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을 오를 때 누군가 밀어주고 당겨준다면 얼마나 힘이 될까? 먼 길을 갈 때 누군가 말동무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영길 목사는 후배 목회자들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다. 후배들이 목회에 대한 질문을 갖고 온다면 어김없이 빠듯한 일정을 쪼개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열정적인 멘토다.

1983년 김영길 목사와 세 가정이 모여 창립한 감사한인교회는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건강한 교회다. 긴 역사 동안 한 번도 싸움으로 인해 분열된 적이 없는 것이 큰 자랑이다. 그러나 이 자랑 속에서 오히려 “다른 교회를 세운 적도 없지 않느냐”는 성령의 질문을 받고 열정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해 벌써 남가주 지역에 5개를 개척했다.

이 과정에서 김 목사는 후배들을 훈련시키고 발탁해 교회 개척의 일꾼으로 세웠다. 주일예배 광고 시간에 “따라갈 사람은 다 가라”고 하며 후배의 개척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개척된 교회들은 독립된 교회로서 각자의 지역에서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후배들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는 후배 훈련에 남다른 소신을 갖고 있다. 먼저 목사는 분명한 소명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문제, 사회적 지위, 명예 등에 있어서 초탈하지 않고 이 길을 경솔하게 선택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를 지망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까탈스러울만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일단 소명이 분명하면 ‘목회의 성공’이란 질문의 관점을 성장이나 번영이 아닌 기쁨과 행복, 주님의 칭찬이란 관점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훈련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다시 상기시켜 준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 보자.

-개척해서 현재까지 한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계십니다. 노하우가 있다면?

“사실 저는 스스로 이것이 제 장점이다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목사님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참으로 부족한 것이 많고 후회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 장점을 굳이 꼽으라 한다면 끊임없이 무엇인가 배우려고 하는 태도, 변화되려는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도 특출한 재능이 없어서 매주마다 주님께 목매야 합니다. 어떨 때는 사랑의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일 오전 새벽 2시까지도 설교를 주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물론 주제도 다 나왔고 제목까지 정해져 있지만 제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감동이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감동을 주겠습니까? 제가 ‘떵’하고 울려야 성도들에겐 ‘띵’이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는 목숨을 걸고 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성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확신을 갖길 기도합니다.

어떨 때는 이 시간이 아주 짧을 때도 있지만 또 아주 오래 걸릴 때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제가 지난 한 주간동안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으면 오래 걸리고 그렇지 않으면 짧게 걸립니다. 하나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신데 멀리 떠났던 제가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데에 걸리는 시간만큼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일주일동안 주님과 동행했을 때에는 마음에 감동이 금방 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는 제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오로지 주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부족한 사람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사님은 카리스마적인 리더십 보다는 따뜻한 목양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교회 성장에 있어서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필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우리 교회는 대형교회가 아닙니다. 그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꾸준히 성장해 온 교회입니다. 저는 70년에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했고 7년간 ‘신앙계’라는 잡지에서 사역하다가 곧장 미국으로 유학왔고 83년에 하나님의성회에서 안수받으면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조용기 목사님의 목회를 어깨 너머로 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받진 못한 상태였습니다. 즉, 엄밀하게 말하면 부목회 등을 통해 목회에 대한 실전 훈련을 받지 못했던 것이죠.

