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진리가 도전받는 포스트모던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다원주의, 혼합주의의 도전이 거세다. 이 같은 상황 가운데 뉴욕리폼드신학교 학장 유상열 목사는 배타주의, 다원주의, 포용주의 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유상열 목사는 다원주의와 혼합주의에 대한 이해에 앞서 먼저 배타주의에 대한 더욱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학적 배타주의와 사회적 배타주의는 구분돼야 하며 선교적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배타주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뉴욕리폼드신학교는 지난 5월27일 제4회 졸업식에서 목회학 석사 4명, 신학사 1명을 배출했다. 유상열 학장이 학기 내내 강조했던 것은 진정한 복음은 넓은 문이 아닌 좁은 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본질을 벗어나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을 시도하면서 복음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철저한 경계를 요청했다.

기독일보는 유상열 학장과의 인터뷰와 뉴욕리폼드신학교 종교신학 강의를 정리했다. 유상열 목사는 인터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한 방편이었고 모든 종교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진리라는 산으로 올라가는데 문이 많다는 다원주의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며 “기독교의 구원의 길은 산에 비유하지 않고 문에 비유한다”고 말했다. 즉 다른 길은 없다는 것이다.

▲유상열 학장은 배타주의, 다원주의, 포용주의 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요청하면서 기독교 진리는 산이 아닌 문임을 강조했다.
다원주의는 산에 비유되는데 산은 어떤 방향에서 가든지 올라가기만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진리의 길은 산으로 비유해서는 안 되고 문으로 비유해야 한다고 유상열 목사는 강조한다.

또 이와 관련, 유상열 목사는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이다. 가는 자가 항상 적은 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사람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것”이라며 “기독교는 내가 약하고 아무것도 못한다는 고백의 토대 위에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인본주의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것이 기본 틀이고 여기서 절대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유상열 목사는 전도에 있어서도 인간의 죄성을 이야기 하지 않고 풍요로움을 이야기하고 복음으로 인해 집안이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전도하는 것은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인간의 부패성을 지적하지 않는 번영신학과 같은 흐름은 변해버린 복음임을 강조했다. 유상열 목사는 “외형을 중요시 하는 시대에 들어와서 교회가 항상 세련된 것을 좋아하면 진리가 희석되고 여기에서 많은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유상열 목사가 뉴욕리폼드신학교에서 ‘기독교와 타종교-타 종교인에 대한 선교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주요 내용이다. 유상열 목사는 이 주제로 배타주의, 다원주의, 포용주의 등에 대한 구분을 설명하면서 특히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성취설’에 대한 경계를 요청했다. 또한 배타주의에 대해서도 신학적인 배타주의는 고집하되 사회적 배타주의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길을 제시했다.

기독교와 타종교-타 종교인에 대한 선교전략

세계의 기독교들이 타 종교 선교전략을 ‘타종교와의 대화’로 대치했기 때문에 복음주의가 당면한 과제는 ‘대화나’ ‘대결을 통한 전도냐’라는 선택의 귀로에 놓이게 됐다. 대화를 통한 전도를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로는 바빙크, 존 스토트, 헤셀그래이브 등을 들 수 있다. 바빙크는 대화를 통한 전도의 불가피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과의 대화는 피할 수 없다. 교회는 이 다른 종교들에 대해 모든 종교의 위대한 대체물로서의 과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를 어차피 말하여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증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는 반대에 부딪힐 것이지만 토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도처에서 대화가 정기적으로 기독교인들과 다른 종교들의 지도자들 사이에 열려지고 있으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이 마련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별히 아시아에서는 이교와의 대립이 심각하다. 타종교에 호전적 자세를 취하면 추방당하게 된다. 또한 전통 종교가 그 나라의 문화, 풍속, 사회, 모든 분야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전통 종교에 대한 공격은 그 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 종교인들과의 겸손한 대화를 통한 전도는 불가피하며 타 종교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최근 비기독교에 대한 기독교가 가지는 신학적 태도는 대체로 3가지로 분류된다. 배타주의(exclusivism), 포용주의(inclusivism), 다원주의(pluralism)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진보적 신학자들과 선교학자들은 아시아 종교를 연구하면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의 부족을 보충해 준다는 성취설이 크게 발전했다.

배타주의

기독교가 타종교에 갖는 태도는 신학에 의해 규정된다. 개신교도 정통주의는 기독교만이 진리요, 타종교는 거짓으로 봤다.

초대교회부터 19세기까지 서구 기독교회는 타종교를 이렇게 거짓으로 봤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적대시했다. 초대교회는 기독교가 타종교와 접촉한 일이 없다. 헬라철학과의 대결은 있었고 이교철학을 철저히 배격한 대표적인 인물은 터툴리안이다. 중세 종교개혁자들도 같은 입장을 취했다.

