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본을 향해 역사를 왜곡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우리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일제에 36년 동안 나라를 빼앗겨 핍박과 고통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인식이 역사의 왜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불편한 진실이지만 일본에 50년간 나라를 빼앗겼던 뼈아픈 과거를 이제는 숨길 필요 없이 바르게 기록해야만 합니다.

그 근거로 1894년 동학혁명과 함께 우리나라 조선 땅에서 일본과 청나라가 청일 전쟁을 일으킨 자체가 나라의 기반이 무너진 증거라 하겠습니다. 왜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는데 자기들 나라에서 싸우지 않고 남의 나라에서 싸웠는가를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이 싸움의 결과 일본이 승리하자 강제로 조선과 청나라가 맺은 조약을 파기했으며 조정의 권력을 친일파들이 장악하게 되었고 1895년 을미사변(명성왕후 시해사건)을 맞게 된 것이 나라를 빼앗긴 근거입니다. 제대로 세워져 있는 나라라면 외국의 칼잡이들이 어떻게 남의 나라 궁궐을 침입하여 국모를 살해해서 그 시체를 불태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 이듬해인 1896년에는 살해의 위협을 느낀 임금이 자기의 궁궐을 버리고 이웃나라 공관(러시아공관)으로 피신을 가는 아관파천(俄館播遷) 또한 나라를 빼앗긴 역사적 근거이기도 합니다.1896년 독립협회가 만들어 졌는데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친일세력들이 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를 세운다는 취지에서 중국 사신들을 영접하던 서대문의 영은문을 헐어내고 독립문을 세우는 것으로 출발했으며 일본의 횡포가 심해지자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독립협회가 활동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이 박탈당했고 1907년에는 군대를 해산 당한 채 우리나라의 국토를 일본 군대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1909년에는 감옥권과 사법권까지 빼앗긴 채 강압에 의해 1910년 8월22일 조선통감부 관저에서 일본 육군대장 데라우치와 이완용에 의해 병합 체결을 맺었으며 일주일 후 8월 29일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공포한 것이 한일합방의 실체인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 앞에서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36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역사가 왜곡되게 된 원인은 일본의 주도면밀한 계획과 간계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925년을 전후해 일본은 우리의 정서와 사상까지 일본화 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며 글과 언어뿐만 아니라 역사까지도 날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조선사 편수회라는것을 총독부 산하에 두고 일본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으며 이들과 함께 이 일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 이병도와 신석호 두 사람입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일본의 역사학자들로부터 역사를 배웠고 이들의 역사관에 의해 자연스럽게 식민사관으로 세뇌된 사람들입니다.

이 두 사람이 해방이후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쓰는데 절대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왜곡 자체도 느끼지 못한 채 스스로의 모순에 빠졌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이 정치적 수준이 뛰어나거나 국민들이 정직하거나 백성들의 높은 수준과 단결력 때문입니까 무엇으로 오늘의 번영된 국가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며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4:21)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주님의 말씀대로 나라를 빼앗긴지 50년이 되는 희년에(1895-1945)주님의 은혜로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반대편에 있는 미국을 사용하셔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처음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수많은 순교자의 피와 고난의 파도를 지나면서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를 남겨두셔서 거룩한 씨를 이 땅에서 자라나게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사6:13)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근거로 조선의 정조가 승하한 후 고종 때까지 4대 왕조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복음의 씨앗들을 자라나게 하셨고 드디어 1907년을 기점으로 이 땅에 새로운 영적 기운이 불게 하셨습니다. 그 해에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대 각성운동이 일어나 성령의 역사가 온 나라에 충만하게 하셨고 남쪽 대구에서는 김광제 서상돈 선생을 주축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면서 남자들은 금연으로 부녀자들은 가락지를 빼어내는 탈환회를 조직하며 일제의 빚을 갚고자 했던 것입니다.IMF때 금 모으기 운동의 원조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인 셈이지요 한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았던 남강 이승훈선생 또한 1907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민족학교인 오산학교를 설립하시면서 학교 교훈으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우셨습니다.

1.예수를 믿고 바른 신앙으로 2000만 민족의 혼을 살린다.
2.교육으로 민족의 정기를 일으키고 독립조국을 이끌어 갈 인제를 육성 한다.
3.산업을 일으켜 부강한 민족의 기틀을 삼는다.

