간다.
이 마을이 굉장히 추운데 한번은 교육을 하려고 모였는데 공안이 올 것을 대비해서 이쪽 저쪽 논으로 다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웠다. 다들 혹독한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 때 분노가 일어났다. 이 사람들이 과연 무슨 잘 못이 있기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신기하게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이 깊이 박혔다. 이것이 마치 하나님의 음성 같았다. 이 고생이 쉽지 않지만 이 것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오면 평안이 임하고 추위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리고 찬양이 나온다.
우리의 선교 전략은 어느 한 곳을 선정해서 그 지역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2박3일씩 가서 복음만 전하는 방식이었다.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것이다. 정주 지역이 하남성 가운데서 교통이 발달된 곳이다. 모든 기차와 차가 지나가야 한다. 그래서 형제 자매들이 우리 집을 늘 거쳐가기도 했다. 어느 지역에서 한 자매가 왔었는데 저희 집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저희는 가정교회의 열정은 알지만 신학적인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점검하기 위해서 차를 마시면서 구원관이 어떤지 예수님을 정확히 영접했는지 물어본다. 자매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자매가 잘 이야기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제가 갖고 있는 제자훈련 10과로 된 것을 집사람이 번역을 했는데 같이 나누겠느냐고 했다. 좋다고 해서 같이 공부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들어가서 1과 2과 들어가는데 자매가 왔다갔다하면서 하기 싫다고 한다. 경험이 많으니 자매가 영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같이 기도하자고 하면서 기도했다. 둘째 날도 기도했는데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귀신들린 사람 쫓아내는 것을 여러분도 봤을텐데 그것이 걸려들었다. 세 번째날 기도하는데 이웃에서 기도소리 들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도 됐지만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밤새도록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귀신을 쫓았다. 귀신은 나가면서 시꺼먼 가래를 뱉게 하면서 나간다. 저는 침례교 선교사다. 침례교는 찬양할 때 박수치면 혼나고 그랬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안 그럴 수 없다. 전쟁터에서 총이 날아오는데 젊잖게 있을 수 없다. 귀신을 쫓았더니 이 자매가 무릎을 꿇고 천국천사가 찬양하는 것이 보인다고 했다. 그 때 크게 깨달은 것이 한 사람이 돌아왔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는 침례교 선교사다.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런데 그 자매를 통해서 저희가 엎드려졌다. 복음의 의미가,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깨닫게 됐다. 그것이 바로 저희 부부를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중 제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을 뒤엎으리라는 각오로 했고 정말 잘 되고 있었다. 중국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몇몇 사역자들은 저와 같이 CPM사역을 계속했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다. 9월20일 오전 7시경이었는데 제 딸 막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중국은 자전거 도로가 넓게 돼 있다. 그런데 이 산타나라는 오래된 차가 자전거를 지나 앞에 딱 서면서 6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너무 빨라서 뭔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를 계속해서 주시해 봤던 것이다. 모두 가죽자켓을 입었는데 연행하는데 선수였다. 정주 외곽에 큰 집이었는데 겉에서는 알 수 없고 안으로 들어가니 두꺼운 최창살과 조그만방이 여러개 있었다. 이 한 팀 4명이 안정청에서 나왔다. 중국 경찰을 공안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안정청에서 나와서 더 직급이 높은 사람이었다. 공안처럼 시를 감시하는게 아니라 성 단위를 감시한다. 원래 외국인을 잡았을 때 24시간 이내에 해당 국가에 알려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인을 하라고 강요했다. 안한다고 했더니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위협했다. 어쩔 수 없이 사인을 했다. 4명과 같이 한 방에서 생활을 하는데 꼼짝할 수 없게 했다. 정말 피를 말리게 했다. 그런데 3일째 저녁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이 무엇이냐면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던 말씀이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주셨다. 그런데 그 때 당시에는 이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다만 읽은 것이 있어서 그 내용을 기억하게 하셨다.
