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중부교회(담임 김재열 목사) 성도들은 매일 새벽 텐미닛(10Min.Daily)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김재열 목사가 직접 집필하는 이 텐미닛은 중부교회 성도들만을 위한 전 교인 QT교재로 성도들의 아침묵상을 돕고, 중부교회의 새벽 강단을 더욱 든든히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중부교회는 교회 설립 초기부터 오랫동안 성서유니온이 발행하는 매일성경으로 전교인 QT묵상을 진행하다가 교회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직접 QT교재를 발간해 하루에 10분은 반드시 묵상을 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중부교회 성도들은 매일 새벽 이 텐미닛 교재를 들고 중부교회 새벽기도를 찾는다. 혹 새벽기도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도 성도들은 집이나 일터에서 텐미닛 교재로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중부교회가 이 텐미닛 교재를 사용하면서 성도들 간의 말씀에 대한 공통분모가 생기고 이를 통해 함께 친교를 나누기 더욱 용이해지고 말씀 가운데서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또 중부교회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묵상할 수 있어 성전건축이나 해외선교 등의 중요한 사역을 두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텐미닛은 그날의 QT 본문 뿐만 아니라 신앙예화, 성경퀴즈, 성경유머 등 다양한 코너를 통해 성경을 입체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집필했다. 또 가정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관련 성경구절 및 찬송, 기도제목 등도 함께 실어 가족 간의 신앙나눔도 용이하도록 했으며 말씀 핵심 정리, 성경 Q&A 등의 코너를 통해 더욱 깊은 묵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강해설교 전해지는 중부교회 새벽기도
김재열 목사는 바쁜 이민생활일수록 더욱 새벽기도에 열심히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열 목사는 “기도는 신앙의 기본이자 신앙의 생명”이라며 “시간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것 저것 다 빼고 양보하다보면 결국 기도하는 시간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하루에 온전한 시간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기도하는 생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부교회의 매일 새벽 강단에서는 강해설교가 전해지고 있다. 김재열 목사와 부교역자들은 돌아가며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있으며 텐미닛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을 매일 깊이 있게 풀어주고 있다.
김재열 목사는 통상 전날 묵상을 통해 새벽기도 설교를 1차적으로 준비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한 차례 더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이렇게 새벽기도를 이끌어 온지 15년, 현재 중부교회는 말씀 가운데 각 목장들이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목장 목회의 열매들이 매주 풍성해지고 있다.
김재열 목사 설교문-믿음의 능력
믿음의 능력이란?
고린도후서 12:1-10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2천년 교회 중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단연 사도 바울입니다.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헌신한 철저한 제자 바울 사도입니다. 그의 결단과 고백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행20:23-24에서 바울의 불타는 마음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뿐만 아니라 남은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생명을 던졌습니다.
빌립보서 1 : 20 - 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 정도의 믿음이라면.... 들어가도 복이요, 나가도 복이 굴러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바울이 받은 축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복음 전하는 사역자가 겨우 떠돌이 천막장사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가정의 축복 받았습니까? 결혼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한 때는 명예도 누렸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을 때는 매 맞고 헐벗고 굶고 핍박과 비난을 가는 곳마다 받았습니다. 오히려 축복은 고사하고 사형 받은 자처럼 절망과 흑암에서 지나는 날도 수없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의 축복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본문에 의하면 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병이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며 비겁하게 행동했던 베드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해가 되고 가롯 유다에게 이런 병이 있었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온전히 주를 위해 생명을 내놓고 물, 불 가리지 않고 주의 일이라면 앞장섰던 바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때때로 고통에 처한 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만 때로는 하나님이 야속하게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나 사업 실패, 사랑하는 가족들과 어쩔 수 없이 사별하는 교우들을 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째서 저렇게 견디기 힘든 육체의 가시를 주시는가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을 안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제가 무지해서 모를 뿐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외모로 보기에는 다 그럴듯하게 보입니다만 누구나 남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을 안고 있습니다. 신자는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고통의 가시로 인해 아픔을 느끼며 삽니다.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모르기에 바울은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는 세 번이나 간절히 간구 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가시처럼 고통을 주는 육체의 질병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응답은 엉뚱합니다.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육체의 고통인 질병을 치료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병을 치료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은혜로 평가하셨다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면 이것은 우리들의 상식으로 하나님의 저주든지 심판입니다.
