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8월 초순경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오색 약수터로 휴가를 갔다. 처음 간 곳이어서 민박하기 위해 산나물을 전국으로 총판하는 가게가 입구에 있어서 민박할만한 곳을 안내해 줄 수 있겠는지를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안주인이 우리 내외를 유심히 살펴 보더니 목사님이시지요 했다. 깜짝놀라 어떻게 아시는가 했더니 척보면 안다면서 호박이 넝쿨채 굴러왔는데 왜 다른 집으로 보내겠느냐며 다소 누추하지만 저희 집에 방이 다섯개가 있으니 쉬어가시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도 신앙생활 하기 때문에 자기 집에 모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 방을 얻어 머물며 약수도 먹고 산책도 하며 기도하는 휴가를 보내는데 바로 그 방 앞에는 속초까지 왕래하는 노선 버스 종점이 있었다. 어느 날 정오 이후 그 집 주인 되는 부인이 돌 정도 된 남자 아기를 업고 버스에서 내리는데 아기의 두 팔이 축 늘어진 채 머리도 떨구어져 있어 몹시 힘들어 보였다.

내 마음이 안타까워 다가가서 아기가 많이 아픈가보다고 했을 때 아이가 너무 앓기 때문에 강릉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오는 길이라며 의사의 말씀이 회복이 어렵겠다고 해서 저도 맥이 빠져 오는 길이라고 했다. 축 늘어진 아기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내 방 앞쪽으로 가자고 해서 처마 밑에 선 채로 등에 업혀있는 아기의 머리를 두 손으로 싸쥐고 간절히 기도했다.

금새 아기가 눈을 뜨고 방긋이 웃으며 내게 오겠다는 포즈를 취했다. 주님께서 고쳐주신 것이었다. 그 날 이후 그 집과의 인연은 매년 여름 휴가때 마다 그 곳으로 가게 되어 1980년 8월 12일에도 그 곳에 갔다. 밤새도록 옆 방에 가느다란 신음소리에 잠을 설쳤다.

새벽에 뒤편에 있는 교회로 기도하러 갔는데 아기 엄마 집사님이 설교 부탁을 해서 새벽 설교로 은혜를 나누고 기도한 뒤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 집사님이 산당귀 찻잔을 접시에 받쳐 들고 권한다. 문턱에 걸터 앉아 차를 마시며, 옆방에 중환자가 있는가고 물었을 때 그 여집사님이 제 남동생인데 하나님께서 동생을 살려주시려고 목사님을 보내주셨단다.

군입대 전에는 교회를 잘 다녔는데, 군에서 소주 마시며 잘못 어울렸다가 중병을 얻어 강릉 모 병원에서 수술을 했으나 의사 말씀에 내일이 죽는다는 날이란다. 그래서 아침 식사 후 권사님의 방으로 모여 기도하자 했고 앉지도 못해 해삼처럼 방바닥에 축 늘어져 누운 청년에게 내가 물었다.

“교회를 다녔다는데 어쩌자고 술먹고 방탕하여 이렇게 되었느냐고” 그러나 묵묵 부답이었다. 왜 믿음을 버렸느냐고 했을 때 가냘픈 목소리로 그까짓 하나님은 믿어서 뭐하게요 했다. 이 사람 말하는 것 보라며 그 하나님께서 네게 무얼 잘못하셨느냐고 했을 때 이팔청춘에 죽게 하는 하나님은 악질이예요 했다.

"이제 보니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의 주권인줄은 아는 모양이로구먼" 하면서 "솔직히 이대로 죽고싶으냐 살고싶으냐" 했더니 "이팔청춘에 죽고 싶은 놈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흘겨 보고 "살릴 자신 있가니요?" 라고 물었다.

나도 모르게 "있다"면서 "정 살고 싶으면 이 시간 철저히 회개 하고 내가 기도해 줄 때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 것이니 온전한 회개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더니 즉시 흐느끼며 통곡하며 회개가 터져 나왔다.

약 한 시간쯤 되었을 때 그 청년의 머리를 싸쥐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뜨거워 뜨거워 하면서 몸을 뒤틀더니 기도가 끝났을 때 벌떡 일어나 밖으로 가서 수돗간의 물을 뒤집어썼다. 후에 본인의 말에 기도 받을 때 하늘에서 작은 불꽃이 자기를 향하여 내려오는데 다가올 수록 점점 크게 보이더니 보름달 보다 더 큰 불덩이가 자기 뱃속으로 들어왔단다.

입과 코 눈과 귀에서까지 연기가 나왔고 그 뒤 수술한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으며 정밀 진찰한 결과 기적으로 다 나았다고 했단다. 그 후 3년이 되었을 때 아주 건강한 몸으로 누나의 사업을 도우며 신앙생활을 잘 하는데 우리 내외가 여름 휴가로 그 곳엘 갔다.


아침 10시 쯤 정장을 하고 우리 방에 와서 무릎을 꿇고 앉더니 제가 배운 것도 별로 없고 가진 기술도 없고 이렇다 할 직장도 없지만 저를 다시 살게 기도해 주신 목사님을 아버님으로 모시고 두 분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싶으니 허락해 달란다. 집사람이 우리는 기도했을 뿐 살리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잘 섬기면서 지금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비장한 각오라도 했는지 아니라며 저는 꼭 두 분을 부모님으로 모시고 살고 싶으니 승락해 주셔야 이 방에서 나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허락을 하니 일어나 큰 절을 한 후 지금까지 그 인연으로 잘 지내고 있다. 어느 날 전화로 아버님 제가 선보러 서울에 왔는데 어떤 처녀를 만나 보았다며 지금 교회로 같이 갈 것이니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보시고 맘에 드시면 결혼하겠지만 두 분이 마땅치 않다 하시면 안하겠다고 했다. 그 때 데려 온 처녀가 인간성이나 믿음이 좋아 보여 결혼을 하게 했는데, 패물도 준비해 주고 내가 그 누나의 집 마당에서 주례를 했는데, 그 교회의 노회 산하 여러 교회에서와 인근 부락 주민들까지 모두가 죽어가던 사람을 하나님이 살리셔서 결혼까지 하게 된 기적의 장본인을 구경할 것이라며 많은 하객들이 운집했었다.

그들은 지금 양양에서 태은이와 혜은이 남매를 양육하며 둘 다 신학교육을 하고 있다. 하나님 더 잘 섬기는 목적을 따라 애쓰고 있는데, 그 누나까지 동생이 아들이 되었으니 누나인 자기는 자동적으로 딸이 된 것이라며 친딸 이상으로 효도하며 잘 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부족한 종을 다양하게 사용해 주셔서 성은교회와 오색약수터 베다니 식품의 안주인 김경순 권사와 김양수 집사 내외가 각별한 관계로 잘 지내고 있어 늘 감사드릴 뿐이다.<다음 회 계속>

♣최근 굿뉴스미션워싱턴필름(대표 이태봉 목사)이 한국성은교회 장재효 목사의 목회 일대기를 다큐멘터리(http://www.youtube.com/watch?v=ozEoEVL7-qc&feature=player_embedded)로 제작했으며, 기독일보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된 장재효 목사의 목회 에세이 '야향(野香) 장재효(張在孝) 목사의 목회와 선교'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