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죽음으로 인해 온 세계에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생전의 그의 삶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회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가족 사랑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한다. 잡스의 누이 심슨은 “그의 마지막 몇 주일동안은 오직 애플과 네 자녀 그리고 아내 생각뿐이었다” 라고 전하고 있다.

그의 초인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잡스의 인간적인 면목을 엿보게 한다. 잡스는 가족의 곁을 떠나는 것을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로서의 가족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을 진심으로 사과하였다고 한다. 잡스가 전기 집필을 허용하였는데 그 이유도 아이들과 함께 보내지 못했던 그것을 설명하고 자신의 일을 이해시키고 싶은 의도였다고 한다. 그도 한 인간으로서의 가족의 소중함을 안고 마지막까지 씨름했던 휴머니스트였다.

잡스의 출생 또한 깊은 가족의 비애가 깔려 있다. 어느 여대생이 남자친구와 사귀다가 임신하게 된다. 그녀는 도저히 낳아 키울 수 없는 그 아이를 양부모를 찾아 입양시킨다. 이 아이가 우연곡절을 겪으며 자라나면서 세계적인 기업을 키우게 된다. 아들을 한번 만나고 싶다고 심경을 토로한 잡스의 생물학적 부친은 미국 네바다시에 살고 있는 80세의 고령이다. 그러나 결국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잡스는 자신의 누이는 찾아 나선 적이 있었지만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잡스는 2005년 처음으로 자신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입양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회고한다. 잡스는 그 미혼모로 부터의 탄생이 애플로 성공하게 된 어떤 운명점이 되었다고 덤덤히 술회하고 있다. 잡스는 나아가서 애플로부터 한 때 왕따 되었다는 수모감과 아울러 암과의 투병이 자기를 더욱 더 강인하게 만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잡스는 가난한 어느 양부모에게 입양된다. 그 양부모는 잡스의 교육비에 그들의 모든 수입을 털어 넣었다. 그는 대학 6개월 만에 양부모의 고생을 보지 못하고 대학을 중퇴하였다. 그러면서 도강과 청강을 통해 필요한 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그 때 배운 서예가 훗날 맥킨토시의 아름다운 글꼴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운과 역경이 잡스로 하여금 더욱 더 한계 상황에 도전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도와주었다.

잡스의 가족 이력이 그렇게 불우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과연 오늘 날 같은 애플 신화를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도 던지게 된다. 그의 냉혹한 얼굴, 그의 부하 직원들에게 칼 같은 냉정함으로 대했던 그의 일화 등이 가족의 지난날의 편력을 추적해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그를 낳아준 가족이란 영원한 미해결의 숙제로 남아 있다. 나아가서 그가 이룩한 가족에게는 한없는 고통과 한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잡스의 창조성은 우리 시대의 혁신의 아이콘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그러한 잡스의 창조성과 혁신을 본받아야 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창조의 자유로운 정신이 그의 상품에는 묻어나고 있다. 젊은이들은 교회가 재미없고 경직된 곳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교회가 그들에게 복음의 매력과 창조의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잡스는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잡스는 애플 신화를 통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통해 이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화 시켰다. 그 변화에 대한 치열한 열정을 오늘날 교회가 가지고 있는지 자문하고 싶다. 복음이란 인간이란 심층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복음의 열정을 상실하고 있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잡스의 인생, 그의 가족, 그리고 교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우리 모두 마음에 큰 공명과 파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