어떻게 육체의 가시가 은혜라는 말입니까? 7절이 해답입니다.(7v)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질병의 고통인 육체의 가시는 사랑의 가시이며 은혜의 가시였습니다. 나를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조절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도 받았습니다. 3승천도 보았습니다. 환상도 보았습니다.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은혜를 많이 받으면 나쁜 병이 생깁니다. 무슨 병일까요? -그것이 교만의 병입니다. 그러므로 그 동안 받은 은혜가 은혜로 남게 하게 위해서 그리고 받은 은혜가 사명으로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는 오히려 축복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며 표적입니다.
솔로몬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잠언 30 : 7 - 9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너무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버리는 비극이 없어야 합니다.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께 욕 돌리지 않도록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속된 축복이 있기 위해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축복이 나를 무너지게 하는 올무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가시가 필요한 것을 이제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바울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압니다. 때문에 자신을 쳐봅니다. 가혹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내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내 스스로 겸손하려 했지만 겸손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쓴 뿌리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 나를 쳐 복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깨달음의 은혜입니다.
낮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인 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하나님은 은혜의 단비를 내리십니다. 높은 곳에는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너무 교만해지면 어떤 은혜도 받지 못합니다. 겸손한 그릇만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녹아질 때 하나님은 쓰십니다. 쇳덩어리가 녹아야만 연장이 될 수 있듯이 겸손해야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봅시다.
하나님의 응답인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는 말씀을 들은 후 바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0v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육체의 가시를 안고 연약한 몸으로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내가 약할 때 이제는 강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한번 약해질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내가 한번 눈물 흘릴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내가 한번 낮아질 때 그리스도의 엄청난 사랑이 내게 오니 약할 그때가 강할 때라는 비결을 또 깨닫습니다.
한국의 송명희 시인을 아십니까?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일생동안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게 됐습니다.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분유 한 병 제대로 먹지 못했답니다. 열 살이 넘어 겨우 숟가락질을 했답니다. 아버지는 결핵으로 시달렸습니다. 저주스런 삶이었습니다.
사춘기 때 자살을 여러 차례 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죽을 수 없었습니다. 17살 때 큰 결단을 합니다. 이제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를 했습니다. 왜 난 장애인이어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절규하면서 찾았습니다. 그런 중에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죽으리라." 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거듭났습니다.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계속 기도하다가 어느 날 시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볼품없는 그녀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시를 지니고서도 예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은 시가 유명한 찬송이 되었지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신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어떻게 공평하다는 말입니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능력이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음의 능력입니다.
약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난할 때 비난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미련할 때 시기하지 말고 명철에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육체의 가시로 고통을 느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가난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무능한 짓입니다.
부요하시고 능력이 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데... 가난한 것이 뭐가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발버둥을 쳐서라도 하나님! 내가 먹지 않고라도, 잠을 자지 않고라도. 가시가 은혜요, 능력임을 선포하도록 해주세요! 절규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대로 이대로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능력이란? 약할수록 하나님 편에 선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 : 11 -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어려운 일을 당하는 때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회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려움 중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때에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빛으로 내게 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어떻게 이러한 능력을 덧입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육체의 가시를 놓고 기도했을 때였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이 언제 축복을 받아 강해졌습니까? 재산이 증식해서 부자일 때였습니까?
줄줄이 사탕처럼 자식들이 득실득실할 때 였습니까? 아닙니다. 다 떠나보내고 오직 홀로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무릎 꿇었을 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하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지 않습니까?
약하다고 실망 만하며 언제까지 주저 앉아있어야 하겠습니까?
약한 그 순간이 기도하는 절호의 기회임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면 운명에 변화가 옵니다. 약할 때는 엎드릴 때입니다. 부르짖을 때입니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편 91:15을 보십시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이사야 58:9을 보십시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신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롭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치료해주십니다. 만일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다른 능력을 주십니다.