기독교가 지금까지 취한 이런 자세는 인간적으로 보면 배타적, 독선적인 아집이라고 비평하겠지만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현대 복음주의는 물론 배타성을 고집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배타주의는 신학적 배타주의와 사회적 배타주의로 구분하고 신학적인 배타주의는 고집하되 사회적 배타주의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유상열 학장의 신학교 강의 모습


포용주의

포용주의란 배타주의보다는 더 진보된 신학으로 다원주의와 다른 것은 다원주의는 그리스도 없이 구워이 가능하나 포용주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고백하지 않아도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이나 일부 WCC신학자들은 이 모델을 선호한다. 이 모델에 의하면 사람들이 들어갈 천국은 존재하지만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상이다. 이것이 신만인구원설이라고 하며 롬5:18을 근거로 한다. WCC 지도자 비셀 후프트의 유명한 저서 ‘다른 이름은 없나니’는 배타주의같이 보이나 실은 포용주의의 대표적 사상이다. 이런 포용주의는 로마 카톨릭의 제2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공의회 문서는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실상 동일한 운명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우월과 열등: 성취설(Fulfillment Theory)

이 태도는 기독교와 타 종교를 진리와 거짓보다는 우월과 열등으로 보는 것이며 기독교가 타 종교의 부족을 채운다는 사상이다. 이 용어는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에 근거한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완성인 것처럼 타 종교도 완성시켜준다고 논리를 비약시킨다. 이 성취설에 신학적 기초를 제공한 학자는 천주교의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는 인간과 하나님 인간 이성과 신의 진리에는 유추가 가능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를 채택해 자연 종교는 구원에 이르는 ‘몽학선생’이 된다고 주장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타종교를 전도의 준비로 본 것도 아퀴나스 신학의 결과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도 문예부흥에 기인해 타종교의 가치를 인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19세기에는 영국의 합리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성취설에 동조했고 독일의 종교사학파는 기독교와 타종교를 진리와 거짓으로 구분하기를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20세기에 와서 이 성취설은 예루살렘 선교대회에서 공식으로 채택됐다.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부 스피어도 이러한 입장에 어느정도 동조했기 때문에 메이첸과 그의 동료들은 독립 선교부를 세우고 북 장로교 선교부를 탈퇴했다.

동양의 신학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아시아 종교의 가치성을 높이 평가해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를 우월과 열등으로 해석한다. 기독교는 구원의 산정에까지 올라가는 종교요 불교는 8부 능선까지, 유대교는 9부 능선까지 인도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경향은 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니다. 우간다의 움비티 같은 종교학자는 기독교인이면서도 기독교와 아프리카 종교의 연속성을 주장하며 기독교는 아프리카 전통 종교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성취설은 결국 기독교와 타종교에는 연속성이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는데 이 논증은 첫째, 비기독교 종교와 문화에 나타난 계시 둘째, 타종교에도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로고스의 존재 셋째, 비기독교 종교의 신(神) 영(靈) 생(生) 사(死) 등에 대한 용어 사용이다. 성취설 주장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밖에서 자연과 양심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성경(행 14:15,17 17:23-29 롬2:11-15)을 근거로 하며 교회사를 통해 로고스가 기독교 밖에도 존재했다는 교부들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성취설을 지지하는 자들은 타종교를 전도의 준비로 보는데 한국 신학자들 가운데도 샤머니즘은 기독교에 많은 문제점을 주지만 반면에 복음을 받아들이기게 하는 데 중요한 준비의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다원주의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으며 다른 종교에도 동일한 구원에 도달한다는 사상이다. 이 태도는 기독교와 타종교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비교종교학적인 자세로서, 종교는 궁극적 실재와 구원을 논하는 점에서는 목적이 같으나 다만 방법만이 다르다고 한다. 교회 밖의 구원의 이론적 근거는 만인 구원론이다. 만인 구원론은 하나님의 진노보다 사랑을 더 강조하며 신학적으로는 타종교와 문화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남을 믿으며 또한 교회 밖에도 ‘익명의 신자’가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학자는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다. 그는 비기독교 종교에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에 타 종교인들을 불신자로 볼 것이 아니라 익명의 신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같은 로마 천주교 신학자로서 특히 타종교에서의 구원을 말하는 자는 한스 큉이다. 그의 교회론은 많은 점에서 개신교에 접근했으나 교회 밖의 구원을 노골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비기독교 종교를 통한 구원에 대해 “사람은 그의 역사적 상황에서 그가 믿는 그 종교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그의 권리요 의무”라고 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선교는 “무례한 개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 이전의 신자들(Pro-Christians)을 그들의 참 영적 중심인 그리스도에게 초청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교회 밖의 신자들을 ‘익명의 신자들’로 부르는 칼 라너의 견해는 반대하고 ‘신자 이전의 신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폴 틸리히도 칼 라너와 용어만 다른 잠정적 교회를 말한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나타난 교회이고, 교회 밖의 구원을 말하는 자들은 개신교에도 있지만 특별히 천주교 신학자들 가운데 더 적극적이다. 하나님의 도성과 마귀의 도성, 하나님의 사람과 마귀의 사람으로 구분하는 어거스틴적 2분법은 모든 사람과 모든 세계 종교가 다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다는 만인 구원설로 인하여 완전히 외면을 당한다. 이러한 상대주의 자세는 특히 기독교 밖에도 계시가 존재한다는 신학 사상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