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벽”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 누구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번에 꿰뚫어 관통할 수는 없습니다. 지나간 과거는 철저하게 잊혀진 “레떼의 강”이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입니다. 사람은 오직 “현재”라는 시간의 영역 속에서 살아갑니다.
과거는 잊어버려서 보지 못하고, 미래는 무지하여 알지 못한 채 “현재”라는 작은 무인도에 갇혀서 불평과 오만을 반복하는 딸깍발이가 됩니다. 과거에는 간절한 “소원”이었던 일이 현재에는 “원망과 불평”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다시 먼 훗날의 “미래”에는 그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또, 과거에는 “치명적인 아픔”이었지만, 미래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반전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나 간증을 위해 초청되어 오시는 유명한 강사들은 대부분 과거에 혹독한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 당했던 자신의 아픔을 현재의 시간에 곱씹으면서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숨통을 열어 주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주꾸미 같이 못생긴 남자”와 결혼한 여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놈의 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는데, 남자의 못생긴 얼굴과 왜소한 체구가 보통 짜증나는 것이 아닙니다. 덕분에 이 청년은 결혼한 후 한번도 부부동반 모임을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이 남편은 돈 버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손이 갈퀴손입니다. 손대는 것마다 다 성공합니다. 마흔이 다 되었을 때, 다른 친구들의 남편은 모두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사업에 실패해서 집에서 백수의 나날을 보내는데, 이 자매는 “현금 조폐공사”인 듬직한 남편을 늘 옆에 끼고 살아갑니다. 항상 좋은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과거에는 미래의 어느 순간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자, 얼굴 뜯어 먹고 사냐? 뭐니 뭐니 해도 남자는 능력이 최고다!” 입만 열면 쏟아내는 그녀의 남성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잠언”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 지나간 부도수표 같은 과거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아직 주어지지 않은 백지수표같은 미래도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현재만 바라 보면서 인생을 속단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끊임없이 곤두박질과 용솟음을 되풀이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철저하게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시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과 동일한 시간의 연속선 상에 놓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주님의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해 가장 귀하고, 값진 “최선의 것”을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는 날이 올 것입니다(고전 13:12).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귀한 것으로 축복하시는 주님을 굳게 믿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겸손과 지혜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