사탄의 사자로 인해 괴롭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길은 기도하는 방법뿐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며 능력 있는 신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약한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겸손하게 머리 숙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나는 약한 위치에 있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더욱 강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신자가 되십시오. 솔솔 부는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갈대와 같은 약한 신자가 되서는 안됩니다. 폭풍 속에서도 든든히 꿋꿋하게 서있는 강한 신자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중부교회는 교회 설립 초기부터 오랫동안 성서유니온이 발행하는 매일성경으로 전교인 QT묵상을 진행하다가 교회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직접 QT교재를 발간해 하루에 10분은 반드시 묵상을 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중부교회 성도들은 매일 새벽 이 텐미닛 교재를 들고 중부교회 새벽기도를 찾는다. 혹 새벽기도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도 성도들은 집이나 일터에서 텐미닛 교재로 성경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중부교회가 이 텐미닛 교재를 사용하면서 성도들 간의 말씀에 대한 공통분모가 생기고 이를 통해 함께 친교를 나누기 더욱 용이해지고 말씀 가운데서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또 중부교회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묵상할 수 있어 성전건축이나 해외선교 등의 중요한 사역을 두고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텐미닛은 그날의 QT 본문 뿐만 아니라 신앙예화, 성경퀴즈, 성경유머 등 다양한 코너를 통해 성경을 입체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집필했다. 또 가정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관련 성경구절 및 찬송, 기도제목 등도 함께 실어 가족 간의 신앙나눔도 용이하도록 했으며 말씀 핵심 정리, 성경 Q&A 등의 코너를 통해 더욱 깊은 묵상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강해설교 전해지는 중부교회 새벽기도
▲텐미닛은 다양하고 알찬 코너를 통해 풍부한 성경지식을 전하고 있다. | |
중부교회의 매일 새벽 강단에서는 강해설교가 전해지고 있다. 김재열 목사와 부교역자들은 돌아가며 새벽기도를 인도하고 있으며 텐미닛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을 매일 깊이 있게 풀어주고 있다.
김재열 목사는 통상 전날 묵상을 통해 새벽기도 설교를 1차적으로 준비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한 차례 더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이렇게 새벽기도를 이끌어 온지 15년, 현재 중부교회는 말씀 가운데 각 목장들이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목장 목회의 열매들이 매주 풍성해지고 있다.
김재열 목사 설교문-믿음의 능력
믿음의 능력이란?
고린도후서 12:1-10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2천년 교회 중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단연 사도 바울입니다.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헌신한 철저한 제자 바울 사도입니다. 그의 결단과 고백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행20:23-24에서 바울의 불타는 마음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뿐만 아니라 남은 삶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생명을 던졌습니다.
빌립보서 1 : 20 - 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 정도의 믿음이라면.... 들어가도 복이요, 나가도 복이 굴러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바울이 받은 축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복음 전하는 사역자가 겨우 떠돌이 천막장사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가정의 축복 받았습니까? 결혼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한 때는 명예도 누렸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을 때는 매 맞고 헐벗고 굶고 핍박과 비난을 가는 곳마다 받았습니다. 오히려 축복은 고사하고 사형 받은 자처럼 절망과 흑암에서 지나는 날도 수없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의 축복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본문에 의하면 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바울은 이병이 얼마나 고통스럽던지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며 비겁하게 행동했던 베드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해가 되고 가롯 유다에게 이런 병이 있었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온전히 주를 위해 생명을 내놓고 물, 불 가리지 않고 주의 일이라면 앞장섰던 바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면서 때때로 고통에 처한 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만 때로는 하나님이 야속하게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나 사업 실패, 사랑하는 가족들과 어쩔 수 없이 사별하는 교우들을 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째서 저렇게 견디기 힘든 육체의 가시를 주시는가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을 안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제가 무지해서 모를 뿐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외모로 보기에는 다 그럴듯하게 보입니다만 누구나 남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을 안고 있습니다. 신자는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고통의 가시로 인해 아픔을 느끼며 삽니다.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모르기에 바울은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는 세 번이나 간절히 간구 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가시처럼 고통을 주는 육체의 질병을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응답은 엉뚱합니다.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육체의 고통인 질병을 치료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병을 치료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은혜로 평가하셨다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면 이것은 우리들의 상식으로 하나님의 저주든지 심판입니다.
