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가을이 한창이란다. 설악산 오대산에 단풍이 한창이고 그 단풍이 이번 주에는 서울의 북한산에, 다음 주면 남쪽의 내장산에 이를 예정이란다. 온 세계에서 제일 좋은 날씨를 가지고 있는 남가주, 그것도 오렌지카운티에 살지만 왠지 이 때만 되면 슬그머니 한국 생각이 난다.
성도들 중에도 유난히 이 때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한국을 다녀오는 분들이 많다. 겸사겸사 가시는 길이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가을에 가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다. 은근히 부럽고 시샘이 난다. 나만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미국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가뜩이나 아버지의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 가족이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한국을 떠나오고 보니 고국, 고향, 그런 말들이 새삼 실감이 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일년 중 이 시기에 가장 많이 한국 생각이 난다. 막상 가 보면 별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모르긴 해도 지금 서울의 가을도 예전의 가을 분위기 하고는 무척 많이 다를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서울의 가을은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 날 갑자기 하얀 입김이 보이기 시작하고 양치질하는 물이 갑자기 차게 느껴지면서 시작된다. 하늘이 조금씩 맑고 높아지고 그러는 가운데 시내 한복판 고궁의 은행나무가 조금씩 노오란 물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시청 앞 중앙청 광화문 등 도로변의 은행나무들도 함께 물들어 가고 이 때쯤 크고 작은 가게에 노오란 국화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길거리에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낙엽과 쓰레기가 엉켜 온 시가지를 휩쓸고 다니지만 그 또한 낭만이 있어 보였다. 그 낙엽 진 도심 속을 부지런히 오고 가는 사람들도 왠지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게 내 마음 속에 있는 서울의 가을이다.
지금도 이 모습일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몇 년 전부터 부쩍 매년 이 맘 때면 이렇게 약간씩 가을 앓이를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특히 나 한국방송이나 뉴스를 보면 더더욱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지금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나 사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뿐이지 막상 가면 생각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종종 실향민이시던 성도들이 오십 년 육십 년 만에 그리던 고향을 방문했다가 오히려 실망과 충격에 한동안 힘들어 하던 일을 많이 보아왔다. 서울이야 조금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고향에 돌아와도 어릴 적 고향은 아니더라”는 사실 만큼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런즉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믿음의 조상들을 보면 그들에게도 다 떠나온 고향이 있을지라도 떠나온 고향보다는 돌아갈 본향을 더욱 더 사모하며 살아갔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5-16)”
그런즉 굳이 고향 생각을 한다면 영원히 실망치 않을 고향 생각을 하는 것이 내 마음에도 좋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참 믿음의 사람들은 땅에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기보다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다.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본향엘 한 번 다녀온 사람은 오매불망 그 본향만을 그리워하며 살아갔다. 감사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영원히 실망치 않을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