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러싱제일교회(담임 장동일 목사)가 고난주간을 맞아 5일 저녁 가진 고원웅 집사 초청 간증집회에서 그의 눈물의 간증이 후러싱제일교회 성도들을 울렸다. 시각장애가 있는 고원웅 집사는 장동일 목사가 미주 서부지역 밸리연합감리교회에서 목회할 당시 집사로 교회를 섬겼었다.

5일 간증에 나선 고원웅 집사는 시각장애라는 고난을 통해 깨달았던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해 증거했으며 자신과 동일한 시각장애의 고난이 딸에게 이어지던 당시의 고통과 이를 신앙으로 극복하고 딸이 치유받는 과정 중에 임한 하나님의 은총과 곁에서 믿음으로 함께 했던 아내 고지연 씨에 대한 고마움 등을 간증했다.

이날 고원웅 집사는 눈이 떠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던 자신에서 벗어나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깨닫게 됐을 때 임했던 평안가 마음 안에 일어난 기적에 대해 증거하면서 “하나님은 당할 만한 고난을 주시고, 반드시 그 고난을 통해 영광을 주시기로 작정돼 있다”고 강조했다.

육체적인 기적이 임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의 시각장애를 통해 주변의 사람들이 변화되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가족이 신앙 안에서 더욱 성숙됐던 생생한 경험을 전하며 하나님이 어떤 모양으로 역사하시는지 생생하게 전했고 그의 이런 간증은 이날 참석한 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울렸다.

또 동일한 병을 앓고 있는 그의 딸 줄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쏟았던 눈물과 아내의 노력,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도 증거했다. 현재 줄리는 꾸준한 치료로 거의 정상의 시력을 되찾고 있다.

고원웅 집사의 간증과 관련, 장동일 목사는 “이전에 섬기던 교회를 너무도 은혜롭게 해주셨던 분이다. 다시 만나서 너무도 반갑고 또 깊은 은혜가 마음 안에 임하게 됐다”며 “고난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담겨져 있고 하나님은 항상 피할 길까지 예비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이 고난주간을 잘 지낸 후에 영광의 부활의 아침을 경험하자”고 권면했다. 다음은 고원웅 집사 간증 주요 내용.

 
 

우리는 우리가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쳐다보고 싶은 것을 쳐다볼 수 있고,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줄 리가 저와 같은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도 힘들었고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 증상이 저와 똑같이 나타났다. 눈을 마주치고 방긋하던 줄리가 얼마나 예뻤고 그렇게 하나님께 감사가 드렸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나 줄리가 어려운 치료를 이겨내고 성장할 때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려지고,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가정은 작은 것을 통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줄리가 말을 감사하게도 다른 아이보다 빨리 하는 편이어서 몸이 불편한 것이 있으면 빨리 말 할 수 있어서 그것이 너무 감사했다. 정말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수정체를 빼고 인공수정체를 아이들은 못 넣어주기 때문에 콘택트렌즈를 끼워야 물체가 그나마 선명하게 보며서 시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저는 콘택트렌즈가 없어서 고작 두꺼운 안경을 5살, 6살 때부터 쓴 것이 다였다. 어린 아이가 안경을 쓰면 벗어 던지니까 아이들에게는 콘택트렌즈를 끼워야 한다. 아이에게 이 렌즈를 끼고 빼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7개월 된 아이를 눕혀놓고 그것을 렌즈를 끼우는데 아이는 눈에 뭐가 들어오니까 자꾸 울고 겨우 끼우면 눈물과 함께 빠져나오고 그 곁에 있던 간호사도 다 울었다. 정말 하나님을 또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고통을 줄리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고, 줄리가 다 자기 좋게 하기 위해 한다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말고는 제 손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심으로 기도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간호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겨우 하나가 들어갔다고 한다. 어려움 중에도 제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에 감사했고 또 줄리 엄마가 렌즈를 빼고 깨우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줄리의 눈도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시에 그동안 줄리에게 정신이 팔려서 제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저도 그나마 조금씩 보이던 것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물었더니 이제는 별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열심은 했는데 지금은 더 도울 수 없고 나중에 의학이 더 발전이 되면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의사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밖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앞이 캄캄하고 이 소식을 또 전해야 하는 심정이 비통했다. 벼랑끝까지 또 가야 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원망되고 의심되기까지 했다. 과연 계시긴 계시는 것인가 마냥 침묵하시는 것 같았다. 실명이 곧 다가온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저는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서 이야기를 해야 집에 가니까 결국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한다고 전해줬다. 저는 아내를 정말 존경한다. 괜찮아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남편이라고 세워주려는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더 힘들어졌다. 왜 저런 좋은 사람에게 계속 시련과 역경을 줘야 하는가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드렸다.

