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61세의 이른 나이에 목회현장에서 조기 은퇴, 그리고 이어진 해외 선교지에서의 헌신. 지난 20일 소천한 故 한요한 목사가 생전에 보였던 사심 없는 복음을 위한 희생의 삶은 많은 이들에 가슴에 남아 어느 천국 환송예배 보다 깊은 애도와 존경이 이어지게 했다.

故 한요한 목사 천국환송예배와 발인예배가 22일과 23일 뉴욕충신교회와 제미장의사에서 진행됐다. 22일 예배에서는 뉴욕과 뉴저지 지역 목회자들이 대거 참여해 매사에 본을 보였던 그의 삶을 회고하고 애도했다. 뉴욕충신교회장으로 치러진 이 예배에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충신교회 성도들과 그가 평소 은혜를 끼쳤던 많은 이들이 함께 자리했다.

천국환송예배 김혜택 목사(뉴욕충신교회)의 인도로 김종덕 목사(실로암장로교회)가 말씀을 전하고 조대형 목사(RCA 뉴욕교협부회장) 약력소개를 했으며 황영진 목사(낙원장로교회)가 조사, 김연희 집사(뉴욕충신교회)와 고인의 조카인 강현주 사모가 추모사를 전했다. 축도는 양승호 목사(뉴욕교협 회장)가 맡았다. 이날 예배에서는 그의 생전 설교를 다함께 동영상으로 경청하기도 했다.

23일 발인예배에는 전날 뉴욕충신교회에서 천국환송예배가 진행됐음에도 故 한요한 목사를 잊지 못하는 많은 성도들이 찾아 천국에 환송하는 길을 함께 했다. 발인예배는 김혜택 목사의 인도로 김수태 목사(뉴욕어린양교회)가 기도했으며 뉴욕수정교회 원로 박수복 목사가 말씀을 선포하고 한재홍 목사(뉴욕신광교회)가 축도했다.

특히 박수복 목사는 ‘면류관 받으리’(딤후 4:7~8)라는 말씀을 통해 고인이 살아 생전에 보였던 복음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증거했다.

▲뉴욕수정교회 원로 박수복 목사가 고인의 생전의 삶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한요한 목사는 하늘나라의 면류관이 확정된 분이다. 목회를 할 때도 아주 성실하게 일했다. 경주마가 앞만 보고 달리게 하기 위해 차안대를 하는데 마치 한요한 목사는 앞만 보고 달리는 말처럼 오직 복음을 전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힘쓰신 분이다.

청년들을 많이 길렀는데 그들이 얼마나 믿음이 강한지 모른다. 그리고 그가 61세에 은퇴를 했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기 참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목회직 내려놓았다.

후임 김혜택 목사도 선교에 정말 전력하던 분인데 이 분을 모셨다. 늘 어디 가도 김혜택 목사를 두고 후임을 잘 정했다고 너무 훌륭한 분이라고 자주 자랑하는 말씀을 들었다.

선교지에 가서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는데 참 놀라운 것은 3년 만에 그 곳의 말을 다 익히고 동시통역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르겠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선교사역을 했는데 대게 선교사님들이 가면 조금 하다가 포기하게 된다. 환경이 열악하고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낫이 날카롭고 무거워야 수수를 자를 수 있는데 일은 얼마나 힘들도 환경도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저도 차를 타고 여러 번 갔지만 숲속 한 가운데 가면 아무도 없다. 뭐가 나올지 강도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문을 활짝 여신 분이 한요한 목사다.

그 사탕수수 농장 근처를 자주 가는데 근래에 와서 그 근처에 가기만 하면 그 곳 사람들이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며 크게 환영하는 모습을 본다. 그것을 볼 때 너무 기쁘고 정말 위대한 복음의 흔적을 남기셨구나 생각했다.

예수님도 유산을 남기셨다. 바로 교회다. 그리고 유언을 남기셨다. 이 땅 끝까지 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킨 분이 한요한 목사다.

선한 싸움을 다 싸웠으니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 67세까지만 살았는데도 하늘나라에 면류관이 확정됐다. 이미 고생이 찼으니 이 곳으로 오너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저는 이렇게 일하다가 다른 사람이 아쉬워 하는 가운데 하늘나라에 가면 얼마나 복될까 생각한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자녀들이 인물도 좋고 아주 훌륭하고 건강하게 길렀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을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만일 선교지에서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또 다른 곳에서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조카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돌아가셨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구나 생각한다. 교회도 아주 훌륭한 목회자가 후임으로 와서 증축을 하고 단장을 깨끗하게 했다. 이 모든 것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생각한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목사님이 하늘나라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생각해본다. 앞으로 믿음으로 잘 살아서 남겨 놓은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나중에 100년 후에 만나자고 하시는 것 같다. 사모님에게도 먼저 가서 미안하고 마음 건강하게 하나님이 주신 수명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다 30년 40년 후에 다시 만자자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우리 목회자들에게도 오래 살려고만 애쓰지 말고 열심히 헌신해서 내가 썼던 면류관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같다.

성도들에게도 너무 섭섭해 하지 말고 후임을 잘 받들어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 같다. 그의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오기에 그래서 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 천국에 갈텐데 하늘나라에 가면 의의 면류관을 얻고 또 상급을 받는 우리가 되도록 하자.

평소 고인과 깊이 교류해 온 뉴욕충신교회 김인숙 권사는 눈물로 조사를 낭독하고 고인의 삶을 기렸다.
▲김인숙 권사가 조사를 낭독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故 한요한 목사님은 그리스도의 영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셨습니다. 한 목사님은 육신의 장막을 벗었지만 복음은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온전히 그리스도께 헌신하신 분이십니다. 한요한 선교사님은 60대 후반 한창일 시기 우리 곁을 떠나 갔습니다. 사랑하는 한요한 선교사님 벌써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어딜 가야 목사님의 그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앞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 감사합니다. 저희들도 그 신앙이 본을 따라가겠습니다.

부활의 한 날에 목사님을 뵐 것이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하셨던 목사님의 열성적인 헌신과 희생을 본받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성도들도 노력하겠습니다. 선교사님을 지금도 도미니카에서는 기다릴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신학교 강단에서 가르친 밀알의 열매가 오늘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또 다른 열매를 맺어 갈 것입니다. 성도를 가족처럼, 선교지의 소외된 이들을 가족처럼 돌보셨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습니다. 한요한 선교사님 이제 하나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영원히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故 한요한 목사 약력

1945년 1월30일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64년 고려대학교 입학(64학번)
1967년 고려대학교 휴학 교육심리학 전공
1980년
성결대학 신학과 졸업
필라델피아 Faith 신학교 졸업
교육학 박사
1981년 미국으로 이민
1984년 뉴욕염광교회 부임
1986년 뉴욕염광교회 사임
1987년 뉴욕충신교회 개척
2005년 뉴욕 충신교회 조기은퇴 후 원로목사로 추대받음
2006년 도미니카 공화국 선교사 파송(산베드로지역 밧데이 사탕수수농장)
2012년 5월20일 주일 아침 8시5분 소천

유가족

부인: 한순구
장남: 한명진 며느리: 김수정 손녀: 한보라, 한보아
차남: 한현진
동생 한영혜, 한영숙, 한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