저는 시골 출신인데, 제가 어릴 적부터 보아 왔던 시골교회 목사님의 모습을 자주 기억합니다. 양복 한 벌을 갖고 검소하게 목회하던 그분들, 평생 교인들이 가져다 주는 성미를 먹으면서 새벽부터 수고하던 그분들의 모습이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성도를 사랑하고 돌보는 목양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진실한 목자는 예수님이시지만 우리에게 이 일을 맡겨 주셨으니 우리가 목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다양합니다. 카리스마적으로 양떼를 이끄는 분도 있고 저처럼 조용조용한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강하게 도전하고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어서 오히려 잘되는 교회도 있고 위로주고 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다, 더 좋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민 목회에 위로가 참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밖에서 놀던 애들이 싸우고 집에 들어오면 엄마를 찾아 옵니다. 그래서 칭얼대고 밥도 먹으며 다독거림 받다가 눈물 닦고 다시 나가서 놉니다. 그런 모습을 저는 그려 봅니다. 그런 위로가 이민교회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는 ‘예수 믿고 변화되어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있어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은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나면 변화까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화된 이들이 세상에 축복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카리스마적 목양을 받건, 따뜻한 목양을 받건 결국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의 스타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시대마다의 트렌드일까요? 아니면 목회에 대한 근본적 접근법에 대한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둘다 ‘Yes’입니다. 한국사회적으로 볼 때 1960-70년대에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8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강한 리더십이 ‘나를 두말하지 말고 따라 오라’ 할 때 사람들이 그 말 듣기를 주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요. 미국은 더 자유로운 사회이니 더욱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가는 트렌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목회를 대하는 목회자들의 태도는 하나여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한다면 카리스마적이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카리스마적으로 성도들에게 강한 도전을 주는 목회자가 있는데, 그가 만약 자신에게는 더욱 엄격하다면 그는 아주 훌륭한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내면이 강해야 하며 더욱 엄격해야 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신학교인 한신대를 졸업하셨는데 목회는 조금 보수적으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마치 물과 같아서 이곳이 막히면 저곳이 열리고 이리 저리 흐르다 보면 강이 되고 바다가 됩니다. 제 인생도 제가 계획한대로 된 것은 없고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한신은 진보적 학교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은 ‘배울 만한 선배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배울 것이 없다, 그 말은 배우지 못하고 있단 말이겠죠? 배우는 것은 잘 되는 데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에서도 배우는 것입니다. 좋은 학생은 좋은 질문을 할 줄 압니다. ‘왜 저 교회는 저랬지’라고 현상만 보고 비판하지 말고 그 내면에 무슨 일이,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탐구하는 자세가 있다면 실패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후배들에 대한 애착이 많습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목회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한다면 제가 점심값을 내고라도 시간을 꼭 빼곤 합니다. 그들의 주된 질문은 ‘어떤 목회 방식이 성공적인가요?’입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한다면 답이 없습니다. 성공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교회를 키우는 것인가요? 아니면 건물을 잘 짓는 것인가요? 누군가는 다 써 먹었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삶이 올바를까요? 어떤 목양이 주님께 칭찬받는 것일까요? 어떤 목회가 행복할까요’라고 묻는다면 이것은 참으로 좋은 질문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면 끝인가요? 목사는 만들어져 가는 존재입니다. 성도들이 목사를 훈련시키며 목사를 만들어 가는 존재입니다. 이런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목사는 만들어져야 합니다.그리고 주님이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달라 목회자가 기도도 해야 합니다. 후배 목회자들에게 좋은, 진지한 질문을 하라는 것과 완성된 목회자에 대한 시각을 바꾸길 조언하고 싶습니다.”

-감사한인교회가 최근에 들어 지교회 개척을 시작하셨지요?

“한 6년 전, 우리 교회가 23주년을 맞이할 때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큰 자랑 중 하나는 한 번도 분열되거나 싸워서 깨지거나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늘 그것을 자랑하곤 했는데 어느날은 성령께서 ‘그래, 그것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교회 하나도 세워본 적이 없지 않느냐’라고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싸워서 나뉜 교회도 소중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하던 중에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교역자 한 명과 장로 한 가정을 보내서 개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기쁨이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큰 일을 한 번 해 보겠다고 다짐하고 기도하는데 감동도 기쁨도 없으니 막막했습니다. 2주 뒤 새벽기도 시간에 성령께서 ‘개척 계획을 발표할 때, 그 부교역자를 따라 가고자 하는 성도가 있다면 다 따라가도록 광고해라’고 도전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만 빼고 다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별 수가 있나요? 결국은 주님 앞에 굴복하고 ‘주님, 제가 순종할테니, 제가 그 광고를 할 때 제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가식, 위선 없이 진실되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개척을 발표하던 그 주일에 그렇게 광고했습니다. 개척을 보낼 목사 부부와 장로 부부를 세우고 이분들을 따라 가실 분들은 다 가시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약 30여명이 그들을 따라 개척을 가 코로나 감사한인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이 교회가 300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후 우리 교회는 두세 교회를 더 개척했고 빅토빌에도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까지 했습니다. 최근에 영어목회 교회까지 세우면서 총 5개의 교회가 개척됐죠.”

-지교회들에 대한 자부심이 크시겠습니다.