남강 선생은“우리 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 하나의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 올 때에 제 힘으로 들치고 올라오지 남의 힘으로 들추는 일을 본적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도 순교를 하면서까지 신앙을 지키며 기도 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해방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일제에 36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었다고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독립이 이루어 졌고 나라의 기틀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눈 여 겨 볼 한 부분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이것이 실패로 끝나자 민족의 지도자들이 중국 상해로 망명을 떠나 40일후에(1919.4.11)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며 임시헌장 선언문 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기초 국가로 세우고자 한다”로 시작된 선언문은 제 7조에서”우리에게 흐르는 피는 자손만대 자유와 복락의 대가로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기초이다”로 되어있습니다. 이 후에 윤치호가 애국가를 작사 할 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의견을 따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된 것입니다.이것이 우리 민족의 신앙 고백이 된 셈이지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과 겨레사랑이 늘 함께 연결된 신념과 용기를 지닌 신앙을 간직하셨던 것입니다.

독립 후에는 UN에 의해 3년간 신탁통치를 거친 후 건국 역사상 처음으로 민의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1948.5.10)를 거쳐 1948년 5월 31일 첫 국회인 제 1회 제헌 국회가 열렸는데 이때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 의원께서 첫 국회 단상에 서서 시작한 첫 마디가 “의원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의 제헌 국회를 가능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국회를 개회하기 전에 목사님이시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이윤영의원께서 나오셔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세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를 선포하시며 첫 국회를 개회하기 전 하나님께 감사기도부터 올렸습니다. 이때의 기도문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가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서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라진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주시고 우리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민생의 도탄이 오래 갈수록 이 땅에는 악마의 권세가 확대될 것이오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임하시길 원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의 평화를 허락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 일본의 신사참배 문제는 기독교 분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1925년부터 일본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식민사관으로 바꾸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총독부 산하에 조선사 편수회를 두기 시작한 때이며 이때에 일본 신궁 150개가 있었고 면 소재지 이상에 한 개씩 2,229개의 신사를 설립하며 일본화가 확대됨에 따라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과 정신은 쇠퇴해 갔으며 이때부터 기회주의 어용주의자 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드디어 1938년 9월 9일 제 27회 조선 기독교 총회에서는 신사참배를 가결하기에 이르렀고 전국의 노회장 23명이 당일 평양에 있는 서기산 신사에 단체로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일본 천왕에게 경배하는 동방요배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신사참배를 가결한 날(1938년9월9일)로부터 정확히 10년째 되는 그날 1948년 9월9일에 같은 평양에서는 조선 공산당이 창당되면서 이들에 의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또다시 죽었고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주님의 종들을 남한으로 보내셨고 이들에 의해 남쪽에서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은 그 후 50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먹을 양식이 없어 백성들이 굶어 죽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이 시간에도 양식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이웃나라로 떠돌아다니는 현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남쪽에서는 남하한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새벽기도의 전통을 이어가며 신앙을 지켰기에 6.25라는 엄청난 민족의 수난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라를 지켜 주셨고 우리의 신앙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부산만 남겨둔 채 온 나라가 다 공산화 되었던 6.25때 어떻게 나라가 지켜질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이 부족한 사람의 눈에 비쳐진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스라엘 속에서 역사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민족을 위해서도 역사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독립과 자유와 오늘의 번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결과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교회가 부흥됨에 따라 세상의 역사학자들 관점에서 바라보던 역사관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도 조명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며 이런 일은 기독교인들의 사명이고 교회 강단에서부터 선포되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며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 역사학자들에 의해 세뇌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던 이병도 신석호 두 사람 에 의해 주도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을 세우거나 가까이 하는 개인이나 나라의 운명이 어떠했는지 끊임없이 보여주듯이 일본이 패망한 근본 원인 또한 자기들의 우상인 왕을 우리나라에까지 우상으로 정착시키려 했던,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 원인이라 생각되며 나라를 지켜낸 것은 순교하면서 까지 우상숭배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믿음의 선조들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해방을 주시고 발전된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 시점이야 말로 우리 모두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살피고 재정립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해외 한인장로회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신사참배에 참여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참회하는 심정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부터는 크리스천 역사학자들이 일제의 시각이 아닌 대한민국의 시각에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할 필요와 함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다 확실하고 올바른 역사가 쓰여지길 바라며 교회에서도 가르쳐지기를 기대합니다.

해외한인장로회·서북노회 노희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