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신약성경에서 흰옷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고 철저히 회개하여 원죄와 자범죄에서 온전히 용서받은 성결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영원한 신랑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단장된 영적 신부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구원 얻은 자의 숫자에 대한 숫자풀이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 7:1-8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열거되면서 한 지파에 만 이천명씩, 십사만사천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1은 유일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2는 율법에 준하는 증인을 상징하며 3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는 동서남북에 들어있는 이 세상을 의미하며 5는 다툼을 통하여 전쟁하는 것이며 6은 666으로 끝나는 사탄의 숫자를 말하고 7은 삼위 하나님의 3과 이 세상의 4가 합쳐져서 하나님과 인간이 온전히 연합했을 때 가장 완전한 것이라고 해서 완전수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은 하나에서 열까지 꽉찬 수라고 하여 만수(滿數)라고 하고 12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수치를 의미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제자 열둘을 세우셔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역이 확장되기를 기대하셨고 가룟 유다가 죽은 후에도 맛디아를 세우심으로 다시 열두 사도의 숫자를 세우게 하시는 뜻은 하나님의 기대가 그들을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나라가 확장되는 구령의 성과를 기대하셨기 때문에 이런 것을 하나님의 기대의 수치라 말하고 있습니다. 문자적 숫자로는 한 지파에 만이천명씩을 말하고 있지만 영적 의미의 만이천명은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정한 숫자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사만사천명도 문자적인 숫자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하여 하나님이 구령의 성과로 기대하시는 숫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9절의 종려가지(월계수, Farm tree)는 올림픽때 월계관을 만드는 잎사귀로 승리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11:9-10)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종려가지를 예수님이 타고 가시던 나귀가 밟고 지나가도록 길 양쪽으로 깔아 드렸습니다. 이것은 환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유대인들을 제외한 이방인들의 구원 얻은 숫자가 아무라도 능히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숫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 앞에 섰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도록 내어 주시고 우리를 택하여 구속하시어서 자녀를 삼으시고 하늘나라까지 상속시켜 주시려고 하셨으니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 어린 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10절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라고 되어 있는데, 신약성경에 기록된 장로는 목자들을 통칭하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5:1에는“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의 동생이며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자인 사도 요한도 요한 삼서 1:1에 보면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장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3절의 장로 중 하나는 묵시적으로 예수님이 아니신가 생각합니다.

목회 방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이 선포하게 하시는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체험을 주시고 회개와 신앙 고백도 하게 하시며 거듭나게 하심으로 그 인생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믿어지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뒤에도 마귀와 짝하고 죄악에 휩쓸리고 결국 하나님과 대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은혜를 받을 리가 없습니다.

목회라고 하는 것은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을 가나안까지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와서 복음의 비밀인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진지한 회개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이 폐단이 되어 자신이 잘못한 일도 잊어버리고, 때론 일부러 잊어버리기를 원하여 까맣게 잊어버린 일들도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면 회개의 영을 보내주셔서 그 사람이 잊어버린 일까지 생각나게 하셔서 그 사람의 입으로 시인하도록 해서 애끊는 회개를 하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회개를 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회개는 성령이 시키시고 하게 하시는 회개이기 때문에 그 회개의 진실성은 하나님 앞에 100%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처럼 성령이 시키시는 회개를 한 사람은 다시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해서 죄를 짓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흰옷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십니다.

14절에 보면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더럽고 죄악에 찌든 옷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희게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주홍같은 붉은 피에 더러워진 옷을 씻었는데 흰옷이 된다는 것은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고 아직도 공중 권세를 잡은 마귀가 행세하고 판치는 생지옥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원수 마귀 소굴에 살면서 예수님의 피로 씻어 하얗게 입혀주신 흰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와 노력이 부단히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숨을 버려 피 흘려서 모든 죄악을 정하게 하시고 하얀 세마포를 입혀주신 것은 영원한 예수님의 영적 신부로 단장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와 사랑에 너무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는 부활해서 그분과 더불어 그분의 왕국에서 영광스러운 영적 신부가 되어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기 전에 세상에서 그분과의 인연을 지속하고 더욱 깊어지도록 원수 마귀들이 그냥 두질 않습니다. 이 마귀들이 우리들의 흰옷을 더럽히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혹을 하고 위협을 하기도 합니다.

이때 신앙의 심지가 약하여 육체적 고통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마귀에게 굴복하여 흰옷을 더럽히고 나면 히브리서 6:4-6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한 말씀처럼 다시는 그 인생을 회개하게 할 제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과의 인연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만약 목자가 없고 교회가 없다면 인생은 넘어지기 쉬울 수밖에 없고 천국에 가기 전에 마귀가 흰옷을 걸레처럼 더럽혀서 지옥에 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은 교회와 목자를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목자가 진리정통하고 성령 충만하여 내세소망 절대적인 신앙으로 이끌어 준다면 이 시대에 참으로 복된 성도일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분단된 나라로서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현세가 정치적으로도 불안하고 불행한 상황 속에서 더욱 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된 흰옷을 더럽히지 말고 믿음의 정절을 잘 지켜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 15절 이하와 같이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세마포로 단장한 흰옷을 절대로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는 세상의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육체적인 모든 고통들을 견뎌내야 할 것입니다. 불의와 타협하고 신앙이 변절되면 그 흰옷은 금방 더럽혀지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현세가 어려울수록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힘 있게 연결되어서 예수님의 피로 씻어서 희어진 흰옷을 절대로 더럽히지 말기를 거듭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