아람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려는데 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고 있어서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엘리사의 능력 때문이었다.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완전히 포위 시켰다. 그 때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 때 느꼈다. 내가 비록 수많은 천군천사를 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 말씀이 마음에 때리니까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 뒤로 제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추궁했다. 왜 나를 데려왔는지 추궁했다. 성경을 가르쳤다고 잘못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는 말했다. 예수 이야기했다.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했다. 그리고 성경에 위로 부터의 권세를 공경하라고 돼 있다. 국가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고 증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기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 성경이야기를 30분이나 했는데 그 사람들이 그대로 들었다. 그리고 그 중 팀장이 정말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는데 그만하라면서 동료들을 제지했다. 내가 당신을 치료하는 것이지 당신이 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고 귀를 막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그 때 느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저는 안에 있어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는데 제 아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쑤시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연락이 갔다. 그 연락을 그 사람들이 듣더니 우리를 통제할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나를 겁주려 했다. 그런데 밖에 제가 아는 목사님이 하남성 부서기를 알았다. 수소문하고 전화를 했다. 제가 잡혀 있는지 물었다. 그 사람들은 그 사실을 부정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번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그 때 하남성에서 엘림교회 수석 장로님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장로님이 직접 엘림교회에 전화해서 제가 잡혀 갔다면서 저를 위해 기도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모 교회에서도 소식을 듣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1부, 2부, 3부 예배에서 저를 위해 성도들이 기도하고 완전히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그런 난리 중에 김하중 대사가 이 소식을 듣게 됐다. 그래서 김하중 대사가 제 이름과 자료를 팩스로 넣어달라고 해서 하남성 정부를 압박했다. 여차 여차한 사람을 빨리 풀어주라는 것이다. 그 때 하남성이 경상도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이제 가난한 동네가 부흥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차 있었던 때다. 그래서 김하중 대사가 이것 석방 안 시켜주면 일 안한다고 했다. 김하중 대사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같으면 넘어가는 것인데 그리고 굉장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수 있는데 여기에 자기이 직책을 걸고 일하시는 것이다. 정말 장로님같은 분이었다. 그 때 느꼈던 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은 높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명해질 사람은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벌 사람은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안정청 사람들끼리 싸움이 났다. 무명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난리가 난 것을 두고 당황했던 것이다. 결국 집까지 저를 바래다줬다. 잡혀갈 때는 그 사람들이 저한테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놀리는 식으로 말했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저는 그 사람들에게 잘 가라고 그동안 잘 지냈다고 인사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 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했던 사람들인데 그런 교만했던 사람들이 망신을 당했다.
2006년에 나와서 7~8개월 안에 돌아가기 위해서 노력했다. 여권을 새로 받아야 하는데 백방으로 노력했다. 새 여권을 받고 무척 기뻐했는데 비자를 받으려고 했는데 보통 2~3일이면 나오는데 몇 주가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여행사에서 하는 말이 중국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면서 아무리해도 비자가 안 나온다고 했다. 대사관쪽에 연락을 했다. 알고 봤더니 여권 뒤에 빨간 도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빨간 도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사관쪽은 당신은 세계 어느 대사관을 가도 중국 못들어온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그 때 하나님이 막으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 때부터 성도들이 금식하면서 기도했다. 제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렇게 헌신했는데 왜 중국에 못오게 하시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 때 말레이시아 선교를 보게 했다. 하나님이 더 넓은 곳의 선교지를 보게 하신 것이다. 새로운 화인이 세계다. 말레이시아는 선교역사로서는 길지만 무슬림에 더부살이를 해서 그런지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것을 보게 했고 그리고 세계 화인들 3천5백만의 잠재력을 보게 하셨다. 동남아에만 3천만 명이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분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 동남아에 엄청나게 한류 물결이 일고 있어서 문화센터를 하는 것이 적합하다. 그리고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지리적으로 굉장히 요충지가 되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현지의 문화센터 설립과 목회자 재훈련 센터, 선교사 훈련센터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이다. 중국선교 과정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말레이시아 선교 과정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저는 중국 선교의 문은 비록 막혔지만 대신 더 큰 시각으로 화교 선교의 영역을 담당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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