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실패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짜릿한 경험을 한번쯤은 합니다.

누가 되었던 간에 이것이 개인적이든, 아니면 거국적이든, 인생에 있어서 낮아질 때가 있으면 높아질 때가 있고, 너무 높아지다보면 떨어질 때가 있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분명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인생에 있어서 실패를 할 수 있고, 또 준비되어진 만큼 사람은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준비만 되어도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인생역전’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든 준비되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판 뒤집기” 이것이 꼭 운동 경기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도 다가 설 수 없는 굴욕적인 싸움인 애굽과의 한판승에서 골리앗이라는 거인 앞에 정말 속수무책인 싸움 앞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일으켜 ‘막판 뒤집기’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읽다보면 참으로 통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정도로 엔돌핀이 솟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 환경은 바뀔 수 있습니다. 내 생각도 바뀌고, 그렇게 철저하게 믿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 변하게 되는 것도 알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재물이 그 사람을 삼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내가 그토록 믿고 소망하던 이 땅위의 인생 또한 언젠가는 빛바랜 휴지조각처럼 의미가 없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의지하고 사느냐? 이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 “인생 역전”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연출가로 말하면(PD)이십니다. 드라마의 PD가 주인공의 역전 드라마를 만들려면 조연이나 엑스트라 또한 악역도 사용해서 드라마를 배열합니다.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을 위해 수많은 존재하는 인물들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죽을 것 같지만, 인생이 허무하게 무너질 것 같지만,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 사는 주인공은 곧 연출되어질 하나님의 역전드라마에 보기 좋게 이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찬양의 삶을 산다는 것이 ‘인생역전’만큼이나 흥미롭고 대단한 것입니다. 찬양하는 사람들은 매일의 삶이 지루하거나 비루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주님을 향한 찬양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까닭은 생각과 환경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찬양하면서 낙심하는 사람은 올바른 찬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앞에 어떠한 희망도 길도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설 수조차 없는 연약함속에서도 한 번의 찬양의 고백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소망을 불어넣어 주는 생명과도 같은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찬양은 칠전팔기와 같은 것입니다. 찬양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다시 소생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역전의 복서 홍수환씨가 뉴욕을 방문했었습니다. 4전5기의 신화의 사나이 홍수환에게 어느 분이 물었습니다.

“네 번이나 다운 당했을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일어났습니까?”

그러자 홍수환은 “생각은 무슨, 아무 생각 없이 일어 난겁니다. 평소 훈련이 되어있으니까 그냥 용수철처럼 일어난 겁니다.”

그리고 “3회 시작하자마자 상대방을 째려보는데 갑자기 상대방 턱이 양재기 만하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주먹을 날렸는데 이게 정타로 꽂힌 거죠, 손끝 맛이 짜릿했습니다.”

평소에 훈련된 삶이 한순간 터져 나와 승리를 맛본 것처럼, 찬양의 삶이 훈련이 되어져야 매일의 생활에서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119:164절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 주를 찬양하나이다.’

이 고백처럼 평상시 찬양하는 삶이 인생의 역전드라마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