“자부심보다는 그 교회들이 모두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 교회들을 지교회라 부르지 않습니다. 다 독립된 교회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의 담임목회자들이 제게 조언을 구하러 온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제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도 않고 재정에 대한 참견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왜? 제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혼자 올라 가려면 힘들고 한계에 부닥칩니다. 그러나 함께 올라가면 동시에 수준이 높아집니다. 옛날에 시골교회가 그렇게 성장해서 면마다, 읍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거리가 머니까 이쪽 읍에도 하나 세우자 해서 세워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한 것 뿐입니다.”

-교회를 분립, 개척하면서 인력에서나 재정적으로나 손실이 적지 않으셨을텐데.

“누군가 다 길러주고 가르쳐 주셔서 제가 있고 우리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에너지를 우리가 이용만 하고 베풀지 않는다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그것은 칭친받지 못할 일입니다. 질량불변의 법칙을 아십니까? 어떤 화학반응이 생기거나 변화가 생겨도 최종적인 그 물질의 질량은 불변합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을 하고 나눠 주어도 결국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가지 않고 교회를 위해 사용됩니다. 젊은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요? 후배들을 길러내는 일이 저는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선배가 후배를 멘토링하는 일이 값진 일이긴 하지만 이민교회에서 그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지요.

“세대 차이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1세라도 세대 간에 사용하는 용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릅니다. 2세들과는 더욱 차이가 커집니다. 선배들은 보석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후배들은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보통 1세들은 후배가 찾아 오길 기다립니다. 2세들은 선배가 와서 가르쳐 주길 바랍니다. 1세들은 권위 때문에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2세들은 사생활을 침해하고 싶지 않아서 불러 주기 전에는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됩니다. 물론 언어의 문제도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인간적인 관계가 잘 형성되면 충분히 극복이 됩니다.

불러서 함께 점심만 같이 먹어도 됩니다. 처음에 2세들은 ‘뭘 혼내시려고 불렀나’ 생각하겠죠. 그러나 1세가 진실된 마음으로 교제하길 원하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 속내도 이야기 하고 멘토링도 청해 옵니다. 이런 면에서 1세 목회자가 2세 목회자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집에서 보십시오. 혼낸다고 배웁니까? 관계를 통해서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그와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것이 참 배움입니다. 1세들이 2세 목회자로 하여금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죠.”

-많은 2세 목회자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지만 너무도 힘겨운 목회에 탈진해 이탈되는 현상이 종종 있습니다.

“왜 그들이 신학교에 갔을까?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그들이 콜링을 받았을 때 어떤 멘토와 어떤 상담을 했을까요? 과연 그 콜링을 심각히 고민해 보고 받아들였을까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회가 좋습니다. 친구도 만날 수 있고 찬양도, 놀이도, 문화 생활도 그곳에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 받고 행복했는데 주변에서 ‘목회자가 되라’는 권유를 받으면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로 갑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눅14장에 망대를 세우는 이가 공사 전에 앉아서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냐고 하십니다. 만약 기초만 쌓고 결국 완공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는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현실적인 분이셨습니다. ‘믿습니다’로 끝이 아닙니다. 현실에 터를 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훈련을 받을 때 그들의 멘토는 신학교 3년을 마치고 훈련받아 목회자가 되면 네가 누릴 경제적 여건이 어떤지 아느냐고 물어 봐야 합니다. 네가 평생 고생하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누릴지 생각해 봤느냐고 물어 봐야 합니다. 그들이 다루게 될 것이 페이퍼가 아니라 사람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동물 다루기도 힘든데 사람을 돌보기는 더욱 힘든 것입니다. 더 많은 에너지와 수고가 필요한데 네가 이렇게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미래가 창창한데 꼭 목회를 해야겠느냐고 물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때 교회 생활을 해 보니 즐거웠다가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진지한 고민과 갈등 속에 목회의 길을 결심할 수 있도록 멘토들이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전해 주신다면.

“목사가 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행복한 일입니다. 쓰임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무게도 큽니다. 진지한 태도로, 감사한 태도로, 두려운 태도로 목회를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리소스를 갖고 있을 수 있지만 그것들이 생명의 말씀을 창조하지는 못합니다. ‘빈손입니다’라는 그런 자세로 주님 앞에 엎드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굴복하고 순종할 때만이 남을 부요케 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나는 종입니다’라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되는 것이 목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