어떻게 육체의 가시가 은혜라는 말입니까? 7절이 해답입니다.(7v)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질병의 고통인 육체의 가시는 사랑의 가시이며 은혜의 가시였습니다. 나를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조절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도 받았습니다. 3승천도 보았습니다. 환상도 보았습니다.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은혜를 많이 받으면 나쁜 병이 생깁니다. 무슨 병일까요? -그것이 교만의 병입니다. 그러므로 그 동안 받은 은혜가 은혜로 남게 하게 위해서 그리고 받은 은혜가 사명으로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는 오히려 축복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며 표적입니다.
솔로몬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잠언 30 : 7 - 9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너무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생각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버리는 비극이 없어야 합니다.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께 욕 돌리지 않도록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속된 축복이 있기 위해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축복이 나를 무너지게 하는 올무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가시가 필요한 것을 이제 깨닫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바울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을 압니다. 때문에 자신을 쳐봅니다. 가혹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내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내 스스로 겸손하려 했지만 겸손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쓴 뿌리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 나를 쳐 복종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 깨달음의 은혜입니다.
낮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인 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하나님은 은혜의 단비를 내리십니다. 높은 곳에는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너무 교만해지면 어떤 은혜도 받지 못합니다. 겸손한 그릇만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녹아질 때 하나님은 쓰십니다. 쇳덩어리가 녹아야만 연장이 될 수 있듯이 겸손해야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가봅시다.
하나님의 응답인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는 말씀을 들은 후 바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0v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육체의 가시를 안고 연약한 몸으로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내가 약할 때 이제는 강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한번 약해질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내가 한번 눈물 흘릴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내가 한번 낮아질 때 그리스도의 엄청난 사랑이 내게 오니 약할 그때가 강할 때라는 비결을 또 깨닫습니다.
한국의 송명희 시인을 아십니까?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일생동안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게 됐습니다. 집안이 너무나 가난해서 분유 한 병 제대로 먹지 못했답니다. 열 살이 넘어 겨우 숟가락질을 했답니다. 아버지는 결핵으로 시달렸습니다. 저주스런 삶이었습니다.
사춘기 때 자살을 여러 차례 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 때문에 죽을 수 없었습니다. 17살 때 큰 결단을 합니다. 이제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를 했습니다. 왜 난 장애인이어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절규하면서 찾았습니다. 그런 중에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죽으리라." 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거듭났습니다.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계속 기도하다가 어느 날 시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사람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볼품없는 그녀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시를 지니고서도 예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은 시가 유명한 찬송이 되었지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신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어떻게 공평하다는 말입니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 능력이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음의 능력입니다.
약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난할 때 비난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미련할 때 시기하지 말고 명철에 한이 없으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육체의 가시로 고통을 느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가난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무능한 짓입니다.
부요하시고 능력이 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데... 가난한 것이 뭐가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발버둥을 쳐서라도 하나님! 내가 먹지 않고라도, 잠을 자지 않고라도. 가시가 은혜요, 능력임을 선포하도록 해주세요! 절규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대로 이대로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능력이란? 약할수록 하나님 편에 선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 : 11 -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어려운 일을 당하는 때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회임을 잊지 마십시오.
어려움 중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때에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빛으로 내게 임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어떻게 이러한 능력을 덧입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육체의 가시를 놓고 기도했을 때였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이 언제 축복을 받아 강해졌습니까? 재산이 증식해서 부자일 때였습니까?
줄줄이 사탕처럼 자식들이 득실득실할 때 였습니까? 아닙니다. 다 떠나보내고 오직 홀로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무릎 꿇었을 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하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지 않습니까?
약하다고 실망 만하며 언제까지 주저 앉아있어야 하겠습니까?
약한 그 순간이 기도하는 절호의 기회임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면 운명에 변화가 옵니다. 약할 때는 엎드릴 때입니다. 부르짖을 때입니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편 91:15을 보십시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이사야 58:9을 보십시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신자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롭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치료해주십니다. 만일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다른 능력을 주십니다.
사탄의 사자로 인해 괴롭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길은 기도하는 방법뿐이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 신자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며 능력 있는 신자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약한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겸손하게 머리 숙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도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록 나는 약한 위치에 있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더욱 강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신자가 되십시오. 솔솔 부는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갈대와 같은 약한 신자가 되서는 안됩니다. 폭풍 속에서도 든든히 꿋꿋하게 서있는 강한 신자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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