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코마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 어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바이러스로 인해서 뇌를 80%나 손상을 입어 많은 어려움과 아픔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하며 하루하루 이겨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귀한 간증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당하는 사람만큼은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듣는 나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저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을까? 말로 할 수 없는 아픔들을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서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입에서 원망을 없애는 것입니다. 원망은 무섭게 자라는 나무와 같아서 처음에는 조그만 씨앗이 심겨지지만 그것이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집보다도 더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원망으로 시작을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원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부풀려지고 자라나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내 인생에 그늘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약속한 땅을 밝아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것의 주된 원인은 바로 원망이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그들은 원망했습니다. 지도자를 원망하고 나가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들을 왜 인도해 냈냐고 원망을 했습니다. 시작은 하나의 원망으로 시작됐지만 결말은 죽음으로 끝났던 것입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원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원망을 한다고 그것이 좋아진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것은 원망으로 해결될 일은 묵묵히 기다려면 해결도 되고 결과도 좋은데 그러나 잘 해결될 일도 원망으로 인해서 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어서 망하는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원망은 망조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에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결국 나를 무너지게 하는 독입니다. 원망으로 잘되기가 너무 어렵고 관계가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감사는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어떤 사람은 감사할 제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속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이 지금 살아서 건강한 몸으로 투덜거릴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할 일이고, 지금 보고 또 말하고 걷는 그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 전부 감사 거리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전에 장애인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을 통해서 들은 간증인데, 나면서 전신 마비가 되어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을 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하는 말이 “한번 휠체어에 앉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을 하면 참으로 불쌍하고 안됐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평생 휠체어에 앉지도 못하고 누어만 살아서 자기 힘으로 휠체어에 앉아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원망에서 감사로 돌려야 합니다. 욕은 욕을 부르고, 칭찬은 칭찬을 부르고,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원망은 원망을 불러옵니다. 오늘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
사람들이 아무리 이해를 한다고 해도 그것을 직접적으로 당하는 사람만큼은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듣는 나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저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을까? 말로 할 수 없는 아픔들을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서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입에서 원망을 없애는 것입니다. 원망은 무섭게 자라는 나무와 같아서 처음에는 조그만 씨앗이 심겨지지만 그것이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집보다도 더 큰 나무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원망으로 시작을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원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부풀려지고 자라나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내 인생에 그늘을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나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약속한 땅을 밝아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것의 주된 원인은 바로 원망이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그들은 원망했습니다. 지도자를 원망하고 나가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들을 왜 인도해 냈냐고 원망을 했습니다. 시작은 하나의 원망으로 시작됐지만 결말은 죽음으로 끝났던 것입니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원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원망을 한다고 그것이 좋아진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제가 보고 느낀 것은 원망으로 해결될 일은 묵묵히 기다려면 해결도 되고 결과도 좋은데 그러나 잘 해결될 일도 원망으로 인해서 될 일도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어서 망하는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원망은 망조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4절에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결국 나를 무너지게 하는 독입니다. 원망으로 잘되기가 너무 어렵고 관계가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하지만 감사는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원망보다는 감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어떤 사람은 감사할 제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속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이 지금 살아서 건강한 몸으로 투덜거릴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할 일이고, 지금 보고 또 말하고 걷는 그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 전부 감사 거리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전에 장애인 선교를 하시는 목사님을 통해서 들은 간증인데, 나면서 전신 마비가 되어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을 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하는 말이 “한번 휠체어에 앉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을 하면 참으로 불쌍하고 안됐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평생 휠체어에 앉지도 못하고 누어만 살아서 자기 힘으로 휠체어에 앉아보는 것이 소원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원망에서 감사로 돌려야 합니다. 욕은 욕을 부르고, 칭찬은 칭찬을 부르고,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원망은 원망을 불러옵니다. 오늘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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