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대한민국은 무척이나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량은 대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낮았다고 합니다. 변변한 자원이 없었던 한국은 무역만이 유일한 생존수단이 되었기에 수출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결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잘사는 한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국가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을 일으켜 농촌발전의 토대를 놓으려 했습니다. 이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 12월 5일자로 한국은 무역 1조달러 고지를 달성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9대 무역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인구비례로 환산해 치면 무역 1조달러는 세계 6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흔히 강국의 요건을 꼽자면 넓은 국토와 최소 1억 이상의 인구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캘리포니아 4분의 1에 해당하는 작은 국토, 1억에 한참 미달되는 4천5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참 작은 나라에 불과합니다. 이런 작은 나라 한국이 무역강국의 반열에 도달한 것입니다. 40여년 전만해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이제는 현실화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한국의 발전의 공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비록 독재자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그의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추진력이 오늘의 한국을 위한 발판을 놓았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박정희 스타일의 리더십은 당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곳의 개발도상국 리더들에게도 상존했었습니다. 그들도 그들의 국민들에게 꿈같은 비전을 제시하였고 독재를 통한 강력한 추진력으로 국가의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한국만이 제시된 비전을 완성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을 뿐입니다. 이는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리더)보다 지도자를 따르는 국민들(팔로워)이 더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천지개벽할 비전이나 계획이 리더로부터 제시된다 하더라도 이것을 받아들이며 수행할 국민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결코 그 비전은 성취될 수 없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위대했습니다. 꿈같은 비전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였고 지도자의 리더십에 순응하고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꿈은 공유될 때 현실화됩니다. 리더 혼자만 꾸는 꿈은 실현불가능한 몽상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꿈의 성취를 위하여 함께 수고할 때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사람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학수고대합니다. 위대한 지도자의 위대한 리더십이 있다면 만사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지도자와 위대한 리더십은 지금도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명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위대한 지도자의 위대한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위대한 팔로워의 위대한 팔로워십이 바로 그것입니다. 리더가 제시한 비전을 수용할 줄 아는 태도, 리더를 향한 무한 신뢰, 그리고 리더가 보는 것을 함께 볼 줄 아는 통찰력입니다. 위대한 교회의 3대요소가 있다면 위대한 비전, 위대한 리더, 그리고 위대한 팔로워입니다. 이 세가지가 함께 묶여질 때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위대한 교회가 탄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리더인 목회자도 위대해야 하지만 팔로워인 평신도들도 위대해야 합니다.
[김지성 칼럼] 위대한 리더십보다 중요한 것
글로발선교교회 김지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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