그 때 뇌리에 스치는 것은 줄리의 왼쪽 눈을 좋게하기 위해서 오른쪽을 가리듯이 하나님은 저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제 육적인 눈을 가리게 하셨다는 것이다. 제 믿음이 어디서부터 견딜 수 있고 어디서부터 견딜 수 없는지 아시기 때문에 견딜만한 시련을 주셨다. 영의 눈이 열려서 그것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귀한 일을 하기 위한 것임을 그 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조금씩 또 하나씩 알려주셨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 줄리 엄마와 함께 기도했고, 또 줄리 눈을 뜨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중보기도팀도 있었다. 매일 교회에 모여 기도해주셨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를 해주셨다. 처음에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그 분들게 너무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이제 그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 분도 점점 기도에 지치시는지 모이는 횟수와 모이는 사람의 수가 줄기 시작하더니 점차 저도 그 자리에 가기 부담되는 수준이 됐다. 저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또 그런 원망의 마음으로 기도했더니 생각이 떠오르기를 앞으로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장소에 가게 될 것이고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주님께 쓰임을 받게 되는 준비를 시키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도모임에 오던 분이 저에게 말씀하기를 감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집사님 덕분에 우리들이 기도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전까지 그 분들이 기도를 많이 하던 분들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기도모임 이후 그 모임에 계신 분들이 중요한 직분을 받고 쓰임을 받았다.

한번은 찬양예배를 위해 줄리엄마와 손을 잡고 찬양을 하는데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였다. 그날은 찬양팀과 함께 두손을 들고 찬양을 부르는데 정말 제 마음에 그 가사와 와 닿았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 생각과 마음을 다 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에게 유익한 것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는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희생의 자리에 쓰임받게 되는 것에 대해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제 약한 시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이라면 저를 얼마든지 쓰시라는 결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게 됐는데 그 전까지는 제가 불면증이 있었고 잠을 잘 못이뤘는데 마음에 확신과 결단이 있은 후로는 너무 잘 잤다. 신앙의 깨달음이 있은 뒤 불면증이 치유된 것이다.

또 아침에 일어나는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 침대 옆에 강가에서 새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까지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날 들어본 새소리는 여태껏 제가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천사의 소리와 같은 새소리가 들렸다. 순간 황홀해서 이것이 새소리가 맞나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한참 넋이 나간 사람처럼 듣고 있었다. 한참뒤 화장실에 갔는데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또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물방울이 컵에 튕겨서 떨어지는 소리, 바람 불 때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이런 것들이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물리적으로는 환경적으로는 변화가 없었지만 제 안에는 너무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제가 안보인다는 사실은 없어지고 제가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제발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제발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보게 해달라는 각본에 하나님을 매어놓고 보게 해주시면 하나님이고 아니면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 속에 하나님을 두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후 안보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게 됐다. 그러면서 환상이 하나 떠오르는데 어린아이의 모습인데 양 손에 캔디가 가득차고 양 볼에도 캔디가 가득찼는데 몇 개 손가락만 캔디를 하나 혹은 두개 받을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 캔디를 더 달라고 손가락을 벌리는 모습이이었다. 이미 받은 것이 너무 많고 가진 것이 너무 많은데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그 나머지 빈 것마저 빈 손가락마저 사탕으로 채워야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깨닫게 됐다. 그 손가락을 채워달라는 기도가 지금까지의 기도가 아니었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서 알려주시는 것이 지금까지 저를 사랑해주고 아끼고 도와주는 친척과 성도들과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감사할 것이 주변에 너무도 많다는 것이 들어오니 제가 힘들다는 마음은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고 하나님 저를 어떻게 사용하기 원하시는지 오로지 그 기도만 남았을 때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 주셨죠’라는 찬양의 가사가 들렸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증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의 소원이 들어오게 됐다.

악기를 배워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또 악기를 가르쳐줄 분들이 주변에 만날 수 있게 환경이 조성됐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더 믿음이 좋으신 분들이라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수 있다면서 드럼을 가르치고 여러 악기를 가르쳤다. 드럼을 칠 때 눈을 뜨고도 정확하게 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잘 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전자기타, 피아노까지 배울 수 있게 해주셨다. 어느날 목사님이 피아노를 치고 저는 드럼을 쳤다. 15분 밖에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저에게는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었고 목사님도 그 이후에도 밸리교회 드러머로 섬겨달라고 하셔서 부족하지만 안보이는 사람을 찬양의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금 16개월째 밸리교회에서 섬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를 찬양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순간부터 저희 교회에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셨다. 1년 6개월이 되는 시점인데도 지금까지도 은혜를 받았다면서 매주 칭찬을 해주신다. 매주 이렇게 칭찬을 받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도 감사를 드리게 됐다.

간증을 마치며 깨달은 바를 전하고 싶다. 여러분에게도 고난이 참 많은 것으로 안다. 각자 크기가 다르고 기간이 다르지만 이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처음에는 저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유익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처방하신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처방하신 고난이고 또한 우리가 견딜수 있는 수준의 고난이다.

또 아내에게 그런 어려운 말을 해야만 했던 자리에서 고난을 겪게 하심으로 그 후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치셨고, 또 자식이 아픈 것을 통해서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 제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지는 못하지만 이 시간 마음 가운데 삶 가운데 어떤 모양이던지 형태던지 고난이 있으신 줄 안다. 그 고난의 크기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엄청난 고난일 수도 있고, 경제적 고난일수도 있고, 또 부부간, 자녀간의 어려움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어려움을 저를 보시면서 확신해도 될 것은 완벽히 이 고난을 컨트롤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더 성숙되고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녀들이 되는 과정이다. 지금 저는 너무도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면 다시 죄 가운데로 들어갈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눈을 감기게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도 고난의 과정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시각이 변화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